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아무래도 나 지금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먼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자.
침묵할수록 고립되고, 고립될수록 점점 해결하기가 어려워진다. 경험 상 침묵을 깨는 일이 가장 어려웠고 힘들었다. 아마 처음에는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문제가 생긴 건지, 상대 말대로 내가 문제인 건 아닌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조심스럽게 나의 상황을 지인에게 말해도 겪어 보지 않아서 공감을 잘하지 못하고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지라도 침묵을 깨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계속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분명 말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이 상황이 불편하고 이상하다는 점을 감지한 것이다. 자신을 검열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감정 상태를 공유하면 된다.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당하고 있다면 이미 세뇌가 많이 되어서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 위주로 설명을 하게 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담담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면 된다.
나의 경우 센터와 변호사 상담을 해보았는데 나이가 굉장히 많은 변호사가 몇 번이고 내가 써간 종이를 들여다보며 이제까지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다. 그 표정과 반응을 보고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절대로 이 관계를 지속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주변 사람 중 누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면 마음이 더 편하겠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기 어렵다면 변호사를 찾아가도 되고, 지역마다 있는 센터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긴급전화 등을 이용해도 된다. 이 모든 것을 다 해도 된다!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때로 초기 상담은 무료로도 많이 해준다. 센터와 긴급 전화 역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2] 가스라이터들이 내가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빠르게 진행하자.
가정 폭력에서 피해자가 도망을 치거나 이혼을 하려고 하면 지독한 스토킹이 시작되면서 살인까지 이어진다. 심지어는 재혼을 해도 지속되며 때로는 보호하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까지도 위협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이 제일 중요하다.
빠르게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가스라이팅으로 심신이 너무도 취약한 상태이므로 그들의 회유에 나도 모르게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게 된다. 나는 이런 이유로 가정 폭력으로 어렵게 쉼터에 찾아온 사람들이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가스라이터들은 대상이 사라지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괴롭힐 대상이 사라지고 자신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조용히 빠르게 벗어날 준비를 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 어떤 회유책에도 휩쓸리지 말자.
가스라이터들은 달라진 모습을 알면 더 열성적으로 회유하고 협박하려고 한다. 벗어나기로 했으니 마음을 굳게 먹고 절대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아직도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거냐고 취조하듯이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자신이 나를 휘두르고 있었으니 나의 의지로 내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도 가스라이터를 다시 만나서도 안된다. 둘만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 다시 설득이 되고, 특히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돌아오게 만들고 다시 비정상적인 구조 안에 집어넣으려고 할 것이다.
가장 흔한 패턴은 잘못을 의외로 순순히 일부 인정하면서 후회하고 있다고 하면서 솔깃하게 만들거나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다 싶으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협박한다. 뉴스에 알려진 여러 가정, 데이트 폭력 사건들을 보아도 이런 회유책을 써서 헤어지거나 법적으로 신고를 어렵게 막는다. 가스라이터들은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하는 마음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다시 역 이용할 뿐이다. 진심이라고 할 지라도,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구분하기 어려웠던 그의 진심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나의 경험담]
내가 겪은 가스라이터도 신기하리만큼 똑같은 패턴으로 회유책을 들고 나타났다. 나에게 한 번의 기회도 더 주지 않는다며 비난하고, 너무 괴로워 칼을 꺼내서 죽을 생각만 한다면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여 불안을 가중시켰다. 수년이 흐름 지금 그 가스라이터는 변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공개사과를 하거나 내 지인들로부터 자숙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각종 사건에 입에 오르내리는 범죄자들 역시 이 패턴을 보인다.
[가스라이팅을 겪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만일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일은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일 수도 있고 직장 내 괴롭힘 일수도 있다.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겐 아무리 참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죽음의 공포나 극도의 스트레스 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 단계가 넘어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때 섣부르게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가 부담이 된다면 전문가들을 만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나 역시도 내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생존하여 정상적인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단, 전문가의 도움을 줄 때 주의했으면 하는 사항이 있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상담 과정에서 종교색이 짙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다소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때는 가스라이터의 계속된 주입과 통제로 인해 자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절대적 진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고, 전달하는 사람의 말 역시 의문이 들어도 반박하거나 이의제기 불가능하다. 그래서 잘못된 종교적인 해석이나 조언이 사건에 개입될 경우 해결이 너무도 어려워진다.
이 시기에 겨우 가스라이팅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피해를 입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 가정폭력을 피해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들어가기도 하기도 하고, 알고 보니 상담 아닌 상업을 빙자한 불법 다단계에 빠져 크게 금전적 피해를 입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방법은 아직 나도 잘 모른다. 아직도 나는 고군분투하며 진행 중이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가장 이론적이고 기초적인 방법만 먼저 정리했다. 이걸론 많이 부족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온전하게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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