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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Mar 07. 2022

<소년심판>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2009년 국내 개봉한 앤드루 가필드 주연의 <보이 A>는 어린 시절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14년간 복역한 후 세상으로 돌아온 ‘소년범죄 가해자’의 이야기다. 새로운 마음으로 사회에 적응하고 싶은 주인공은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힌다. 영화는 묻는다. 소년범의 재사회화를 우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천우희 주연의 <한공주>(2014)는 ‘소년범죄 피해자’의 갈 곳 잃은 표정이 스산하게 작품 속에 스민 작품이었다. 피해자에게 도리어 침묵을 강요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방어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묵묵히 고발했다.     


그런가 하면 유선이 아이 잃은 어미로 분했던 <돈 크라이 마미>(2012)는 ‘피해자 가족’의 울분과 응징을 전면에 내건 영화였다. 같은 학교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딸의 가해자들을 찾아 복수하는 엄마를 통해 영화는 소년범죄에 관대한 법 제도가 흉악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질타했다. <돈 크라이 마미>와 같은 날 개봉했던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소년범죄를 바라봤다. ‘범죄의 악순환’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를 관찰하며 소년범에 대한 편견에 경종을 울렸다. 

    

‘촉법소년’은 왜 대중의 분노를 샀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받는 건 옳은 일일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난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소년범죄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이에 대한 큰 시각 차이를 드러내왔다.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그들 가족 입장에서 전혀 다르게 이야기돼 오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선보인 10부작 드라마 <소년심판>은 이 모든 입장의 총합이라 할 만하다. 소년범죄에서 파생돼 나올 수 있는 여러 관계와 시선을 법정물 장르에 빼곡하게 실어 바라본다.     


드라마는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여러 에피소드가 릴레이하듯 달리는 <소년심판>을 보며 기시감이 드는 건 일견 당연하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에피소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소년들이 던진 벽돌에 한 여성이 사망한 2015년 ‘용인 벽돌 투척 사건’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유괴해 살인한 후 시신을 유기한 2017년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한국 입시 비리의 민낯을 보여준 ‘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미성년자 렌터카 운행 추돌사고 등 범죄 유형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며 소년범죄의 현주소를 살핀다.     

우리 사회에서 소년범죄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이후 도입된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정부 답변 요건인 20만 명 동의를 넘긴 1호 청원도 다름 아닌 ‘소년법 개정 촉구’였다. 이후 소년법 폐지에 대한 목소리는 10대들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특히 나이를 악용하는 소년범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촉법소년(형사 미성년자)’이라는 단어는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는 이름이 됐다. 여론에 민감한 대선후보들이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손보는 공약을 줄줄이 내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행 소년법과 형법에 따르면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미성년자는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는다.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은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한편 14~18세 ‘범죄소년’에게는 형사처분이 가능하지만, 소년법이 정한 특례에 따라 형이 완화된다. 이 모든 건 아동이나 청소년이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해당 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953년 소년법이 제정된 후 70년 가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강력 처벌로 인한 낙인이 도리어 아이에 대한 교화 가능성을 박탈하고 재사회화를 막아 더 큰 범죄자를 키워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년심판>은 ‘소년법 폐지’와 ‘촉법소년’ 논쟁 이슈가 뜨거운 감자라는 걸 잘 간파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이다. 실제로 <소년심판>에서 두드러지게 감지되는 건 이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이 소재에 대해 갖추고 있는 ‘균형감각’이다. 이 작품은 국민 정서에 치우쳐 소년법 처벌 강화에 힘을 싣지도, 그렇다고 온정주의와 손잡고 모든 에피소드를 해피엔딩으로 장식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자극적인 사건 묘사에만 치우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소년심판>은 넓게 본다. 가령, 소년범죄가 만들어지는 원인을 추적해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일깨우고, ‘청소년 회복센터’를 둘러싼 열악한 현실을 조망함으로써 법 너머의 시스템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판사들로 하여금 “소년범 재판은 속도전”이라고 믿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우리나라에선 매년 1명의 판사가 3만 명 이상의 소년범을 만난다)에도 의구심을 던진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뜻도 돼. 과연 가해자가 저 아이들뿐일까? 누구도 비난할 자격 없어. 모두가 가해자야”라는 대사는 그렇게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기계적인 캐릭터 배분은 아쉬워     


균형의 추를 맞추기 위해 <소년심판>이 특별히 신경 쓴 카드는 캐릭터다. 드라마에는 심은석 외에도 차태주(김무열)와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 나근희(이정은) 등 각기 다른 시각과 신념으로 소년범죄를 바라보는 네 명의 판사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네 명의 주요 인물은 ‘신념의 의인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명과 암을 동시에 드러낸다. 다양한 관점에서 극을 풀어내는 데 용이한 구도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에서 인위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배분이란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네 명의 판사 중 한 명은 소년범죄를 저질렀다가 개과천선한 인물이고, 한 명은 (알고 보니) 소년범죄 피해자의 가족이며, 또 한 명은 소년범죄 가해자의 가족이다. 유일하게 한 명만이 소년범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데, 드라마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 인물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관습적이고 관성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모로 ‘주제’를 위해 ‘캐릭터’가 수단화된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 역시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안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소년심판>은 소재에 대한 뚝심이 있는 작품이다. 이 안에는 끔찍한 소년범죄에 대한 어른들의 당혹스러움과, 불행의 대물림 속에 범죄소년으로 낙인찍히는 아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진득하게 담겨있다. 강력범죄 사범 1%에 가려진 나머지 99%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나이를 핑계로 악마성을 드러내는 이들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 등이 두텁게 층을 이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시사저널'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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