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의 '어느 푸른 저녁' 과 '엄마 걱정'을 모티브
1. 엄마의 엄마는 간호사였다
보고 배운 것이 그런 일이어서 그런지
성적과 돈의 언저리를 헤메다 덜컥 주저앉은 건지
엄마도 흔들리는 초를 켜고 맹세의 손 곱게 들었다
하얀 캡 머리에 꽂고 씩씩하게 흰 신발을 신었지만
사이렌 소리가 두려워 커텐 뒤로 숨었다
나보다 덜 배우고 나보다 덜 벌고
그런데도 나보다 더 크고 넓은 사내를 만났다
유리병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마음이 쏟아져서
주체할 수 없어 결혼을 했다
그것이 꿈이든 돈이든
그저 허전함을 맴도는 욕망이든
더 벌고 더 높이 올라서는 게 인생인가
부품처럼 아침에는 해를 걸고
저녁이면 달과 별을 세며 돈을 벌었다
2. 그렇게 해와 달과 별을 벗 삼아 살다보면
아름답고 고운 삶만 일기로 남을 줄 알았는데
고약한 바이러스가 시대를 휩쓸었고
엄마는 알코올 냄새 가득한 곳에 갇힌 이유가
꿈인지 돈인지도 모른 채 병원에 남았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난소에 난포가 집 주인도 없이 비어있어서
이번 생에 아이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사랑으로 흐르는 삶의 한 귀퉁이에
절절함을 한 절 끼워 넣으려던 찰나
너는 참, 반갑게도 코로나와 함께 왔다
그 고약한 바이러스가 시대의 책장을 넘기는 동안
너를 낳았다
아가, 너는
내 삶에 도무지 없던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구나
3. 갓 난 아이 5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어린이집을 보냈다
너를 보낸 이유도 돈 때문인지 꿈 때문인지
엄마라는 이름에 일을 한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친구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슬프다고 울고
나는 일도 하고 엄마도 해야 해서 울었다
너는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바이러스가 병원으로 밀고 들어올 때마다
온 몸에 알코올을 뿌리고 젤로 손을 문댔다
술은 한 방울도 못하면서 취한 채 살았다
내가 두려운 것이 아이가 아픈것인지
널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연차를 쓰는 것인지
이걸 그만두고
네게 먹이고 싶은 분유 쓰고 싶은 기저귀를
사지 못하는 것인지 헷갈리는걸 보니 취한게 맞다
여전히 내가 더 벌고 여전히 내가 더 배운
그런 삶이 억울해지는 찰나마다
스스로 뺨을 때렸다
세상이 레고 블록처럼 해체되는 시대에 서서
내가 품 안의 너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빈 주머니 속을 뒤지다 찾은 것이 고작 그것뿐이다
아빠 그리고 엄마
4 엄마 일하러 가요?
엄마 공부하러 가서 늦게 와요?
그래 네가 그렇게 백번 물을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가야하고 엄마는 늦는단다
평생 흙에서 뽑히지 않을 것처럼
그저 푸르고 곧기만 하던 열무를
내 손으로 뽑아 소금을 쳐 숨을 죽이고
양념으로 치대서 피투성이로 만든 후에야
네 상에 올릴 수 있을테니
엄마는 상금으로 이백만원을 준다기에
이렇게 인생을 팍팍 무쳐본다
뜨겁게 젖은 눈시울조차 부끄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