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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Apr 06. 2022

<모비우스>, MCU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이 정도면 돌려 꽂기 신공이다. 마블로부터 사들인 ‘스파이더맨’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소니 픽쳐스는 최근 몇 년간, 스파이더맨 관련 키워드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겠다는 심정으로 돌격하는 분위기다. 평행세계에 공존하는 스파이더맨을 한데 모은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만들고, 스파이더맨 저작권 반환을 원하는 마블-디즈니와의 전략적 협력(마블 스튜디오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사용하도록 일시적 허용)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세계도 일부 수혈했다. 지난해 극장가 최대 이벤트로 평가받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삼대 스파이더맨(토비-앤드류-톰) 동창회는 이러한 흐름의 파생 상품.  


이 와중에 스파이더맨의 숙적인 베놈을 독립시켜 독자적인 솔로 무비 <베놈>도 만들었다. 이는 ‘소니 유니버스 오브 마블 캐릭터스’(Sony Pictures Universe of Marvel Characters, SUMC) 확장의 일환으로, 소니는 스파이더맨을 중심으로 하는 ‘소니표 마블’ 세계를 구축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전략은 ‘따로 또 같이’다. 익숙한가? 당연하다. SUMC의 모델이 MCU라는 건, 마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어렵지 않게 짚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세계를 바탕에 깔고, 그 세계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영화화한 후 불러 모으는 방법 말이다. <베놈>으로 포문을 연 SUMC의 목표점이 스파이더맨 악당 패거리들이 총출동하는 <시니스터 식스(Sinister Six)>가 될 것이란 예측도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 <모비우스>는 이 여정에 올라탄 다크 히어로다.  

선천적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의사 마이클 모비우스(자레드 레토)는 동료 마틴(아드리아 아르호나)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몰두 중이다. 흡혈박쥐 DNA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고, 모비우스는 자신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아 약물을 투여받는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뀐다. 건강한 육체와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지만, 대신 피를 수혈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뱀파이어로 거듭난다. 이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죽마고우 마일로(맷 스미스)가 이 치료제를 탐하면서 상황을 급격하게 나빠지고, 어제의 절친은 오늘의 적이 된다.


모르긴 해도 최근 몇 년간 소니 내부는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베놈>이 혹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잭팟’을 터뜨렸고, 마블과 전략적으로 제휴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평행우주론을 기반으로 역대급 빌런들을 불러 모으며 SUMC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 올렸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격한 <모비우스>는 SUMC 세계관 확대를 위한 징검다리로서 맡은 바 임무가 꽤나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비우스>는 창작자의 비전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결과물이다. 거의 모든 요소에서 창의성을 내동댕이친 이 영화는 기존 히어로물의 철 지난 공식들을 잘라 오려 붙이기 한 듯 시종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 영화가 품은 설정 중에 새로운 게 있나? 갈등 구조는 얕고, 사건 개연성은 희미한데, 급하게 러브스토리까지 끼얹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슈퍼 악당의 부재에서 발견된다. 빌런 설정은 나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적이 되는 서사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건 없으니까.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세뇌당한 절친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로 인해 고뇌하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가 배다른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의 악행으로 인해 개고생했듯 이건 꽤 써먹을 만한 설정이다.


문제는 <모비우스>의 빌런 마일로는 캐릭터 뼈대만 있지, 세부적인 살이 거의 붙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는 박쥐 혈청을 맞고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하는데, 약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인간성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건 이상하다. 그는 왜 그럴까. 불치병으로 억눌려 온 게 폭발해서?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춘기가 늦게 와서? 이 모든 물음에 대해 마일로는 별다른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건만 냅다 저지를 뿐이다. 여러모로 동기가 허술하고 빈약하다. 


모비우스를 연기한 맷 스미스는 좋은 배우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농익은 내면 연기를 보여주며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모비우스>에서 그는 이렇다 할 연기력을 선보일 만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배우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연기로 커버하기 힘든 캐릭터가 아닌 까닭이다. 

마일로 정도는 아니지만,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모비우스의 캐릭터 빌드업 역시 좋지는 못하다. ‘선’과 ‘악’ 사이에 모호하게 걸친 이중성이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모비우스>는 이를 ‘변신 전’과 ‘변신 후’로만 편리하게 활용할 뿐 제대로 된 각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를 연기할 때도 그랬지만, 자레드 레토는 이번에도 빈약한 서사로 인해 캐릭터가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 자레드 레토와 히어로물의 만남은 언제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충분한 쓰임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 배우의 재능이 여러모로 안타깝다.


마블 스튜디오가 지난 10여 년간 할리우드 흥행 공식을 재조립하며 증명한 것은 놀라운 ‘비즈니스 수완’이었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히어로물을 가리켜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한들, 히어로 세계관은 당분간 할리우드 산업을 움직이는 중추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소니가 그런 마블의 전략을 흡수해, 스파이더맨 관련 아이템을 종횡으로 펼쳐내고 있는 건 산업적으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MCU와 같은 흐름을 타는 데 성공했을 뿐, 개별 작품 안에서 소니만의 비전은 아직 딱히 보이지 않는다. 쿠키만 연신 뿌리지 말고, 메인 요리의 창의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미디어임팩트'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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