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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Feb 25. 2024

<웡카>, 티모시 샬라메가 작정하고 홀리는 영화

영화 <웡카>를 보기 전 주의사항. 일단 당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관람을 고려해야 한다. 화면을 시종 물들이는 형형색색 초콜릿들이 심각한 허기와 혼곤한 정신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자녀와 함께 관람 예정이라면, 비상으로 주머니에 초콜릿을 넣어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화를 보고 난 자녀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초콜릿을 사달라고 조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웡카>는 그러니까 초콜릿 같은 영화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웡카라는 이름에서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을 떠올릴 것이다. 맞다. 웡카는 1964년 로알드 달이 발표한 아동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서브 주인공이다. 찰리라는 평범한 소년이 우연히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은 이미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진 와일더가 웡카를 연기한 1971년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과 팀 버튼-조니 뎁 콤비가 뭉친 2005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그것이다.      


<웡카>는 로알드 달이 쓴 소설에서 직접 건져 올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선 두 영화와 출발선이 조금 다르다. 쇼콜라티에가 되기 전 웡카의 삶을 영화만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 <윙카>다. 시간상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셈이다. 폴 킹 감독은 웡카의 전사를 그리기 위해 로알드 달 재단의 허가를 받았는데, 참고로 폴 킹은 아동문학의 또 다른 대가인 마이클 본드의 <패딩턴>을 동명 영화로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이력의 소유자다.      

기괴한 상상력이 전매특허인 로알드 달 원작은 자기 개성이 강한 감독들을 통해 꾸준히 리메이크돼 왔다.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2005년 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알드 달만큼이나 기이한 판타지를 선호하는 팀 버튼을 통해 시너지가 난 경우. 반면 로알드 달의 '멋진 여우씨'를 <판타스틱 Mr. 폭스>(2009)로 둔갑시킨 웨스 앤더슨은 팀 버튼과는 다른 방식으로 원작을 재해석했는데, 원작의 주요한 쟁점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웨스 앤더슨화시키며 호평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로알드 달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에선 스필버그의 초기 작품 <E.T.>의 향기가 가득 풍겨 나왔었다.  

    

그렇다면 <웡카>는? <패딩턴>에서 폴 킹이 선보였던 인장이 강하게 감지된다. 원작의 웡카가 냉소를 온몸에 두른 은둔자라면, 폴 킹의 웡카는 낙천성을 뒤집어쓴 소년에 가깝다. 실제로 폴 킹은 이번 작품에 대해 "우리가 떠올리는 다소 냉소적이고 비밀스러운 공장장 웡카 이전에 낙관적이고 희망에 찬 초콜릿 메이커 웡카가 있었다고 굳게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마법사이자 초콜릿 메이커인 웡카(티모시 샬라메)가 디저트의 성지인 '달콤 백화점'이 있는 도시에 배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감독의 전작 <패딩턴>도 말하는 곰 패딩턴이 무작정 영국으로 밀항하는 장면으로 시작했었다. 하룻밤 묵을 공간이 없었던 패딩턴만큼이나 웡카의 사정도 딱하다. 손에 쥔 건 단돈 12소버린. 그마저도 눈 뜨고 코 베이는 도시에서 사기를 당해 일부를 잃는다. 이 와중에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에게 돈을 건네는 웡카의 모습에서 영화는 이 캐릭터가 얼마나 긍정적인지 힌트를 흘린다.      

우연히 낡은 여관에 머물게 된 웡카는 호텔 주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맨)의 계략에 빠져 빚더미에 오르고, 여관 지하 세탁소에 갇혀 중노동에 시달릴 처지에 놓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담합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달콤 백화점' 세 악당이 천상의 맛에 가격까지 저렴한 웡카의 초콜릿을 몰아내려 음모를 꾸미면서 웡카는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우리의 낙천적인 웡카는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열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하 세탁소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런 웡카를 돕는다.      


<웡카>에서 트집을 잡을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토리다. 이야기가 대체로 평평하고 플롯이 편의적으로 진행되며 윙카를 위기로 내모는 장치들도 사뭇 작위적이다. 갈등의 낙차가 크지 않고 그 또한 쉽게 풀리기에 고구마 삼킨 느낌 없이 편하게 볼 수 있지만, 대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악당에게조차 귀여움을 부여하고 있는 영화가 안전하게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과정 역시 일견 단조롭게 느껴진다. 나쁘게 말하면 심심하고, 좋게 말하면 무해하다.      


그러나 이 트집을 굳이 부풀리고 싶지 않은 건, 티모시 샬라메라는 존재감 때문이다. 그가 자아내는 어떤 정서가 서사가 품은 단점을 방어하는 동시에 <웡카>의 판타지성을 끌어올린다. 폴 킹 감독은 티모시 샬라메가 지닌 여러 겹의 매력 중, 소년미 부분을 움푹 파서 작정하고 보여준다.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영화 홍보에서 덜 부각되고 있지만, <웡카>는 뮤지컬 장르도 품은 영화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쳇 베이커의 재즈곡 <Everything Happens To Me>를 근사하게 소화하며 관객의 심정에 하트를 박았던 티모시 샬라메는 <웡카>를 위해 토니상 안무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개텔리로부터 4개월간 특훈을 받았다. 그렇게 티모시 샬라메는 노래와 춤, 드라마를 오가며 자신이 왜 현재 가장 독보적인 스타인가를 아낌없이 보여준다(티모시 샬라메는 포크 뮤직의 전설 '밥 딜런'의 전기 영화에서 밥 딜런으로 분해 직접 노래를 부를 예정인데, <웡카>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고편 같기도 하다).      


소싯적이라면, 웡카를 연기했을 법한 영국이 낳은 로코 킹 휴 그랜트의 온몸을 불사르는(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연기도 깨알 포인트다. 92cm 신장의 움파 룸파족으로 분해 충격적일 정도로 잔망스러운 모습과 중독성 있는 춤사위를 보여준다. 티모시 샬라메 못지않은 소년미를 지녔던 왕년의 그를 떠올리면 세월이 다소 야속하게 느껴지지만, 세월과 함께 무르익어가는 배우를 본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다. 한국 관객이 눈여겨볼 만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촬영이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으로 유명한 정정훈 촬영감독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영상미가 나왔다.      


그나저나, 원작의 웡카가 왜 그렇게 은둔자가 됐는가를 이 영화가 알려줄지 알았는데, 보고 나니 더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해맑은 (티모시 샬라메표) 윙카는 어쩌다가 폐쇄적인 윙카가 된 것인가. 그 비밀을 풀지 않은 이유가 후속편을 위한 폴 킹의 큰 그림이라면, 응원을. 후속편이 나온다면 볼 의향이 있다! 다만, 웡카는 그 누구도 아닌 마성의 티모시 샬라메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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