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 명령자와 불법 계엄 장갑차를 막은이의 공통점
2025년 5월 취임한 이재명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025년 7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재앙에 가까운 극한 폭우와 산사태로 인한 수해 지역에 약 600여 명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경범죄자들을 급파했다. 이때 발생한 재난이 얼마나 심각했나 하면, 경남 산청 군민 전체가 긴급 대피하는 초유의 사태가 났으며, 300년 만에 최단시간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충남 당진과 예산, 경기도 가평 등지에서 수 천명의 이재민과 수천억의 호우 피해가 발생한 끔찍한 여름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뜨거워진 지구의 바다가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하늘로 올려 보냈고, 그 수증기 구름이 한꺼번에 많은 비를 땅으로 내리꽂듯이 쏟아부은 것이다. 이런 기상 이변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을 보면, 이번 폭우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류의 이기가 만들어낸 인재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도망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예방이나 예견이 불가능했던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던 산청군의 한 마을의 경우, 마을 전체에 해당하는 3,40채 정도의 주택이 모두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 가거나 흙더미에 파묻혀, 복구 불가 판단이 내려져 마을 사람 전체가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때마다 발생하는 자연 재난 피해 복구에는 전국 각지의 민간인들과 자원봉사 단체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하거나 직접 소중한 시간을 들여 복구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여기에 가장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 것이 군대와 경찰, 그리고 해당 지역 공무원들이다. 그리고 일부가 바로 법무부에서 보낸 사회봉사자이다. 이들은 절도범, 도박법, 사기범, 성폭력범, 탈세범, 혹은 벌금을 내지 못한 이들로, 징역형 보다는 다소 가벼운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 옥살이를 대신해 죗값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경범죄자들에게 구금형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것은, 1970년 영국에서 교도소 과밀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안되었으며, 그 효과가 인정되어 현재는 많은 나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비용과 관련된 경제적인 효과들이 있겠지만 인도적이고 계도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그 효과는 단순하지 않다.
이번 수해 피해를 입은 사람 중 안타깝게도 경남 진주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시는 큰 이모가 계셨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산사태로 인한 피해는 피하셨지만, 30년 동안 지내시고 일궈오신 두 분의 농가와 딸기 모종을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침수 피해를 당했다. 가까운 곳에 외삼촌이 살고 계셔서 평소에 하시던 산에서 목재용 나무를 베는 일을 제쳐두시고 큰 이모네로 달려가 수해 복구에 손길을 보태셨다.
무릎 통증이 심한 엄마는 당장 달려가 보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에도 서너 번씩 외삼촌에게 연락해 연로하신 이모와 이모부님의 안부와 함께 복구 상황들을 물어보곤 하셨는데, 수해 복구를 시작한 지 3일 정도 되었을 때, 엄마의 전화를 받은 외삼촌께서는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다.
"누요(누나), 이제 전화하지 마소. 나 힘들어서 전화받을 시간도 없고 힘도 없다. 산에서 나무 베고 약초 캐는 것보다 몇 백배 더 힘들다. 이거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소."라고.
수십 년을 산에서 나무를 베는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 사셨던 외삼촌에게 수해 복구 일이란, 진흙으로 삽으로 퍼내고, 가재도구들을 물에 씻어내고, 빨래를 해서 말리는 등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세탁기는 진즉에 고장이 나, 손빨래를 이틀 정도 하다가 형제들이 보내준 세탁기에 겨우 빨래를 돌려봐도, 흙탕물에 빠졌다 나온 옷이며 이불에서는 흙이 계속해서 나온다. 가스도 끊겨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버너에 밥을 겨우 해 먹는데, 더욱 힘든 건 35도를 육박하는 무더위를 식혀줄 에어컨 마저 고장 나 버리고 수리 기사는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선풍기 두 대로 집안과 집 밖을 오고 가며 그야말로 극한 노동. 이것이야 말로 수해 복구 작업이다.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은 당장에 급하지도 않다. 이미 올해 농사는 망쳤고, 내년 농사 계획조차 희미하다. 당장 누울 자리 하나, 시원한 바람 한 점, 온전히 차려진 밥 한 끼가 급한 이들에게 돈보다 급한 것은 '도움의 손길'인 것이다. 이런 도움을 내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아닌 '남'이 와서 해 준다면 어떨까?
사회에 해를 끼친 자, 공공의 약속인 법을 어긴 자, 남의 재산과 신체에 해를 가한 자들이 몰려와 비와 산사태로 망가진 내 집을 묵묵히 와서 치워주고 닦아준다면? 수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이들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게 도움을 주는 모든 이들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반대로 자연재해 현장에서 복구 작업에 강제로 동원된 이들은 노역을 하는 그 순간은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제 노역이 아니라면 어쩌면 평생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였던 적이 없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따스한 손길을 나눠준 구원자'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의 철길의 분기기와 같은 역할을 사회 봉사 활동 명령 제도의 본질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효과가 아닐까. 쓸모 있는 인간으로서 수해민들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이 된 것이다. 본인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말이다.
사회 봉사 활동에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들이 누군가와 함께 섞여 육체노동을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욕을 해도 함께하고, 무거운 것을 들어도 함께 들고, 시원한 물을 마시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며 느끼는 행복도 함께일 것이다. 이들이 공동의 삶에 소속되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나아가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경험은 다시 사회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
은퇴를 하거나 나이가 들어 외로움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스스로의 쓸모가 더 이상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공의 오랜 쓸모로 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2.3 불법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뉴스를 접하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한 남성이 있었다. 63세 홍원기 씨는 12월 3일 그날 밤 충남 당진의 한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위해 막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계엄 소식을 들었다. 과거 80년대 계엄의 무도함과 잔임 함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일단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후 다른 근무자에게 계엄이 선포돼서 지금 국회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 근무자는 "계엄인데, 거길 왜 가요? 선배님 하고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물었다. 홍원기 씨는 어쨌든 가봐야겠다며 대신 근무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다시 옷을 갈아입은 그는 40분 만에 충남 당진에서 국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그는 그 길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오로지 후대를 생각해서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했던 2,30년간의 암흑기를 또다시 겪을 순 없었다고.
이날 제일 먼저 국회로 달려가 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외치던 많은 분들이 60세 이상의 나이로, 젊은 시절 계엄이라는 반민주주의 사회를 겪은 분들이셨다. 지금이야 계엄이 해제되고 불법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도 파면되고 현재는 구속된 상태지만, 작년 12월 3일 그 당시만 해도 이 나라는 물론, 국민들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분들은 국가의 쓸모 있는 민주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나와 내 가족, 내 후손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 있는 행동들로 인해 지금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2024년 12월 3일 이전과 이후, 그들의 삶의 의미가 얼마나 더 강건해졌을지 내 가슴이 다 뛰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희생할 각오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범위에서의 공공(公共)이라함은, 내가 아닌 남을 포함하여 1인 이상이면 된다. 젊어서 나의 부, 나의 건강,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살아왔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나를 위함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이 오히려 더 나를 빛나게 해 준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