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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Feb 05. 2021

유독 사랑이 어려운 당신과 듣고 싶은 노래

김사월의 [로맨스]가 담백한 위로가 될 거예요


김사월은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내밀한 사랑을 쓸쓸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흔한 사랑 노래가 흔하게 들리지 않음은 ‘나’를 주어로 한 가사에 세련된 솔직함이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으로 들뜨고 기대하며 질투하고 때로 회피하는 모든 찐득한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탓에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나의 밑바닥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누군가는 애써 숨겨 왔을 그 모든 환상과 고독을 이토록 담담하게 이야기하다니, 홀로 이런 마음 조각을 품었다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어쩐지 안도감과 함께 묘한 유대감마저 느껴진다.     






실체 없는 동경 그리고 로맨스


https://www.youtube.com/watch?v=4QKtEPq7Qp4

오랫동안 너를 좋아했지

얼마나고 하면 나조차 모르게

네가 그림을 그려 난 그림을 그렸어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나는 못 본체 지나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던 날

내 마음은 숨기는 게 좋아     

김사월 - <프라하> 일부



김사월 정규 2집의 수록곡인 <프라하>는 실체 없는 동경에 대해 노래한다. 노래의 화자가 네가 있는 서울에 가고, 너를 따라 그림을 그리기로 한 모든 행위는 어쩌면 동경하는 사람에게 닿고 싶고 닮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조각이다.



자연히 곡을 따라 나에게도 있음직한 비슷한 기억을 훑다 보면 보정된 추억들이 덩어리 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심리적 혹은 물리적 거리에서 시작한 동경과 사랑에는 함정이 있다. 예컨대 누군가를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고 좋아했음에도 단순히 나의 사고와 감정이 상대에 대한 단서가 되진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것들을 차곡히 수집할 수 있는 건 가까이서 관계의 첫 장이라도 넘긴 사람들만의 마땅한 권리였다. 그리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커지는 마음은 상대를 향해 무수한 공상을 만들어낸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는 이런 사람일 거야’하는 막연한 기대와 바람들. 그건 실체가 있으면서도 실체가 없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상상을 쫓았다 한들,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과 행위까지 모두 허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사월은 허탈함 대신 그저 ‘나’는 이랬다며 사랑이라는 미몽 하에 행했던 가장 사적이고도 애틋한 로맨스를 토로할 뿐이다.






하나뿐인 사람의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11mxnvHowTY

너는 누군가에게 너무 완벽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너의 무의식과 감정

모두 하나뿐이고 절대적인 것을

그런 너에게 상처를 주고

기쁘게 하는

그런 사람도 단 하나뿐이었다는 거

하나뿐인 사람의 사랑

내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밤에     

김사월 - <누군가에게> 일부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사랑에 관한 구질한 기억 조각까지 떠올리게 한다. 연인 관계에서 이미 기울어진 마음을 열등의 문제로 치부해버렸을 때, 나는 자연히 ‘을’이 되기를 자처했다. 더 많은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도, 더 많이 오해하는 것도, 더 간절한 것도 한쪽의 몫이었다.



열등에 기반한 내 사랑의 허약함-연인에 대한 불신 같은 것들-이 질투와 오기로 변모했을 때, 순수했던 사랑도 관계도 변질되기 십상이었다. 상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 특별해지고 싶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욕망이 자신을 힘없이 무너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모든 초라한 감정이 뒤엉킨 이 노래를 들으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다며, 어린 시절의 자기 사진을 보며 노래를 들어보라는 색다른 감상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후자의 말마따나 이런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기쁘게 하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기도 할 텐테, (그 누가 내가 되어도 좋겠지만) 무엇이 됐든 ‘하나뿐인 사람의 사랑’을 담담히 인정하는 김사월의 씁쓸하지만 씩씩한 음성이 왠지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로맨스


https://www.youtube.com/watch?v=1fINtedMX3I

내 마음 받으러 올래

난 운전은 못하니 네가 가지러 와

엄청 많으니까 아무 때나 찾아와

사랑 보다 먼저 넌

나를 사랑하라 했잖아

너도 그거 못하잖아

우리를 돕고 싶어

김사월 - <로맨스> 일부



사랑도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충돌과 위계가 생긴다. 그래서 종종 연인 관계가 권력으로 치환되며 누군가는 ‘을’이 된다. 앞서 말한 열등으로 빚어진 감정의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자존감에 달려 있다는 말을 익히 들어 왔다. 자존감도 연애에서 필수요건이 되어버린 시대다.



그럴듯하지만 본질을 통찰하지 못하는 위로 문구로 ‘나를 사랑하라’라는 주문을 외우게 만드는 것을 과연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해법으로 권유해도 되는 걸까. 제 감정에 공들일 시간을 주지 않고 섣불리 개인의 외로움이나 불안, 좌절, 분노, 허무와 같은 사랑하기 어려운 감정을 황급히 긍정적인 감정으로 덧칠하기를 종용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사랑하라 했잖아. 너도 그거 못하잖아라는 가사가 어딘가 통쾌하다. 불완전한 사랑의 민낯을 알면서도 우리네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가 온전히 평온하고 평등하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그러니 그냥 서로의 미숙함을 끌어안자는 ‘우리를 돕고 싶어라는 내밀한 속삭임은 오히려 사랑으로 벌거벗겨진 마음들을 조심스레 포용하는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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