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요원한 복학생 이탕(최우식)은 '한국이 싫어서' 캐나다행을 꿈꾸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갈 계획. 그런 그의 꿈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으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위기에 몰린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자기 때문에 가족들도 손가락질을 당하리라는 두려움,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죽인 사람 환영까지 보인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차라리 죽을까? 그 순간,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알고 보니 연쇄살인마였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덮어지려는 찰나, 이탕은 의도치 않게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또 어쩐 일. 이번에 죽인 사람은 부모를 죽인 패륜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탕을 더 얼빠지게 하는 건, 살인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증거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현실이다. 파리가 CCTV를 '우연히(?)' 가려주고, 개가 범행 현장을 우연히(?) 핥아서다. 이처럼 <살인자o난감>은 우연치곤 기막히게 운 좋은 방법으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이탕의 살인 행적을 옮기며 시작한다. 이탕은 이런 우연이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무섭다. 우연인 게 정말 맞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물음표에 갇힌 이탕 앞에 '사이드 킥'을 자처하는 노빈(김요한)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챕터로 넘어간다. 어떤 챕터? 어쩌면 이 '우연'이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이탕의 살인 행적을 모두 꿰고 있던 노빈이 말한다. "이탕씨. 능력을 의심만 했지, 확신을 가진 적은 없죠? 이탕씨는 잘못한 거 없어요.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자신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이탕의 질문에 노빈이 내놓은 답. "정의 구현이요! 저랑 한 팀이 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자신에게 '인간쓰레기'를 판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은 이탕은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치며 각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탕이 선한 동기에서 출발한 '어벤져스'나 '셜록 홈즈'도 아니거니와, 노빈 역시 정당한 방식으로 그들을 돕는 '닉 퓨리'나 '왓슨'도 아니다.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했더라도, 살인은 엄연히 살인. 여기서 <살인자o난감>의 난감한 딜레마가 깔린다. 이 시리즈의 영어 제목 역시 '어 킬러 패러독스(A Killer Paradox)', 살인자의 역설이다.
'살인자의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명의 인물이 또 있다. 이탕을 의심의 눈으로 주시하는 장난감(손석구) 형사가 그렇다. "피해자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가해자야"라고 말하는 그는 정의 구현은 사법체계 안에서 실행돼야 한다고 믿는 인물. 그러나, 그가 믿는 정의는 핏줄의 진실 앞에서 흔들린다. 또 한 명은 전직 형사였지만 분노를 지렛대 삼아 희대의 살인마가 된 송촌(이희준)이다. 엄밀히 말해, 이탕의 과거였던 남자다. 미래일 수도 있는 남자다. 시리즈는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엮어내며 정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살인자ㅇ난감>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누린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동명 웹툰은 2011년 국내 3대 만화상으로 꼽히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이목을 끈 수작이다. 이 웹툰이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은 데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탁월하게 결합한 독창성이 있다. 캐릭터는 2등신 '명랑 만화'풍인데, 이야기는 묵직한 딜레마를 담은 잔혹 스릴러라는 점이 독자의 관심을 잡아챘다. 웹툰에서 흔히 쓰이는 세로 형식 대신 '4컷 만화' 형식을 차용한 것 또한 개성을 강화시켰다. 형식도 흥미롭고 내용도 예측불허이고, 캐릭터들도 색다른데, 메시지의 깊이까지! 웹툰의 영상화에 원작 팬들의 기대가 컸던 이유다.
물론 웹툰의 이러한 흥미로운 형식은 영상화에 나선 이들에겐 적잖은 허들이었을 것이다. 웹툰의 개성인 4컷 형식을 그대로 옮기는 게 불가능할뿐더러, 그림체의 귀여움 역시 영상 언어로 구현하긴 어려운 부분. 이 난관을 뚫고 그만의 텐션감 있는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리하게도 영상화된 <살인자ㅇ난감>은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을 잘 피해 나간다. '4컷 만화'였기에 많았던 여백에 그만의 디테일한 상상력을 입혀 개연성을 더하고, 리드미컬한 장면 전환과 시의적절한 교차편집을 활용해 쪼이는 긴장감도 불어넣는다. 허를 찌르는 선곡도 좋다.
잔혹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단서를 흘려 관객의 상상을 자극했던 원작과 달리, (요즘 K콘텐츠가 그렇듯) 피의 묘사에 대해선 적극적이다. 원작이 지녔던 정서적 뉘앙스는 이 과정에서 아쉽게도 삭제됐다. 평이해졌단 의미다. 성관계 동영상 유포 피해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이를 재현한 선택 역시 요즘 감수성에는 반하기에 난감하게 보인다.
제작보고회에서 "캐릭터가 곧 장르"라고 언급한 이창희 감독의 말은 사실이다. 중심 화자가 이탕→장난감→송촌으로 바뀔 때마다, 장르는 다크히어로→추리→범죄물로 노선을 바꾸며 극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다만 "개성 있는 캐릭터가 각 에피소드에 나오면서 다른 시선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손석구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캐릭터 각자의 에피소드는 확실히 흥미롭지만, 그것이 모이는 과정에서의 찰기는 어쩐지 부족한데,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송촌이 전면에 나오는 부분부터 시리즈를 견인해온 이탕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게 패착이다. 1+1이 발현돼 2로 시너지를 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1이 등장해 기존에 쌓은 1을 지워내는 느낌이랄까.
캐스팅은 좋다. 최우식은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 너머로 잡초처럼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근성도 흘리는 흥미로운 배우다. 그 이질적인 면모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탕의 변화를 납득시켜낸다. 손석구는 자신이 잘하는 다소 능구렁이 같은 부분을 장난감 형사에게 무리 없이 입혔다. 날것의 감을 잘 표현하는 배우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 시리즈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철저한 계산하에 캐릭터를 움직이는 배우가 아닐까 하는 쪽으로. 전자든 후자든 다음 연기를 궁금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희준은 연신 화면을 장악하는 맹수의 연기를 보여준다. 송촌의 등장과 함께 극의 기세가 꺾이는 연출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시한폭탄을 품은 듯한 이희준의 연기만큼은 매 순간 또렷하게 화면에 각인된다.
이 시리즈 캐스팅 신의 한 수 중 하나는 노빈 역을 연기한 김요한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얼굴의 배우다. 얼굴만 낯선 게 아니라 연기 스타일도 낯설다. 그만의 개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개성 있는 연기에 장면도 살아난다. 검증된 배우의 매력을 잘 뽑아내는 것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는 배우를 발굴해 소개하는 것도 연출자의 자질이라면, 이창희 감독은 그런 자질을 김요한을 통해 증명해 낸다.
얼핏 보면 이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사적 복수'의 서사, 그러니까 '악은 악으로 처단'한 <빈센조>, 복수 대행 서비스를 실시한 <모범택시>, 부조리한 시스템을 겨냥한 <비질란테> 같은 부류로 묶여 거론되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결이 사뭇 다르다. 앞선 작품들이 공권력의 무능에 '똥침'을 날리며 통쾌함과 판타지를 선사한다면, <살인자o난감>은 반대 지점으로 떨어져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 우리를 점검하게 한다.
이를 이끄는 인물이 송촌이다. 송촌은 사적 차원에서 휘두르는 정의감이 뒤틀릴 때, 그것이 당하는 자와 행하는 자는 물론 죄 없는 자들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탕이 송촌을 보며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히 그가 무시무시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그와 같을 수 있다는 자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지점에서 <살인자ㅇ난감>은 심판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심판대에 오른 인물들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