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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라기 실과 1g 바늘로 꿰매는 세상

틈을 메꾸는 건 한 오라기 실과 1g도 안되는 바늘이었다.

by 시월아이

지난주에 마트에서 산 아들의 차량용 목베개 옆구리가 살짝 터졌다. 터진 목베개를 기워달라며 어젯밤부터 나를 조르더니,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급기야는 베개가 싱크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부탁한지 3일이나 지났지만 반짇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루 미루고, 눈이 침침하다며 또 하루 미룬 나에게 시위하듯 어젯밤 자러 들어가기 전 나 몰래 불 꺼진 부엌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자러 들어간 것이다.


아침 6시에 눈도 제대로 못 뜬 나는 아들놈 쿠션 수선을 위해 반짇고리를 찾았다. 한 달 전쯤 수납장 정리하면서 본 듯한 데 도통 보이질 않았다. 한차례 안방과 거실 수납장을 다 뒤지고 나서 허리 좀 펼 겸 바닥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데, 불현듯 반짇고리 위치가 떠올랐다. 거실 모퉁이 내 작은 책상 위 다이소에서 산 3단 투명 서랍장 속이었다. 서랍쪽을 방향을 틀어 벌떡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저만치 서랍 속에서 빛이 번쩍이는 듯 했다. 본능적으로 맨 아래 서랍을 열고 바늘과 벌써 몇 년째 두께가 1mm도 줄어든 것 같지 않은 하얀 실패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겼다.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중학교 2학년 불개미라는 별명을 가진 무시무시한 나이 지긋하신 가정 선생님의 지휘 아래 재봉틀로 반바지를 만든 적이 있다. 내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즈를 재고 마분지에 초안 작업 후 천에 대고 초크로 그렸다. 재단 후 재봉틀로 박음질을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반 아이들의 비명섞인 한숨이 터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와 지퍼를 만들고, 엉덩이의 뷸륨까지 살려 하나의 온전한 바지를 만든다는 것이 열 다섯 소녀에게는 인생 최대의 고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바지를 만들던 두 달 동안 동학년 전체가 매일 아침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렸다. 각 반이 돌아가면서 재봉틀이 있는 가정실에서 일주일에 4시간 바지를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정 선생님은 그 기간동안 어땠을까싶다. 우리보다 몇 백배는 더 학교에 나오기 싫으셨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55명 반 아이들 중 가장 먼저 바지를 완성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전교에서 가장 빨리 완성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꼼꼼한 편은 아니라 박음질 부분이 고르진 않았지만 나름 빠른 손놀림과 교과서의 설명들과 그림들을 빠르게 이해한 덕분에 (지금도 가구 조립이나 아들 레고 조립도 내가 도맡아 한다.) 마지막 수업 4시간은 재봉틀실을 돌아다니며 진도가 잘 안나가던 아이들을 선생님 눈치 봐가며 도와주었다. 물론 그 때 만든 바지는 입고 다니기 불가능할 정도로 얼기설기 엉망이어서 몇 개월 정도 집에 방치되었다가 버렸던 것 같다.


바지도 만들던 이 몸에게 터진 쿠션 기워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사놓고 못 입고 있던 아들의 인생 첫 사각팬티의 라벨도 깨끗이 떼어 줄 계획이었다. 라벨만 가위로 싹둑 잘랐더니 박음질된 부분이 까끌 꺼린다며 입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갓 구입한 쿠션이라 속쿠션이 여전히 빵빵했다. 이 빵빵하다 못해 거만하기까지 한 솜을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눌러놓고, 중지와 엄지로 벌어진 두 천조각의 입을 맞춘 뒤 검지와 엄지로 반대쪽에서 뚫고 들어온 바늘을 잡아 뺐다. 제일 힘이 세거 크다고 엄지손가락이 할 일이 두 배였다. 이쁘게 할 필요 있나, 튼튼하기만 하면 되지. 다시 터질 일 없게, 주름이 생기든 말든 실을 팽팽하게 잡아 빼서 그다음 땀으로 이어갔다. 터진 부위가 크지 않아 쿠션 꿰매기는 3분 만에 끝났다.


