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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Oct 25. 2023

[기형도문학관 공모전 예선출품작-예심통과]엄마의 걱정

기형도 시인의 '어느 푸른 저녁' 과 '엄마 걱정'을 모티브

1. 엄마의 엄마는 간호사였다

보고 배운 것이 그런 일이어서 그런지

성적과 돈의 언저리를 헤메다 덜컥 주저앉은 건지

엄마도 흔들리는 초를 켜고 맹세의 손 곱게 들었다

하얀 캡 머리에 꽂고 씩씩하게 흰 신발을 신었지만

사이렌 소리가 두려워 커텐 뒤로 숨었다

나보다 덜 배우고 나보다 덜 벌고

그런데도 나보다 더 크고 넓은 사내를 만났다

유리병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마음이 쏟아져서

주체할 수 없어 결혼을 했다 

그것이 꿈이든 돈이든 

그저 허전함을 맴도는 욕망이든

더 벌고 더 높이 올라서는 게 인생인가

부품처럼 아침에는 해를 걸고

저녁이면 달과 별을 세며 돈을 벌었다


2. 그렇게 해와 달과 별을 벗 삼아 살다보면

아름답고 고운 삶만 일기로 남을 줄 알았는데

고약한 바이러스가 시대를 휩쓸었고

엄마는 알코올 냄새 가득한 곳에 갇힌 이유가

꿈인지 돈인지도 모른 채 병원에 남았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난소에 난포가 집 주인도 없이 비어있어서

이번 생에 아이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사랑으로 흐르는 삶의 한 귀퉁이에

절절함을 한 절 끼워 넣으려던 찰나 

너는 참, 반갑게도 코로나와 함께 왔다

그 고약한 바이러스가 시대의 책장을 넘기는 동안

너를 낳았다 

아가, 너는

내 삶에 도무지 없던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구나


3. 갓 난 아이 5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어린이집을 보냈다

너를 보낸 이유도 돈 때문인지 꿈 때문인지

엄마라는 이름에 일을 한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친구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슬프다고 울고

나는 일도 하고 엄마도 해야 해서 울었다

너는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바이러스가 병원으로 밀고 들어올 때마다

온 몸에 알코올을 뿌리고 젤로 손을 문댔다

술은 한 방울도 못하면서 취한 채 살았다

내가 두려운 것이 아이가 아픈것인지

널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연차를 쓰는 것인지

이걸 그만두고 

네게 먹이고 싶은 분유 쓰고 싶은 기저귀를 

사지 못하는 것인지 헷갈리는걸 보니 취한게 맞다 

여전히 내가 더 벌고 여전히 내가 더 배운

그런 삶이 억울해지는 찰나마다

스스로 뺨을 때렸다 

세상이 레고 블록처럼 해체되는 시대에 서서

내가 품 안의 너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빈 주머니 속을 뒤지다 찾은 것이 고작 그것뿐이다

아빠 그리고 엄마 


4 엄마 일하러 가요?

엄마 공부하러 가서 늦게 와요?

그래 네가 그렇게 백번 물을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가야하고 엄마는 늦는단다

평생 흙에서 뽑히지 않을 것처럼

그저 푸르고 곧기만 하던 열무를

내 손으로 뽑아 소금을 쳐 숨을 죽이고

양념으로 치대서 피투성이로 만든 후에야

네 상에 올릴 수 있을테니

엄마는 상금으로 이백만원을 준다기에

이렇게 인생을 팍팍 무쳐본다 

뜨겁게 젖은 눈시울조차 부끄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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