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되면 말레이시아 날씨도 시원해집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지도 만 2년이 되어 간다. 이 정도 살아보니, 일 년 내내 무더운 적도의 나라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아침에 유튜브를 통해 듣는 한국 라디오에서는 영하로 떨어진 날씨가 한창 화제였다. 하지만 나의 화제는, 새벽에 쏟아진 비로 훌쩍 떨어진 아침 기온이다. 내가 살고 있는, 적도에 인접한 이 나라의 오늘 아침 온도는 23도. 한창 더운 시기에는 아침 온도가 28도까지 올라가는 곳이다. 평소와는 다른 상쾌한 아침 온도에 기분 좋게 아침을 차려서 아이와 함께 먹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손으로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저물어가는 한 해를 느꼈다.
일 년 내내 무더운 나라. 내가 이곳에 살기 전, 말레이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렬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내내' 무덥지만은 않았다. 요즘처럼 아침저녁에는 시원한, 때로는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반도의 남쪽에서 우기는 대략 11월에 시작된다. 우기의 강수 패턴은 우기가 아닌 때에 내리는 비와는 사뭇 다르다. 시원하게 쏟아지되 하루 종일 내리지 않고 잠깐 스쳐가던 비와는 달리, 우기에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반나절 넘게 지속되는 때가 종종 있다.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계속 내리는 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매일 한낮 온도가 30도를 넘는 이곳 말레이시아에서는, 시원하게 계속 내려주는 비가 반가운 손님이다. 이렇게 긴 시간 비가 쏟아지고 나면, 한동안 무덥던 날씨가 기분 좋게 시원해진다. 청량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 밖에 나가보면 종종 가벼운 재킷을 입은 사람들도 보인다. 이렇게 나는 적도의 나라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이 시기가 되면 기다려지는 게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리안! 고약한 냄새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한 번 맛보면 그 꼬리꼬리한 고약한 냄새마저도 향긋한 냄새로 느껴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열대 과일이다. 하지만, 이 과일도 아무 때나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두리안이 한창 나오는 시기는 6월~8월이지만, 일 년 중 이때, 연말과 연초에도 잠깐 맛볼 수 있다. 두리안이 나오는 철이면, 자주 가는 쇼핑몰 바깥에 두리안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열린다. 두리안 특유의 냄새 탓에 실내에서는 팔지를 못하니 밖에서만 파는 건데, 가게에서 까주는 신선한 두리안을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즐거움은, 말레이시아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두리안 가게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두리안 과육을 입에 넣는다. 이렇게 나는 적도의 나라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내가 사는 곳에 우기(겨울)가 찾아오면 할 일이 많아진다. 살고 있는 집 계약 기간이 연말에 끝나니, 연장을 하든지, 이사를 하든지 결정을 해서 그에 맞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 올해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비우고 다른 집으로 옮겨야 해서, 지금 한창 이사 준비로 바쁘다. 아이와 내 체류비자도 일 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마침 12월이 만료라, 연말이 되면 서류 준비하고 비자 갱신하느라 나름 바쁘게 보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자동차 보험도 다시 들어야 하고, 내 차로 싱가포르에 가기 위해서는 매년 VEP(Vehicle Entry Permit, 차량 출입 허가증)도 갱신해야 하는데, 이것도 12월이 지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말레이시아 생활 2년 차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작년에 비해 수월하게 이 일들을 처리했지만, 11월과 12월은 가장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은 달이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나는 적도의 나라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한국에서 살 때도 12월은 항상 바빴다. 바빴던 일 년 동안의 회사일을 마무리해야 했고, 일 년 동안 소홀했던 친구들도 만나야 했고, 여기저기 가기 싫은 모임에도 불러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번잡함이기는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보내는 12월도 바쁘다. 시원한 비, 달콤한 두리안, 살아가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 말레이시아의 겨울은 이것들과 함께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