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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l 27. 2021

도쿄올림픽, 일본은 왜 업데이트가 멈췄나

Warming up! Tokyo 2020

올림픽에는 스포츠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올림픽 관계자들과 각국 정상과 정치인과 돈줄을 쥔 스폰서와 미디어가 있다. 그들에게 올림픽은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 외교의 장이고, 상업 자본 홍보의 장이고, 특종을 잡을 수 있는 현장이다. 개최국에겐? 국가 브랜드를 높일 절호의 기회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여러 욕망이 뒤엉킨 올림픽 유치에 여러 나라가 4년마다 뛰어드는 이유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국가 간 장외 경연장이 되어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 주인공은 ‘일본 IP(지식재산권)’였다고 생각한다. 차기 올림픽 개최지인 도쿄는 ‘도쿄는 워밍업 중’(Warming up! Tokyo 2020)이라는 영상에서 도라에몽, 팩맨, 캡틴 츠바사, 헬로키티, 슈퍼 마리오 등 인기 캐릭터를 대거 등장시켜 일본이 가진 세계적인 IP 파워를 한껏 자랑했다.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아베 마리오’였다. 도쿄 중심가의 초록색 배관 입구로 뛰어든 슈퍼 마리오가 지구 반대편 리우로 이동해 폐막식 경기장에 설치된 배관으로 솟아오르자, 모습을 드러낸 건 슈퍼 마리오 코스프레를 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였다. 실로 멋진 퍼포먼스였다. 단 한 번도 아베를 긍정한 적이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주 조금 달라 보였다. 권력 연장을 위한 정치적 셈법이든, 뭐든, 쇼를 하려면 저 정도는 해야지.    

  

잘 짜인 쇼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닌텐도 주가가 3% 뛰었고, 아베 지지율은 62%까지 치솟았다. 아베는 ‘아베 마리오 신조’라는 친근한 별명까지 집단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무엇보다 이 폐막식 영상은 전 세계인들로 하여금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했다. 예고편이 이 정도인데 개막식에선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려고 이러나.      


개막식은 자국을 홍보할 멍석이 깔리는 자리인 만큼, 개최국의 욕망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즘의 선전 도구로 활용했고, 미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로켓 배낭을 메고 하늘을 나는 로켓맨을 성화 봉송에 동원해 우주 강국임을 내놓고 드러냈다. 장이머우가 연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중국 지도부가 그토록 내세웠던 중화민족의 부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홍보의 장이었다면, 4년 후 열린 런던올림픽에서 대니 보일은 영국의 문화 자산을 한편의 스토리로 꿰어내며 문화 강국의 면모를 뽐냈다. 일본이 이런 노선을 따르리라는 유추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 했나. 리우 올림픽 이후 4년 더하기 1년. 팬데믹이 1년의 변수를 낳았다. 그 사이 도쿄올림픽은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 치르자, 치르지 말자, 치러라, 말아라. 일본 내 여론도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는데, 올림픽이 웬 말이야!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올림픽에는 스포츠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외교가 모이고, 광고가 모이고, 돈이 모인다. 포기는 배추 담글 때나 쓰는 말이라는 듯, 스가 정부는 올림픽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도쿄올림픽이 23일 도쿄 신주쿠의 국립경기장에서 개막했다.   

   

그래서 개막식은 어떠했는가. 일본 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소감으로 대신하자면, “이런 걸 외국인에게 보여주면 정말 창피한 개막식”이 됐다. “(개막식에) 내 세금이 들어갔다. 그거 돌려달라”고 환불 요구까지 한 그의 반응을 빌리지 않더라도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여러모로 심심했다. 리우올림픽에서 선보인 IP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특유의 문화와 예술을 읽어낼 만한 스토리가 부재한 게 뼈아팠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듯 ‘감동으로 하나 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하나가 될 감동의 무대 역시 딱히 보이지 않았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그 어느 때보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시기임에도 그러한 메시지를 풀어낼 역량이 보이지 않았달까.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이번 개막식은 행사 전부터 악재의 악재를 거듭했으니까.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개·폐막식 연출을 총괄한 코뱌야시 켄타로가 과거 유대인 학살을 희화화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물러났고, 지난 3월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사사키 히로시가 여성 연예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연출을 제안했던 일이 드러나 사퇴했다. 개막식 음악감독이었던 작곡가 오야마다 케이코 역시 학창 시절 장애인 친구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른 전력이 논란이 되자 사임했다.      


올림픽 유치 당시 일본이 내세운 목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참사에서 일어나는 ‘부흥의 올림픽’이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을 일본 경제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아베 전 총리와 자민당 정권의 계획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착지해,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개막식뿐이 아니다. 구멍은 선수들의 열악한 숙소 환경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한때 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일본이 1990년대 중반부터 업데이트되지 않아 뒤처지고 우왕좌왕하는 광경을 복잡한 심경으로 목격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과거에 묶여 있는가. 어쩌면 이번 올림픽 개막식 비하인드는 이 모든 걸 설명해주는 축소판인지 모른다.     


('미디어SR'에 기고한 정시우의 우중진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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