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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부터 문명의 붕괴까지,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

제3의 침팬지 - 재레드 다이아몬드(문학사상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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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DNA 중 98.4%는 침팬지의 DNA와 같다.




피그미침팬지와 침팬지를 우리와 구별해주는 유전적 차이(1.6%)는 고작 피그미침팬지와 침팬지를 구별해주는 차이(0.7%)의 두 배에 지나지 않는다. 침팬지와 사람을 구별해 주는 거리는 두 종의 긴팔원숭이끼리의 차이(2.2%)나, 붉은눈개고마리와 흰눈개고마리처럼 비슷한 새끼끼리의 차이(2.9%)보다도 가깝다.

우리의 DNA 중 98.4%는 침팬지의 DNA와 같다. 예를 들어 혈액이 붉은 색을 띠게 하고 산소를 운반해주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은 287개의 단위 수까지도 침팬지의 헤모글로빈과 똑같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지 제3의 침팬지일 뿐이다. 침팬지와 피그미침팬지에게 해당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직립 자세라든가 커다란 두뇌, 말하는 능력, 숱이 적은 체모, 독특한 성생활 등 인간이 다른 침팬지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유전자 중에 있는 1.6% 속에 전부 모여 있는 것이다.

- p. 57. 세 종류의 침팬지 이야기.





. 제3의 침팬지는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처음으로 출간한 책인데, 출간 연도를 찾아보면 첫 책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늦은 나이에 쓰여졌다는 걸 알 수 있다. 1937년생인 저자가 1991년에 낸 책이니 우리 나이로 따지자면 55세에 발표한 것이고, 그 다음 작품인 총, 균, 쇠가 6년 후인 61세 때 출간되어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전세계적인 학자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그 전에도 학문적 결실과 꾸준한 기고를 통해 자신의 분야에선 저명한 학자이긴 했지만, 이 책과 지금의 - 특히 총, 균 쇠가 발표된 후의 - 유명세를 비교해보면 그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 온 연구의 결실이기 때문인지,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에서부터 진화, 독특한 성생활, 노화와 죽음, 언어와 사회의 형성, 인류가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과 이후 일어난 폭력과 멸종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처음 생리학 교수가 된 게 서른 두 살의 일인데 그 이후로 조류학과 생태학과 지리와 역사를 연구하고 현지 탐사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뉴기니에 머무는 등 3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오로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고 다지는 데에 몰두해왔으니까. 이 책의 500여쪽 정도는, 그간 자신이 쌓아 온 방대한 지식을 분야별로 나누어 '맛보기'로 조금씩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채워졌을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살아온 나의 인생 동안에 호르몬의 변화, 면역 기구의 쇠퇴, 신경 세포의 쇠퇴 등의 노화의 단일한 원인으로 각광을 받아 왔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최근까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진화론적 논증에서 보면, 그런 연구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화를 일으키는 단 하나, 또는 소수의 중요한 생리학적 매커니즘이 있을 리 없다. 그 대신, 자연도태는 모든 생리학적 시스템의 노화속도가 보조를 맞추어 무수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작용해야 할 것이다.

이 예측의 기조가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몸의 일부분을 비싸게 유지해도 다른 부분들이 더욱 빨리 못쓰게 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동시에 몇몇 시스템이 다른 것들보다 훨씬 빠르게 못쓰게 되는 것도 무의미하다. 몇 개 안 되는 그 시스템을 여분의 비용을 들여 수리하면 그만큼 수명이 연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 p. 202. 왜 늙어가고 죽는 것인가?




. 그렇기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다른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제까지의 세계'나, '섹스의 진화'나, '문명의 붕괴'나, 총, 균, 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짤막짤막하게(?) 소개된 이야기들이 이후 나온 책들에서 두툼한 사례를 달고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평생동안 해온 연구를 한 권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각각의 책들은 풍부한 사례와 파생되는 다른 주장들이 실려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벗어나고 있진 않으므로.





만약 신구세계의 축이 각각 90도씩 회전했더라면, 작물과 가축은 구세계에서는 좀더 서서히, 신세계에서는 좀더 급속하게 퍼졌을 것이고, 그에 따라 문명이 발생한 속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몬테수마 2세나 아타왈파가 유럽을 침략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차이 때문인지 누가 알겠는가? (중략)

지리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종의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의 기본 경로를 규정한다. 지리가 현대정치사를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동식물의 가축화, 재배화 속도를 결정하는 역할보다 더 분명하다.

- p. 351. 어쩌다가 정복자가 된 인간들.




. 이렇듯 30여년 간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한 끝에 60에 가까운 나이에 첫 책을 내고, 60이 넘은 나이에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그의 책 하나하나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행보를 보면, 요새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요즘에야 다양한 매체가 있고 때와 운만 맞으면 금세 유명세를 탈 수 있으니 될 수 있는 한 성과를 일찍 드러내는 걸 당연하게들 생각하고 있지만, 뭐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몇몇 노학자들의 행보를 보면, 쌓아온 게 많으면 많을수록 단기간에 자신을 소모해버린 채 지식자판기로 전락하지 않고, 오랜 기간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거구나 싶어진다.





고대 그리스의 인구 증가에는 몇 번의 굴곡이 있었는데, 인구의 격감과 거주지 포기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해 분명히 밝혀졌다. 인구 증가기에는 계단식 언덕과 댐이 얼마동안 경관을 지켜주었지만, 이윽고 삼림의 벌채, 경작을 위한 급사면의 개간, 방대한 수의 가축으로 인한 지나친 방목, 너무 짧은 간격의 경작의 계속으로 인해 관개 시스템을 붕괴시켜 버렸다. 각 시대의 결말은 구릉의 대규모 침식, 계곡의 범람 그리고 지역적인 인간 사회의 붕괴였다.

그 후 몇 세기 동안이나 그리스를 암흑의 무문자 시대로 되돌려 놓은 찬란한 미케네 문명이 왜 붕괴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아마,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붕괴의 원인은 자연 파괴였을 것이다).

- p. 465. 황금 시대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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