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 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
"용감하구나" 하고 여자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게다가 곱기도 하고. 호오, 그 머리카락, 그 살결."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비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인간의 외모나 자태에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콩깍지가 씌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하잖아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상대방의 얼굴에서 훌륭한 아름다움이 - 우쿄노스케 님이 말한 '최고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법이에요."
오하쓰는 가볍게 말했지만 우쿄노스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요. 아름다움이란 결국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아, 그랬나, 하고 중얼거리고는, "그래서 '진' 자였는지도 모르겠군요" 하고 덧붙였다.
- p. 504. 대결.
. '미인'은 미야베 월드 2막의 여덟 번째, 국내에 출간된 권수로 치자면 드디어 두 자리 수를 채우는 열 번째 작품이다. 미야베 월드 2막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외딴 집'처럼 사회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도 있고, 때로는 추리물이기도 하고, 혹은 기담이기도 한데, 이렇듯 미야베 미유키는 미야베 월드 2막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번 작품은 전작인 '흔들리는 바위'에 이어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진 오하쓰라는 처녀와 무사가문의 외아들이면서도 검보다는 산학에 빠진 우코뇨스케가 초자연적인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 기담이나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이라면 교고쿠 나츠히코가 최선두에 있다고 해야 할텐데, 미야베 미유키와 교고쿠 나츠히코는 마초 하드보일드물의 권위자(....)인 오사와 아리마사와 함께 같은 사무실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뭐 같은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공동집필 같은 거창한 걸 하는 건 아니고, 모여서 하는 건 게임밖에 없다는 믿거나 말거나 류의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 어쨌든 같은 사무실에 있고 시대물과 기담에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지만, 교고쿠 나츠히코가 '뭐 요괴? 그런 걸 믿다니 바보 아냐?'라고 일갈하면서 결국엔 '이 세상엔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다네. 세키구치 군.'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데 비해 미야베 미유키는 요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자주 등장시킨다는 차이점은 꽤 재미있다. 지금까지 번역된 미야베 월드 작품 중 외딴 집과 헤이시로-유미노스케의 '얼간이' 시리즈를 뺀 나머지 시리즈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데, 특히나 능력이 능력이다보니 오하쓰가 나오는 작품에서는 아예 대놓고 요괴와 정면대결을 벌인다.
그때 체포된 자를 내려보던 바람 '대가리'가 휘청 움직였다.
마치 산토끼를 겨냥해 우듬지에서 급강하하는 매처럼 남자를 덮친다. 곧장 덮친 것이 아니라 도중에 몸을 빙글 틀어 남자의 등 뒤로 돌아가 대가리를 곧추세우더니 다시 화살처럼 곧장 날아들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에는 투명한 피륙 같은 바람이 남자의 몸을 등 뒤에서 스치고 건너편으로 지나간 줄 알았다. 그게 아님을 깨달은 것은 바람 '대가리'가 반원을 그리며 피융 하고 밤하늘로 치솟은 직후 남자의 목이 붙어 있던 자리에서 물보라처럼 피가 솟구쳤을 때였다.
목이 없다!
목이 잘린 남자의 몸뚱이는 무릎을 꿇고 선 자세 그대로 천천히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솟구쳐 나온 피는 주위에 꼼짝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손에 튀었고 땅바닥에도 무수한 검은 자국을 남겼다. 남자의 몸이 엎어지듯이 쓰러지자 목이 있던 자리에서 이내 검은 피가 내를 이루며 흘러나와 땅바닥을 적셨다.
- p. 145. 사라지는 사람들.
. 이 작품의 원제는 '天狗風', 즉 요괴(텐구) 바람이었지만 북스피어에서 '미인'으로 바꾸어 출간했는데, 약간 과장해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아름답게 보여지고 싶다는 원념만을 품고 절세미녀인 관음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름답다는 소문이 난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요괴와, 납치된 처녀들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품고 있었던 투기, 그리고 오하쓰를 돕는 분키치의 정인인 오미요가 오하쓰에게 품고 있는 투기 등 이 작품에는 온갖 종류의 질투로 인한 어둡고 짙은 감정이 넘쳐난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진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이 그려져 있는데, 이야기를 읽고 표지를 보면 이야기 역시도 이런 색으로 물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이런 이야기니만큼 이번 작품에서는 오하쓰의 활약이 거의 절대적이고, 상대적으로 우쿄노스케의 존재감은 확 줄어들고 말았다. 이야기의 중간에 이사이야의 범죄행각을 밝혀내는 우쿄노스케 특유의 논리적인 추리는 여전하지만 중심이 되는 사건이 아니다보니 임팩트로든 실제 비중으로든 그다지 활약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 인기 만점인 건 끈적거리면서 한없이 가라앉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등장해 분위기를 확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맡은 말하는 고양이 데쓰일 듯한데, 덕분에 일회성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사건에도 등장해 오하쓰와 티격태격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우쿄노스케는 안타깝게도 대화에 끼지 못한 채 끝도 없이 냐옹거리는 고양이를 상대로 말하는 오하쓰의 뒤에 서서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어중간하게 서 있겠지. :)
"그 때 나는 깨달았다. 귀신보다 원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고. 불리한 일, 보고 싶지 않은 일, 듣고 싶지 않은 일을 기이한 이야기 속에 묻어버린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해 거짓말로 버티지. 인간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북부 마치부교쇼 도신으로서 이렇게 짓테를 차고 있는 나는 앞으로 그런 인간의 거짓말이 만들어 낸 가짜 귀신이나 원령과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단단히 맹세했어."
- p. 464. 무가의 따님.
p.s. 그동안의 시리즈에선 오하쓰를 그저 밝고 말괄량이 같은 처녀로만 봤는데, 오하쓰는 미인이었다(!!!!) 하긴 교고쿠도 시리즈의 아츠코도 그렇듯 성격 좋은 말괄량이라면 미인인 게 보통이긴 하겠지만, 질투의 대상이 되는 건 물론이고 요괴까지도 예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니. 덕분에 일본에서는 만화화(라고 쓰고 모에화라고 읽는다)까지 이뤄졌다는데, 과연 오하쓰의 미모를 등에 업고 다음 작품도 만화화가 될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