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예의
tVn 인기 예능, 유퀴즈에 성형외과 의사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이 의사는 특이하게도 미국 현지에서 타투 유학을 다녀온 타투 전문가이기도 했다. 무슨 투잡을 하러고 타투까지 배워왔나싶었는데, 알고보니 심각한 피부 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성형수술로도 가릴 수 없는 상처를 타투로 어느정도 가려주기 위한 치료의 하나로서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화상을 입은 소방관들에게 무료로 시술을 해줌으로서 본인의 재능을 기부하는 훌륭한 일을 하고 계셨다. 그 의사는 인터뷰에서 제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모른 척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순간 울컥했다.
내게는 화상을 입은 상처는 없지만 20대부터 생긴 원인 모를 아토피로 인해 항상 손과 팔 등에 한포진과 화폐성 습진으로 인한 수포와 붉은 자국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얼굴은 멀쩡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했을까. 하지만 젊은 여자에게 눈에 뛰는 손과 팔의 피부질환을 견디기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나 악수를 하거나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선명해진 붉은기를 대할 때면 손이 왜그러냐, 괜찮냐, 혹은 놀라는 눈빛, 놀라진 않지만 한 번 더 쳐다보는 시선, 모든 게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절대로 어딘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 궁금증의 본능을 억누르고 절대 뒤돌아 보거나 두 번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시선이 생존을 위협하는 호흡곤란과도 같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하루 한 번, 어쩌면 한 달에 한 번도 어려운 그들의 외출을 절망으로 가득차게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악의가 없는 단순한 궁금증이라 해도 두 번 보고싶은 억눌러야 하는 것이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행해야할 도리이며 의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이런 철저함은 나의 두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부터 나의 강력한 교육 지침 중 하나였다. 우리 주변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쉽게 볼 수는 없었지만, 학교 가는 길에 만난 휠체어를 탄 학생, 슈퍼 앞에서 만난 다리를 절룩 거리며 걷는 할머니, 지하철에서 마주친 연신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젊은 청년 등 어딘가 조금 다라보이는 사람들에게 눈길 조차 주지 못하도록 엄격히 가르쳤다. 초등학교 입학 전 까지 아이들은 나의 강한 어조에 이유도 모른체 흠칫 놀라며 두 번 고개를 돌리는 것을 멈췄다. 공공 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아이들에게 일러야 했기 때문에 말보다는 아이의 어깨나 팔을 잡고 눈을 똑바로 마주모며 "보지마." 혹은 "고개 돌리지마"라고 복화술에 가깝게 쏘아 붙였다.
현대 사회는 무관심의 시대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바라지 않는 시선들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무분별하게 보내는 것일까. 동정의 시선이든, 호기심의 시선이든, 본능적인 시선이든, 그것은 직접 닿는 피부 접촉 만큼이나 결례이고 무례이고 범죄이다.
한때 개통령으로 통할 만큼 개 훈련사로 유명세를 탔던 강형욱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 가다가 이쁜 개를 만나셨어요? 제발 그냥 지나 가 주세요."
자신의 반려견을 산책 시키러 나가는 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 고민이라는 한 사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하는 자에게는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이유다. 변해야 하는것은 타인인 우리다. 남의 감추고 싶은 부분, 남의 귀여운 반려동물, 남의 다름에 시선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들이 원하고, 그들이 요청해 오면 그 때 시선과 손길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불필요한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제하지 못하면서, 잔인하게도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모른체 하는 것은 아주 잘 한다.
연인들이 길에서 싸워도, 아이가 혼자 두리번 거려도, 부모로 보이는 어른에게 끌려가도, 그럴만한 이유를 지레짐작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을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위험에 휘말릴수도 있다는 비겁한 핑계로 말이다.
내가 정의의 사도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난 아직 진짜 용기를 필요로 한 진정한 도움을 준 적이 없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어떻게 할지 나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결심해야 한다. 미리 결심하지 않으면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도움을 줄 수 없다.
불필요한 시선은 거두고, 반드시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