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라고?

어쩌라고 저쩌라고~

by 시월아이

요즘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말이 있다.


"어쩌라고?"


우리 아들놈은 남편과 나한테까지도 수시로 어쩌라고를 남발한다. 몇 번 주의를 주긴 했지만 계속 듣다 보니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어쩌라고~라고 할 때 오므리는 그 작은 입과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귀여워 넘겨버리게 된다.


"오늘 일하는데 우리 효준이 엄청 보고 싶더라."
"어쩌라고?'


"너 얼굴에 로션 제대로 안 바르면 뭐 난다."
"어쩌라고?"

"사랑해"
"어쩌라고?"


지난주에 고등학교 동창 집에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그 집 아이들도 자기 엄마에게 어쩌라고를 수시로 썼다. 친구도 그냥 일상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러다 아들놈이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어쩌라고?"를 계속 쓰길래, 전화를 끊고 나서 아들에게 말했다.


"효준아, 친구한테 '어쩌라고'라고 하면 친구가 서운해할 것 같은데. 그런 말은 안 쓰는 게 좋겠다."

".... 네"


그러고 보니 왜 어른인 나에게 하는 어쩌라고는 그냥 넘기면서, 동갑내기 친구에게 하는 어쩌라고는 넘어갈 수 없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대화의 매너상) "어쩌라고?"라는 말은 상대방 앞에서 거의 하지 않는 금기어에 가깝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그건 싸우자는 거다. 보통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속으로 하는 생각 혹은 누군가를 뒷담화할때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다.


아침에 부장이 자기 출근하면서 비에 양말이 홀딱 젖었다면서 투덜대는데,
뭐 어쩌라고? 싶더라니깐.
박과장이 나한테 자기 와이프는 매일 칠첩반상을 차려준다고 자랑하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웃겨~


그러고보니 이 말은 상대방을 근원적으로 무시하는, 굉장히 무리한 언어다.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는 뜻의 줄임말인 '안물안궁'이라고 하는 요즘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재미로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나쁜 결과도 초래한다.


속으로나 해야 하는 말들을 겉으로 내뱉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를 무안하게 하면서 그것을 유머라고 포장해 버리면 그만인 것일까. 유머와 웃음을 위해 희생되는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일까.


옛날 코미디는 영구나 맹구, 혹은 쓰리랑 부부처럼 스스로 바보가 되어 관객을 웃기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머리라도 한 대 때리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콩트나 장면들이 많다. 심지어 정치 토크쇼나 대선 토론에서도 쉽게 접하는 장면이다.


'어쩌라고', '안물안궁'에서 더 나아가 '어쩔티비 저쩔티비~'로 시작하는 제법 긴 랩풍의 유행어들까지.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계속 듣다 보면 따라 하게 되는 '그건 모르겠고~'식의 언와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개인의 이기적 언행들이 여러 개인의 특성 중 하나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닌지 새삼 걱정스럽다.

나의 걱정이 시대착오적인 라떼적 사고일수도 있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 대 인간의 교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대화에서 상대방의 심적 안정감을 무너뜨리고 긴장도를 올리는 이러한 화법은 우리 아이들이 유행어처럼 따라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 살피고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부터 1일.

우리 아들 '어쩌라고' 말 하지 않기 시작한 날 1일


오늘 당장 가서 때려잡....

아니 잘 타일러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꼰대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