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메야 얻을 수 있는 것들
79년생 남편은 마흔일곱, 지난봄에서야 생에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우리의 신혼여행이 둘이 아닌 셋이었기에 인생 가장 화려해야 할 여행이 제주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제주도도 물론 환상적인 여행지임은 틀림없다.)
이후 아이들을 데리고 국내여행만 여러 번 다녀왔을 뿐, 해외여행은 매번 망설이다 포기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기억에도 없을 해외여행, 나가면 고생만 할 텐데라는 마음이었고, 하나씩 온전한 좌석 하나를 줘야 할 나이가 되자 4인 가족 비행기 티켓값, 아니 여권 발행 비용조차 부담스러웠다.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던가. 작년 결혼 10주년에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지별 예상 비용을 잡아 남편에게 보여줬다. 비용을 보던 남편은 해외로 가는 게 뭐 그리 좋은 게 있냐며 차라리 드라이브도 할 겸 서울 구경이나 가자고 했다. 동남아 여행 정도는 참 쉬워진 요즘이지만 우리 부부는 '분수에 맞는' 생활에 감히 '해외'여행은 가당치도 않다는 다소 구시대적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 지난 4월쯤이었던가.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을 벌써 다섯 번이나 다녀온 친구가 또다시 일주일간의 일본 여행을 계획한다고 해서,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여행일 다니냐고 물었다. 친구는 돈이 어딨냐며, 그냥 카드 할부로 다녀오는 것이라 했다. 항상 의문스러웠던 비용의 출처에 대한 팩트체크에 내심 '그럼 그렇지'라는 안도가 생겼다.
혼자만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였는지, 친구는 같은 회사 동료들은 유럽 여행도 많이 간다며, 자기는 기껐해야 일본이라,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다시 궁금해졌다.
"와, 그 사람들은 진짜 잘 사나 보네."
그랬더니 조금 전 했던 말의 복사 붙여 넣기 같은 대답이 대화창에 떴다.
"아니, 그 사람들도 다 빚내서 가는 거지. 솔직히 다들 대출 끼고 살고, 나도 매달 5억 대출 원리금 꼬박꼬박 내는데, 여행 갈 돈이 현금으로 어디 있겠냐. 애들 따라나설 때 한 번이라도 더 여행 가려고 가는 거지. 이제 곧이다 곧."
그 친구와 나는 똑같이 아홉 살, 열두 살 자녀를 키우고 있다. 친구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었지만 그날 나는 '아이들과 동행'하는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기회를 들며, 남편을 설득해 일본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확신이 없어서 남편을 여태껏 설득하지 못했던 거였다. 남편은 잠심 망설였지만 여느 때와 다른 나의 강한 설득이 내심 반가운가 할 정도로 빨리 결정을 내려주었다.
부산에서 제주도 가는 시간이나, 오사카 가는 데 걸리는 비행시간은 비슷했지만 여권 발권부터 숙소 예약, 관광지 코스 정하기 등,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다녀오기 위한 일정 짜기는 혈혈단신 떠나는 한 달 유럽여행만큼이나 힘들었다. (젊은 시절 영국 어학연수 후 잠시 다녀온 유럽여행 경험이 있었다.)
인내심 부족한 두 아이와 한국을 벗어나는 게 처음인 남편을 데리고 가는 해외여행은 100% 안전해야 했고, 최소한의 헤맴만이 여행의 즐거움과 의미를 지켜줄 수 있다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던 30대 시절 숱하게 해외 출장을 다년던 경험으로 어쩔 수 없이 짊어진 기대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예약한 모든 티켓과 즐겨찾기가 표기된 구글맵, 그리고 시간별, 장소별 스케줄까지 메모한 a4 용지 10장 가까이 챙겨 들고 떠난 첫 우리 가족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우당탕탕이었다.
낯선 곳에서는 헤매야 한다. 그래야 도달할 수 있다.
일본 오사카 공항에 도착해 출국 심사를 하는 순간부터 별 것 아닌 문제로 난관에 부딪혔고, 6월인데도 30도를 웃도는 때 이른 폭염으로 여행 내내 더위로 고생했다. (분명 일기 예보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라고 했다.) 국내 여행이었다면 이러한 날씨의 변화가 우리를 시원한 차 안으로, 혹은 안전한 집으로 예상보다 일찍 돌아가게 했을 테지만, 큰 결정과 큰 비용이 들었던 해외여행이라 일정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고,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청담캔디언니로 잘 알려진 함서경 씨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을, 일단 시작하고 보는 용기였다고 했다. 무역업을 하기 위해 처음 이탈리아에 건너갈 때에도, 미국을 갈 때도, 가장 기본적인 언어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쳐들어가서 맞서고, 맞서 싸웠기에 성공이라는 과실을 얻을 수 있었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기회는 멀어지고 용기는 두려움으로 바뀐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초보 해외여행러인 남편에게도,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나에게도, 처음 마주한 새로운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두 아이에게도 '낯섦'을 오롯이 받아들이게 하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 오로지 두 발로 여행만 했을 뿐인데도 뿌듯한 성취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민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그 고민에 대한 끝없는 헤맴과 탐구뿐이다. 여행, 특히 지금까지 살아오고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이국땅에서의 여행은 헤맴의 본질을 가장 크게 깨달을 수 있는 통로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