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피하기 힘든 유혹이 있다. 내겐 과자다. 마흔 줄에 들어선 지금도 과자에 죽고 과자에 산다. 어릴 적 가장 애정했던 선물도 과자선물세트였다. 과자 박스는 내게 보물상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과자 킬러인 내가 유일하게 멀리했던 게 ‘양갱’이다. 흐물거리는 식감이 취향에 영 안 맞았다. 엄마는 내가 먹지 않은 양갱을 모아두었다가, 할머니 댁에 가져가곤 했다. 할머니는 양갱을 ‘요깡’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요강’으로 잘못 들었다. 웬, 요강? 양갱의 뿌리가 일본이고, 요깡은 그 잔재임을 그때 알았다. 어쨌든, 치아가 좋지 않은 할머니에게 부드러운 양갱은 에너지원으로 훌륭한 식품이었다. 지금도 양갱을 떠올리면, 은박지를 조금씩 뜯어가며 베어 물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 양갱이 요즘 화제다. 근원지는 비비가 부른 ‘밤양갱’이다.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고, 제과업계 수익 향상에 혁혁한 공을 세우더니, 인공지능 커버 챌린지까지 섭렵했다. 올해의 히트곡이라 단언하긴 이르지만, 상반기 메가 히트상품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밤양갱’은 이별 상황을 노래한 곡이다. 슬픈 가사와 달리, 비비의 통통 튀는 발음이 산뜻하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부분이 하이라이트. 중독성이 엄청나다.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하고 떠나는 연인에게 “내가 늘 바란 건 밤양갱 하나”라며, 밤양갱을 ‘사랑’에 빗댄 은유는 또 어찌나 시적인지.
이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내가 꼽는 인기 요인은 밤양갱이란 과자 자체다. 그러니까, 국내 최고령 스테디셀러 먹거리가, 국민 각자의 뇌리에 스며 있는 ‘추억의 부스러기’를 건드리며 노래 서사를 확장시켰을 것이란 게 내 추측이다. 생각해 보라. 초콜릿이었다면? 너무 흔하다. 탕후루였다면? 치아 걱정이 먼저 든다. 마카롱이었다면? 중장년층의 마음에 그다지 꽂히지 않았을 것이다.
‘밤양갱’은 가수 장기하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장기하는 2008년 전국에 ‘싸구려 커피’ 신드롬을 안긴 바 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랩인지 노래인지 모를 멜로디와 입에 쩍 달라붙는 해학적 노랫말이 압권이다. 장기하는 뭐 재밌고자 썼다는데, 어차피 창작물은 만든 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받아들이는 사람 몫이 된다. 그렇게 반지하 방에서 들이켜는 ‘싸구려 커피’는 당시 88만원 세대로 불린 청춘들의 한탄과 호응하며 시대 공감의 노래로 급부상했다.
음식 노래 최고봉 중 하나는 루시드폴의 ‘고등어’가 아닐까 싶다. ‘전지적 고등어 시점’으로 쓰인 가사에서 시장 좌판에 누워 있는 고등어는 말한다.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자길 먹으려는 이들에게 고맙다니. 엽기적이기도 한 가사를 뒤로하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라는 고등어의 희생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에게 풍부한 단백질을 제공해 왔던 고등어. 고등어에 깃든 정서가 그렇게 노래를 타고 흐른다.
종종 생각한다. 음식의 맛은 혀에 닿는 단맛·쓴맛·짠맛·신맛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 맛을 특별하게 하는 건 미각의 형태로 남은 추억이 아닐까 하고. 지오디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사가 히트 친 이유도 자식을 생각한 어머니의 하얀 거짓말이 짜장면에 얽힌 불특정 다수의 향수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도 추억을 부르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음식으로 나온 고사리 해장국이다. 먹어야 힘을 낸다는 어른들 말에 떠밀려 한 입 떴는데… 이럴 수가, 미치게 맛있었다. 슬픔 한가운데에서 고사리 해장국의 맛을 알아버리다니. 나는 당황했고, 당황해서 또 울었다. 지금도 고사리 해장국 앞에 서면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동시에 입맛을 되살린 기묘한 음식의 힘을 생각한다. 요리사 박찬일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했다. 당신에겐 어떤 음식이 ‘달디단 밤양갱’인가.
('세계일보'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