그런데 이 짧은 3분의 결과물 좀 보라. 얼기설기 딱 보기에도 개콘의 한장면 같이 우습지만, 탱탱하게 들러붙은 쿠션커버의 두툼하게 경계선이 꾹 다문 장군의 입술처럼 호기로워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집 부엌 식탁에 앉아 두 손으로 갈고리 모양의 목쿠션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미소 지었다. 아니 감탄했다. 작은 손놀림 하나로 제기능을 잃을뻔한 쿠션 하나를 살려낸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서랍에서 꺼낸 아들놈 사각팬티 140 사이즈 석장을 꺼냈다. 이번엔 작은 칼만 있으면 된다. 이번 작업은 좀 전에 해냈던 바느질보다 조금 더 긴장도를 올려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팬티 본디 실밥을 헤쳐 허리밴드와 본체가 분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팬티의 엉덩이 부분을 식탁에 내려놓고, 왼손으로는 실로 단단히 박힌 라벨 끄트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오른 속으로 무딘 칼날을 드밀었다. 세게 잡아당기자 라벨을 잡고 있던 실밥 두어 개가 벌어졌다. 이때다 싶어 칼날로 앞에서 뒤로 사각 한 번 밀었다. 아무리 무딘 칼날이었지 나 실 한 오라기쯤이야 한 번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두 어번 왔다 갔다 하니 라벨이 통째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옳거니. 이번일도 성공이구나. 세장의 팬티가 라벨 흔적 하나 없이 멀끔해졌다.


이 모든 거사를 해 내는데 고작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허리를 쭉 피고 기지개를 켜면서 동시에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이 작은 도구로 이 짧은 시간에 꼭 해야 하는 일 두 가지를 해치웠다는 사실에, 소갈비찜 정도는 성공적으로 요리해 낸 정도의 성취감이 들었다. 작년에 딸아이 애착인형 팔이 덜렁거릴 때 기워준 이후로 오랜만에 드는 재건의 뿌듯함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꿰맬 일 없는 일상, 굳이 꿰매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양말에 구멍이 나도, 단추가 떨어져도, 팬티가 터져도 실과 바늘을 잘 찾지 않게 되었다. 할 줄 아는 솜씨가 있음에도 할 마음도, 할 시간도 점점 사라져 가는 이유다. 어쩌면 세탁기와 건조기 몇 번에 금세 버려져야 할 옷들에 굳이 흉터를 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아이들이 생기면서 인형이나 유치원 가방 등을 꿰맬 일들이 간혹 생기긴 했었다.

그러고보면 취미삼아 하는 코바늘이나 십자수, 퀼트 같은 일들도 상당한 노동을 요하는 취미다. 이들에게 완성품은 단 한 순간도 헛되이 움직일 수 없는 손가락과 눈동자의 움직임의 결과 그 자체다. 나같이 반짇고리가 집안 어디있는지 잘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감히 그들의 긴 시간의 사투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꿰매보면 안다. (평생 바늘 잡아볼 일 없을 남자들에게 강력하게 경험삼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꿰맨 부위는 흉터처럼 볼품 없지만, 꿰맨 옷과 양말과 쿠션과 인형과 이불에는 꿰맨이의 숨과 혼잣말과 온기가 벤다. 그 흔적이 생명 없는 물건에 기억이 이염되고, 추억이 체취처럼 베이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 무언가를 꿰맨 내게 남은 그 물건의 주인들을 향한 애정은 더없이 부풀어 오른다. 상당한(미미해서는 안된다.) 애정 없이는 바늘과 실을 감히 들 수 없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들의 살을 가르고 긴 사투 끝에 다시 그 살을 꿰매는 의사들의 행동은 수술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절차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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