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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n 09. 2022

<범죄도시2> 마동석, 육체가 무기가 될 때

백 마디 말보다 주먹 한 방이 더 강력하다. 떡 벌어진 역삼각형 어깨를 위풍당당 드러내며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온 마석도(마동석) 형사는 지체하지 않고 불량 시민과 ‘몸의 대화’를 시도한다. 칼로 난동 부리는 남자를 맨손으로 가볍게 제압. 남자가 씩씩거리며 추가 위협을 가해오자 버릇 좀 고쳐줘야겠다는 듯 아예 접어버린다. ‘푹!’ ‘퍽!’ ‘빠지직!’ ‘윽!’ 여기저기서 터지는 효과음과 함께 방백이 들려오는 듯하다. ‘마석도가 돌아왔구나!’      


액션 영화의 성패를 가늠하는 1인치는 캐릭터에 있다. 아무리 개연성 없는 서사여도 저 인물이라면 저럴 수 있지라고 관객이 동의하는 순간 게임 끝. 이후부터는 영화가 깔아 놓은 세계관을 납득하고 동행하기 마련이다. 마석도(마동석)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2017년 극장가 복병이었던 <범죄도시>를 통해 발부된 바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으로 적을 섬멸해 가는 마석도의 원 펀치 앞에서 관객은 주인공의 안위보다는 그에게 너덜너덜 얻어터지는 악당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봤으니, 이것은 액션물인가 슈퍼히어로물인가.     

‘더 크게, 더 많이’라는 속편의 법칙에 충실한 <범죄도시2>에서 가장 커진 건 마석도의 때리기 신공이다. 한 층 벌크업 한 마석도는 전매특허인 복싱 외에도 유도와 호신 기술을 끌어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적을 뽀갠다. 보통의 영화에선 주인공 앞에 악당이 등장하면 관객이 마음 졸이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르다. ‘조마조마’ 대신 ‘두근두근’이 피어오른다. ‘악당 너, 이제 진실의 방으로 갈 시간이군!’ 불도저처럼 날뛰던 절대 악당 강해상(손석구)과 마석도가 1 대 1로 맞붙는 버스 신은 이 모든 감정의 극대치다. 강해상의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쁜 놈은 철저히 응징한다’라는 마석도식 카타르시스가 스크린에 흐드러지게 만개한다. 맞아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샌드백 역할을 자처하는 강해상의 무시무시한 독기도 이 쾌감을 한몫 거든다.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마석도 액션이 이물감 없이 여겨지는 이유의 중심에는, 이를 연기한 마동석의 ‘육체’가 있다. 100kg에 달하는 묵직한 체중과 압도적 사이즈의 팔뚝, 스치기만 해도 전치 몇 주는 나올 것 같은 불 주먹, 히죽거리는 미소 하나만으로 상대를 오금 저리게 하는 육체 앞에선 지나가던 건달들도 꼬리를 내린다. 이런 마동석의 육체는 같은 편에겐 강력한 무기이고, 상대에겐 피하고 싶은 흉기다. 그러니까 그의 육체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치트키라 할 수 있다. 마블 히어로들도 적과 맞서려면 강력한 무기나 초능력 하나쯤은 필요한데, 마동석은 몸뚱어리 하나면 충분하다. 대중은 그런 마동석의 육체를 이제 일종의 장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비교를 거부하는 육체만으로 그를 향한 대중의 지지가 형성된 건 아니다. 진짜 이유는 피지컬을 뒤엎는 반전 요소에 있다. 이 배우는 압도적으로 살벌하고 의외로 사랑스럽다. 감독들은 이런 마동석의 이미지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질 사채업자(<비스티 보이즈>, <이웃사람>) 28년 형을 복역한 전설의 주먹(<나쁜 녀석들>), 중부권을 장악한 제우스파 조직의 보스(<악인전>)가 마동석 외모가 내뿜는 테스트론 가득한 수컷 냄새를 정직하게 사용한 경우라면, <댄싱퀸>의 게이 커플, <심야의 FM>의 열혈 라디오 애청자, <굿바이 싱글>의 마쁜이(마동석+예쁜이) 매니저는 마동석의 큰 덩치와 험상궂은 이목구비가 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방법으로 대중의 뒤통수를 친 경우다. 


