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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Oct 24. 2021

가스라이팅과 종교적 상담이 콜라보될 때

part2.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이전 글에서도 조금씩 언급을 했지만, 나의 경우 상담사가 가스라이팅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석을 하면서 더 해결이 어려웠다.


"지금 느끼는 억울함, 답답함이 바로 신이 느꼈던 그 감정이다. 그걸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신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

"다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겨 내고 나면 서로에겐 정말 둘도 없는 사랑을 쏟아줄 것이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종교적 의미를 담은 단어를 배제하고, '신'으로 표현한다.)


나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하고 거부하지 못했다. 한낱 한 인간의 비합리적인 말에도 서서히 주눅이 들어갔던 사람이다. 신이 계획했고 뜻이 있다는데 거부하긴 힘들었다. 나는 점차 현재 상황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나에겐 오직 이 상담사 밖에 없었다. 어리석게도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내 진심과 힘듦을 전해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이 더 나를 옥죄고 있었다.


상담사는 폭행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알리라고 하지 않았다.

가스라이터가 그동안의 상처로 마치 밥을 먹다 심하게 체한 것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릴지라도 체한 것을 토해내는 과정이니 기꺼이 받아주라고 했다. 그 비합리적인 상황이 너무 무서웠지만 치유가 되는 과정이라고 하니 참아내고 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다. 내가 그 일로 설령 사망했다고 해도 이 상담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적 자유를 존중하지만 상담 치료에 종교가 개입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내가 도망쳤을 때 상담사는 가스라이터에게 내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가스라이터는 상담사를 통해 절박함을 내세워 나를 붙잡아 보려고 했는지 상담사를 찾아갔다. 그 상담사는 가스라이터에게 기도를 하고 믿으면 반드시 내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가스라이터의 마지막 문자였다. 언뜻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신께서 자신을 용서했다고 했다.


"내가 아직 상처 투성이인데 신은 당신을 용서했다고?"


나는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그런 신이라면 나는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가정/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난 피해자는 그때부터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보복 행위와 끊임없는 스토킹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짓 믿음을 심어줬다.   


왼쪽) 이혼 인질극 후 가족 살해한 사건 https://youtu.be/vRKarU_TyMs 오른쪽) 동거남이 찾아와 아들을 살해https://youtu.be/hlWXtaUb6cg


상담은 만능이 아니다.

상담을 가서 뭔가 오해를 풀고, 같이 잘 살 궁리를 할게 아니고 관계를 정리하는 게 맞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하는 커플 상담, 부부상담 등은 정말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 내담자 커플에게 헤어지라, 도망치라, 이혼하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상담센터로 상담사 협박 전화도 온다고 한다.

  

지금 어떤 경우보다도 내담자인 나는 가스라이터와 보낸 시간만큼 나의 자아가 취약한 상태이다. 취약해진 틈을 타 불법 다단계 회사나 보이스 피싱에도 쉽게 당하기도 한다. 직업이 의사이고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었음에도 가스라이팅 피해로 소송 중이었을 때 보이스 피싱으로 가진 돈을 다 날렸던 사례도 직접 보았다.


그러니 원래의 나보다 훨씬 취약해진 자아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태를 이해하고, 경험이 많은 검증된 상담사를 만나야 한다. 상담을 병행하는 병원이나, 병원에서 연계해 주는 상담센터를 찾아가고, 한국상담심리학회 또는 한국상담학회에서 자격증이 있는 분을 추천한다.


여하튼 가스라이팅이 뭔지도 몰랐던 그 상담사는 틀렸다.




"지금 느끼는 억울함, 답답함이 바로 신이 느꼈던 그 감정이다. 그걸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 내가 믿는 신은 그런 방법으로 나를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주신다."

->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다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겨 내고 나면 서로에겐 정말 둘도 없는 사랑을 쏟아줄 것이다."

->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인생을 거부한다. 나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사람과는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상담하는 것은 엄청난 내공이 필요해 보였다. 솔직하게 상담사들도 이런 사람들이 힘들어서 내담자로 받기 꺼리는 마음도 있다고 들었다. 가스라이터의 문제는 이미 의학적으로 병명이 있고, 설명되는 줄도 몰랐다. 가스라이터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및 편집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상담사도 쉽게 돕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내가 해결해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그런 말을 하셨다.


"가스라이터가 믿는 신과 내가 믿는 신이 같다고 생각하냐고.."

 

위로가 되었다. 내가 믿는 신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의 수단과 목적이 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신은 가장 아프고 힘없는 자의 편이 아니던가? 스스로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자보다 고통받는 한 명이라도 도우려는 자 곁에 계신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신을 믿고 싶다.


 그러니 쉽게 누군가 자신이 신의 말을 전하는 것처럼, 신의 뜻을 해석하는 척한다면 단호히 "그건 아닌데요." 말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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