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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라. 그리고 친절하라.

기적을 만드는 다양한 모습의 친절

by 시월아이

아이들과 함께 넷플릭스로 영화 원더 (Wonder, 2017)를 보았다. 개봉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이들이 크면 함께 봐야지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지금까지 기다려왔다.

이 영화의 기본 스토리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 혹은 주제는 1분짜리 예고편만 보아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이 영화를 표현하는 딱 하나의 단어를 들자면 (누가 물어보진 않겠지만) 그것은 바로 '친절'이다. 이 영화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돌려본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드러내는 단어가 '친절'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친절'의 중요성을 외치고, 또 많은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호소한다.


어거스트(영화의 주인공, 극중에서 '어기'로 불린다.)가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은 개학 첫 시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칠판에 적는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 Dr. Wayne W.Dyer

옮음과 친절함 중 선택해야 할 때, 친절함을 선택하세요. - 웨인 W. 다이어 박사


그리고 이 영화의 한국 버전 포스터에는 침대에서 뛰어오른 어기의 모습과 함께 아래와 같은 문장이 써져 있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영화의 포스터부터 영화의 곳곳에 명료하게 드러나는 친절에 대한 예찬은, 내가 살면서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감정이자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영어로 Kindness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세영어 Kinde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원시 게르만어인 kundi-, 자연적인이란 뜻과 kunjam, 가족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굳이 이 둘을 붙여보자면, '가족과 같은 깊은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적인 마음'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내 가족, 내 혈연에게 가질 수 있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친절이라니,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생태유전학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혈연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는 없으니 친절이 그만큼 상대방에게 친밀한 감정과 태도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친절이라는 것이 사실 여러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단순히 빵가게 주인이 빵을 사는 고객에게 보내는 경제적 활동을 위한 다정한 말투와 미소부터, 자폐 등 행동발달 장애 아동이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고성을 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때 그를 쳐다보지 않는 무관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부르는 친절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즉, 친절히 대하라고 했을때 그것이 모두 같은 방식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 심리학 강의'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가 있다.


뉴욕의 한 부유한 상인이 길을 지나다 한 모퉁이 길바닥에서 펜을 팔고 있는 행색이 초라한 노점상을 만났다. 그냥 지나치려던 상인은 1달러짜리 지폐를 펜이 진열된 바닥에 두고 왔다. 잠시 뒤 상인은 허겁지겁 다시 노점상에게로 뛰어갔다. 그러더니 노점상에게 1달러치의 펜을 달라고 했다.


"너무 급하여 그냥 왔소. 펜을 가져가겠소. 아 그리고, 나도 당신과 같은 상인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팔고, 또 때로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부유한 상인은 같은 길을 오랜만에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몇 해 전 바닥에서 어느 노점상에 펜을 팔던 곳 근처 작은 상점에 그 노점상이 가게 안에서 펜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가게 안으로 들어간 상인을 노점상이 먼저 알아보고 뛰어와 상인의 손을 부여잡았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 자존심을 지켜주었어요.

그때 당신이 내게 '같은 상인'이라고 말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부유한 상인은 노점상에게 그냥 1달러를 줬어도 되었지만, 그는 발길을 되돌려 굳이 1달러만큼의 펜을 받아왔다. 돈을 주고 펜을 사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구매에 지나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그 부유한 상인도 다른 여느 고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인은 노점상에 대한 연민과 호의를 되려 감추었다. 필요하지 않은 펜을 사면서도 그것이 필요하여 사는 것이라 강조하였고, 겉보기엔 다리지만 당신과 나는 '같은 상인'이라는 점을 들어 상대방의 자존심과 인격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때로는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친절일 수 있다.


반면 조금 더 적극적인 친절도 있다.


몇 해 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중국의 첸 홍얀이라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가 방영되어 충격과 감동을 전해준 적이 있다. 이 소녀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의족이나 휠체어 대신 농구공을 자신의 몸통에 끼우고 두 팔을 다리 삼아 걸어 다녔다. 이 사실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각종 의료 단체와 중국 정부까지 나서서 아이에게 의족을 주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자신은 수영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중국의 장애인 수영 대표팀 감독이 첸을 찾아와 첸을 훈련시켰고, 두 다리 없이 수영을 배우고, 피나는 노력 끝에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수영선수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첸은 의족을 비롯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더 이상 먹고살 걱정이 없어졌음에도 수영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수영 감독 역시 그런 첸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그 기회는 첸의 피나는 노력과 끈기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수영 감독의 친절은 첸의 '의지' 하나만을 믿고, 그 믿음을 토대로 첸을 포기하지 않고 훈련시킨 것이다. 물살을 가르는 두 팔이 없어도 폭발적인 두 다리로 스피드를 내는 장애인 수영 선수는 있었지만, 두 다리가 없는 수영선수는 첸이 처음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 중에서도 더욱더 큰 장애에 해당된다. 하지만 수영 감독은 첸에게 감독 자신의 인생 일부를 걸고 첸을 수영 선수로 키워냈다.


다시 영화 원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주인공 어기는 선천성 안면 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수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남들과 다른 얼굴로 살아가야 했던 그는, 열두 살 까지도 엄마와 함께 홈스쿨링을 했다. 처음 학교에 가게 된 어기를 괴롭힌 것은 그가 두려워했던 그것, 바로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으니, 바로 친구 잭이었다.

잭은 처음에는 자신도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어기에게 다가가기를 망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기를 재밌는 아이, 친해지고 싶고, 놀고 싶은 아이로 생각하게 된다. 얼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니 어기의 익살스러운 말투와 재치 있는 행동,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엿다. 어기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연민을 바랐던 것이 아니라 편견 없는 시선과 편견 없는 '대함'을 원했던 것이다. 잭은 편견을 버리고 어기에게 다가갔고, 어기는 기꺼의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편견을 버리는 것은 또하나의 중요한 친절이다.


영화속에서 어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스타워즈의 등장인물이 종종 등장하는데 츄바카라는 갈색털로 뒤덮인 2m쯤 되는 거대한 괴물(개와 원숭이 그 중간쯤)도 나온다. 어느 순간 츄바카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현관문에 서있다. 어기는 자신의 특별한 얼굴로 인해 아이들의 시선을 엄청나게 받은 후, 현관문 앞에 서있던 츄바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츄바카에게 한다.


"좀 특이하게 생겼다고 쳐다봐서 미안해."

그리고는 악수를 청한다. 어기를 용서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츄바카의 모습과 미소 짓는 어기.


여기서 우리는 친절의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린다. "무관심"


나와 다른 사람을 아무 편견 없이 보기 힘들다면 아예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라. 이것이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다.


무관심의 철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Kind words do not cost much. Yet they accomplish much. - Blaise pascal

친절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성취하는 바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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