이미지 전복의 화룡점정은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이었다형사(황정민)와 재벌 2세(유아인)의 싸움을 구경하는 군중들 틈으로 심각하게 걸어 나온 마동석은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라는 외침으로 천만 관객의 허를 찔렀다. 유튜브를 통해 아직도 화자되고 있는 이 영상에 누군가는 “유아인이 마동석 밀쳤을 때 유아인 죽고 영화가 끝나는 줄 알고 쪼렸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유아인이 아트박스 유리창에 흠집이라도 냈으면, (유아인) 구속 엔딩이 아니라 갈려버리는 엔딩이 됐을 겁니다”라고 쓴 것도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살벌하다와 사랑스럽다가 ‘or’로 끊어지는 게 아니라 ‘and’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산행>에서 그가 연기한 윤상화는 살벌하고 사랑스러운 두 가지 매력이 접점에서 만나 폭발한 경우였다. 내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애처가지만 좀비 정도는 맨손으로 박력 있게 때려잡는 상화의 매력은 글로벌적으로 먹히는 것이어서 그가 훗날 마블 히어로로 진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에게도 상화의 느낌이 있다. 이웃에겐 다정하지만, 악당 앞에선 얄짤없는 동네 형 같은 형사. 그 와중에 “나, 싱글이야” “누가 5야?”라는 드립도 칠 줄 아는 센스의 보유자. 파괴력은 어마어마한데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고, 험상궂은 인상과 달리 행동은 섬세하며, 일촉즉발의 무거운 분위기도 농담으로 시원하게 쪼개버리는 여유를 가진 사람. 마석도가 믿음직스러운 건 그가 불 주먹 소유자여서가 아니다.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가를 알고 있어서다. 그런 마석도 안에서 사람들은 놀이터처럼 편하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마석도와 한 몸인 마동석의 매력을 발 빠르게 활용하는 것 중 하나가 대중의 욕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고 업계다. 광고계는 스타를 기용함에 있어 그가 사람들의 어떤 감수성을 예민하게 건드리는가를 상업적으로 관측하고 치밀하게 계산한다. CF는 스타가 어떤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가를 간파할 수 바로미터인 셈이다. 그런 광고업계에서 CF 모델로서 마동석이 지닌 필살기는 성별과 세대를 두루 아우르는 친화력이다.      

핫초코 광고에서 마동석 아들로 출연한 아역 모델이 유치원 부모님들에게 던지는 “우리 아빠가 보기보다 순해요”라는 대사는 마동석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의 연장이다. 그런가 하면 마동석을 쿠션 팩트 모델로 기용한 화장품 회사는 그가 지닌 의외성을 최상급에서 사용하는 전략을 썼다. 마동석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약 공익광고도 접수했었다. 마약을 찾는 아이들에게 호통치는 마동석의 한 마디. “아저씨가 무서워? 마약은 더 무서워!” 이 밖에도 그가 광고한 제품은 배달앱 과자 샴푸 치킨 등 그 경계가 없다. 다시 말하면, 마동석은 광고주가 원하는 이미지를 모두 표현해내는 전천후 CF 모델이다.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 영화계 안에서 마동석은 배우만큼이나 ‘크리에이터’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움직이는 배우라는 의미다. 그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참여한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는, 관객이 자신에게 어떤 걸 바라는가를 꿰뚫고 창조해 낸 캐릭터다. 그렇게 충무로 슈퍼히어로라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아이콘이 우리에게 왔다.      


(퍼스트룩(1st Look) 매거진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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