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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n 03. 2022

연기 강호 중의 강호, 송강호

송강호가 수상했다. <브로커>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다. 그의 수상을 바라본 감상을 뭐라 표현해야 하지? 놀랍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그보다는 '받을 만한 사람이 진짜 받았구나'라는 느낌. 가장 한국적인 배우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 영화인들에게 그 창조성을 공인받았다는 기쁨에 더 가까웠다. 세계 3대 영화제(칸·베니스·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연기상을 받은 한국 남자 배우가 '충무로 연기 강호 중의 강호' 송강호라는 사실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송강호는 칸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배우다. <괴물>로 2006년 칸 레드카펫을 밟은 후 올해 <브로커>까지 7번이나 칸을 방문했다. 지난해엔 심사위원 자격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칸은 심사위원 송강호를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페이지를 쓰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적확한 표현이었다.      


실제로 송강호는 한국 영화가 중요한 페이지를 쓰는 순간마다 ‘그곳’에 있었다. <밀양>으로 전도연이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때에도,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안을 때에도,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아카데미를 호령할 때에도 그 곁엔 송강호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해외 무대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영화(인)들의 든든한 지원자였고, 믿음직한 파트너였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주역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수상 후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송강호에게 영광을 돌린 것도, 박찬욱 감독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에 호명된 송강호에게 뛰어가 얼싸안은 것도 이러한 역사 안에서 충만한 의미를 얻는다.      

영화제에서의 성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송강호를 빼놓고 지난 25여 년 한국 영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송강호는 일찍이 관객에게 추앙받은 배우다. 관객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넘긴 <넘버3>가 세상에 나온 1997년부터다. 임춘애를 현정화로 우기며 “내 말에 토토토토토 달지 마”라고 내뱉는 신인배우의 기개는 엄청난 것이어서 그해 신인영화상 트로피는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송강호가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리라 확신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성 강한 충무로 신 스틸러로 활약하지 않을까란 시선도 많았던 게 사실. 그러나 연극 무대에서 다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송강호가 구사하는 말투와 몸짓과 호흡법은 기존 배우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조용한 가족>,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에서 캐릭터의 전형성을 매번 깨부수며 송강호는 자신의 재능이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송강호에겐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해서 사용할 줄 아는 (이제는 한국 대표 감독이 된 박찬욱·봉준호·김지운 등의) 신인 감독들이 있었고, 에너지가 들끓던 신인 감독들에겐 자신들의 표현하고 싶은 한계를 기대 이상으로 돌파해주는 송강호가 있었다. ‘우연’이라거나, ‘운’이라거나, ‘타이밍’ 따위로 수식할 수 없는 만남들. 확실한 건 이 만남의 진짜 행운은, 그들의 협업이 낳은 멋진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훗날, 이 시대를 ‘한국 영화 르네상스’로 기록했다.      

송강호에 대한 평가는 연기뿐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국내 최초로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배우이자, 천만 영화를 4편이나 보유한 배우. 연기파 배우 중에 송강호 같은 압도적인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는 드물고, 톱스타 중에 송강호만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는 더 드물다. 그러니까 송강호는 연기력과 티켓파워 교집합의 최대치다. 배우의 존재가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는 일단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하게 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밑바탕에 있는 건 그의 작품 선택에 대한 신뢰다.      


수많은 장르와 캐릭터를 통과해 온 송강호는 멋을 내뿜는 영웅 캐릭터에 투신한 적이 없다. <괴물>에서 괴수와 맞선 그는 초인적 영웅이 아닌 한강 매점 아저씨였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는 이상한 놈이었으며, <밀정>에서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닌 첩자였다. 조폭으로 출연한 <우아한 세계>에서도 기존 조폭 캐릭터와는 물성 자체가 달랐다. 과로사에 허덕이는 ‘생활형 조폭’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기분 좋게 후려쳤다. 이렇듯 그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가장 보통의 존재로 스크린 안에 앉아, 인간적인 면모를 흘려왔다. 영화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송강호는 시대가 빚어낸 우리 사회의 전광판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마틴 스코시지는 말했던가. 송강호는 그 예시로 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송강호 스타일로 소화하는데, 그럼에도 그가 연기한 배역들이 모두 달라 보인다는 게 놀랍다. 특유의 사투리를 핸디캡이 아닌 시그니처로 만든 게 특히나 경이로운데, 그 비법이 궁금해 죽겠다는 기자에게 그는 언제고 흥미로운 대답을 내어 준 적이 있다.      

"후배가 사투리 연기가 고민된다고 조언을 구하길래 "너의 감정과 연기가 목표가 돼야지, 절대 사투리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 그 개념을 명확히 알면 연기가 좋을 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제조건이 있는 겁니다. 연기가 보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해당 연기의 목표가 명확하게 달성이 되지 않는다면, 사투리 같은 배우의 지엽적인 부분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거죠."     


연기가 보여야 한다는 전제조건. 그래서일까. 그의 연기는 카메라 중심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 있을 때조차 존재감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밀양>이 그 증거물이다. 전도연의 주위를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전도연과 작품을 동시에 밝혀주며, 영화에서 중요한 건 비중이 아님을 온몸으로 시연했다. 감독들로 하여금 “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다른데 그 장면들이 편집에서 기가 막히게 다 붙는다”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는 송강호는 같은 이유로 편집 기사들에게 선택 장애를 한 아름 안겨주는 배우다. 최종 선택되지 않은 필름들만 모아서 상영회를 가져도 엄청난 기록물이 되지 않을까란 호기심은 합당하다.      


앞으로 그는 또 얼마나 많은 테이크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연기를 펼쳐 보일까. 이번 칸국제영화제 수상은 그의 행보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껏 들뜬 대중과 달리 정작 본인은 들뜨지 않는다. “상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배우도 없습니다. 그냥 좋은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그곳에서 격려받고 수상도 하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상이 행복하고 영광스럽지만 이게 목표가 되진 않습니다.” 배우로서 자신이 취해야 하는 목표를 정확히 아는 송강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이즈'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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