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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 내 괴롭힘 생존자입니다

직괴 생존자, 앞서 적는 말

by 시월의 치라

어느 차가운 겨울날, 나는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에 입사하게 됐다. 그 시절의 나는 제법 들떠있었다. 평생을 꿈꿔온 방송가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 아티스트에게 ‘선배님’이라 부르는 그 행위에, 서두르게 흘러가는 도심 한가운데 고층에서 일하는 나 자신에게.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의 직업 만족도에 들떠있는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직속 상사였다.


내가 재직 1년을 채우기 전부터 그녀는 나에게 퇴사를 종용했고, 시일이 흘러서는 비하 발언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틈만 나면 대표실을 찾아가 나의 부족함을 알리곤 했다. 결국 나는 그 회사에서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현재의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몇 년째 일도 하지 못하고 죽고 싶다는 충동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타고나길 우울하고 소심한 기질이었던 것 같다. 입사하기 전 이미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었고, 엔터테인먼트를 다니며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발전해 버렸다.


이런 나의 기질과 병증을 알았기에, 누구에게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싫었다. 게으르거나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되기도 싫었다. 그래서 누가 강요하지도 않은 일을 나서서 하겠다며 손을 번쩍 들었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기획하기도 했다. 종종 야근을 자처하고 무리하게 외근을 하곤 했다.


야근이나 외근을 한 늦은 밤, 택시 기사님에게 일부러 강변북로를 끼고 집으로 가 달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여의도를 빼곡하게 채운 반짝이는 빛들을 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노라며 스스로에게 취해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배달 음식을 무리해서 먹는다거나 쇼핑을 과도하게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러한 나의 행동들은 주로 조증인 상태에서 나타나는 과한 행동이었고, 스스로를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스로를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생기는 몇몇 실수들은 상사의 인내심까지 긁어댔다.


상사는 나를 참아내지 못했다.


인내에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녀는 나를 참아내는 선이 무척이나 낮았고, 사소한 행동이나 별 것 아닌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상사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나에게 하는 행동의 근원을 파악했고, 심리학 책을 뒤져보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그녀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위축되는 모습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게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론은 부당 해고였다. 스케줄을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해내고 퇴사하라는 말에 미련하게 월급에 포함되지도 않는 일자까지 일을 했다.


“제가 이 회사에 도움이 되긴 했었나요”라는 말에 “네가 혼자 일 다 했지”라는 다른 상사 분의 답변을 들은 뒤에야 그나마 웃으면서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펑펑 울었다. 해고당한 사실이 너무 억울했고, 창피했다.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온몸이 찌그러진 채로 살아온 세월이 가여웠다. 불쌍한 나 자신을 위로할 방법도 몰랐고, 계속해서 그때의 기억을 반추하고 되뇌며 나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죽을 결심을 했지만 실패에 그쳤다.


자살고위험자로 분류되어 몇 년간 심리 상담을 받고, 정부의 지원금도 받게 됐다. 상담과 돈은 나에게 일순간의 희망이나 기쁨을 안겨 주긴 했지만 지속적 이질 못했다.


이러다가 진짜로 죽겠다 싶어서 나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민사 소송도 하기 위해 법률 자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적 효력이 있는 3년이 훨씬 지난 사건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퇴사를 한 점 그리고 사측에서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 교육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 건은 ‘행정 종결’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왜 진작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상사는 나의 10년 지기 친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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