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2 - 무라카미 하루키(문학동네) ●●●●●●●◐○○
"흐음, 당신은 소설은 못 읽죠?"
하루키)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상징적이었던 것은, 냉전 체제가 붕괴되어 더이상 좌도, 우도, 전도 후도 없는 상황이 출현한 바로 그 시점에 간사이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건을 어떤 축으로 파악해야 할지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하야오) 지진은 천재지변이었으니 조금 다르지만, 혹시 냉전체제가 계속되었다면 옴진리교 같은 조직은 나오기 힘들었겠죠. 요컨대 어느 쪽에서 보든 눈에 보이는 악이 명확히 존재했었으니까요. 그걸 당장 물리쳐야 한다고 모든 이가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일이 비교적 쉬웠죠. 그런데 그런 정리가 불가능해지고 어쩔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 난데없이 그런 이상한 조직이 등장하는 겁니다.
하루키) 저는 그것을 '스토리성'이라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하야오) 즉 스토리의 축이 사라진 시점에 아사하라가 스토리를 들고 홀연히 나타났다는 거군요.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끌렸다. 옳은 말 같아요.
- p. 283. 언더그라운드와 관련하여.
. 1995년 3월에 벌어졌던 옴진리교의 도쿄지하철 사린테러 사건과 관련해서 하루키는 두 권의 책을 썼다. 똑같이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이었지만 한 권은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옴진리교 신도들을 인터뷰한 책이었다. 물론 신도라고는 해도 테러를 실행했거나 계획한 이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사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고, 실제로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 중 몇몇은 옴진리교 교단 내에서 가혹행위를 당한(그들 중에는 탈출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기는 해도 그와 별개로 옴진리교의 교리나 그 활동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그래서 신도들을 인터뷰한 이번 책은 피해자들을 다룬 이전 책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진행되어 간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픈 개개인의 사정에 귀기울이고, 공감하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도들은 왜 옴진리교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그전에 그들이 품고 있던 약한 부분과 옴진리교의 교리가 어떻게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듣고, 그들이 접한 옴진리교의 교리나 교단 내의 활동에 대해 듣고, 거기서 조금 더 진행해도 괜찮겠다 싶으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 과정에서 하루키는 때때로 그들의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되묻기도 한다.
내가 '옴진리교 측'을 정면으로 다루려 마음먹은 이유는 '결국 그런 사건까지 벌어졌는데도 그것을 일으킨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절실히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일본사회라는 메인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특히 젊은 층)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효하고 정상적인 서브시스템 = 안전망이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은, 그 사건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본질적이고 중대한 결함이 우리 사회에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한, 설령 지금은 옴진리교라는 교단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비슷한 유형의 흡인체 - 옴진리교적인 것 - 가 언젠가 또다시 등장할 것이며,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취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런 불안을 계속해서 느껴왔고, 취재를 마친 지금은 더욱 강하게 실감한다.
- p. 13. 머리말.
. 그래서 이 책은 사건 자체나, 옴진리교 구성원들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들은 옴진리교에 왜, 어떤 부분에 공감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루키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보통 사람들이 현실을 벗어나 옴진리교를 위시한 서브종교에 빠지는 이유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가 머리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본질적이고 중대한 결함이 우리 사회에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한, 설령 지금은 옴진리교라는 집단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비슷한 유형의 흡인체 - 옴진리교적인 것 - 가 또다시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루키는 신도들의 이야기를 가급적 걸러내지 않고, 옴진리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그대로 다룬다.
그의 삼십여 년 인생 동안 일관된 생각은 '나는 이 현실세계에 맞지 않는다'는 확고한 인식이었다. 그래서 자기처럼 현세의 가치와는 다른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대하길 원했지만, 그러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회의를 떨쳐내기 힘들었다. 아무리 해도 전적으로 그 속에 빠져들 수 없었다. (중략)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 운송 관련 회사에 근무한다. 옛날부터 바다를 무척 좋아해서 지금도 자주 수영하러 나간다. 오키나와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를 보고 실컷 울었던 일을 계기로, '아, 나도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확인했다.
- p. 58. 하무라 아키오.
. 그들은 하나같이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혼란스럽고 모순이 가득한 현실에서 진정한 삶의 해답과 가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했으며, 그 과정에서 옴진리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옴진리교는 그런 그들에게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떠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태도로 명확하게 답변했다.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답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손에 잡히는 체계적인 과정까지도 제공했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려나가거나 재테크 관련 커뮤니티에서 등급을 올리는 것처럼, 실천 가능한 각각의 단계를 클리어하면 점점 답에 가까워지는 수련 과정을 설계했다. 숭고한 삶의 목표와 현실적인 과제-보상 시스템이라는 영 모순되어 보이지만, 의외로 젊은 층과 지식인들 사이에 이런 옴진리교의 체제는 잘 먹혀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방법으로 진리에까지 도달한다는 게, 현재의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에겐 오히려 더 납득하기 용이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게임이 없는 것처럼 옴진리교 역시도 계속될 수 없었고, 결국 그 끝은 파국으로 끝났다. 신도들에게 계속 '레벨'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과제를 제공해야 했던 아사하라 쇼코는 정계 진출, 테러, 사회 전복 같은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탈선한다. 마치 이야기를 만드는 어린애들이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할 때 쓰는 외계인 침공, 지구 멸망 같은 엉터리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옴진리교의 시스템에 매몰되어 있던 신도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하야시 이쿠오의 수기는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멈춰서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이 사람은 왜 이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소박한 의문과,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마도 손쓸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동시에 솟구쳐오른다. 그것은 우리를 묘하게 서글픈 기분에 젖어들게 만든다. 가장 허무한 것은 '공리적인 사회'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어야 마땅할 사람이, 말하자면 '논리의 공리성'을 무기로 많은 사람을 파멸시켰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세간에 떠도는 일종의 뉴에이지적 언설이 우리에게 이따금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초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은 그저 현실의 얄팍한 희화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 331. 후기.
. 그래서 하루키는 글을 마치며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한 채 성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옴진리교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수많은 '깨달음'들은 이러한 현실을 배제한 채 명확하고 알기 쉬우며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쥐어줌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모으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 세계에 속에서만 통용되는 답일 뿐이다. 결국 진짜 삶의 답이란 스스로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고뇌하면서, 시행착오와 상처투성이가 되는 걸 감수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름길도, 요약본도, 해답지도 없다.
그런데 저는 이번 책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 자체에는 그 사건을 막을 만한 억제력 있는 백신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 속에는 역시나 분명한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잠재적인 힘이랄까요. 따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가면 그것에서 뭔가 큰 세력이 생겨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많은 절망을 느꼈지만, 그로 인해 비관적인 쪽으로 기울었느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희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개개인의 힘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현재화시켜갈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만.
- p. 288. 언더그라운드와 관련하여.
하루키) 흐음, 당신은 소설은 못 읽죠?
가노) 네, 소설은 못 읽습니다. 세 페이지 정도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릅니다.
- p. 38. 가노 히로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