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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n 25. 2022

<브로커> 팔레트로서의 아이유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

타인의 삶에 잠입해야 하는 운명의 배우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자신도 만난  없는 자기 안의 숨은 얼굴이 발각되기를,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반대로 배우에게 타인의 운명을 부여하는 감독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영감을 자극해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존재들일 것이다. 2019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페르소나> 그런 배우와 감독의 니즈가 기획 단계에서 만난 보기 드문 프로젝트였다.

 

<페르소나>  명의 감독이  명의 배우를 각자의 ‘자아 조명한 옴니버스 단편 영화.  프로젝트에 올라탄 감독은 이경미·임필성·전고운·김종관이었고, 그런 그들이 조명한 ‘  뮤즈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며, 이름 하나로 브랜드가  아이유(이지은)이였다. 마침 아이유는 <나의 아저씨> 통해 연기자로서도 영역을 확장해 나갈 때였는데, 그런 그녀에게 백지처럼 남겨진 유일한 공백은 스크린이었다. 아이유로서는 충무로에서 자신의 색깔을 인정받은  감독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매력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존재인 동시에 영화에서  번도 소비된  없는 아이유를 자기만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감독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자명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떤 징후였다. 감독들의 창작열에 호기심을 불어넣는 아이유의 존재감이 바다 건너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까지 닿은 걸 보면 말이다. <나의 아저씨>를 통해 아이유에 입덕한 후 한국 프로젝트 <브로커>를 준비하며 캐스팅을 제안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나가던 아이유는 훗날 이 제안을 “대박!!”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브로커>에 올라탄다는 건 송강호·강동원·배두나라는 한국 영화의 얼굴들과도 호흡을 맞춰볼 절호의 기회로 다가갔을 터다. 그리고 우린 이들의 만남이 낳은 후일담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첫 상업 영화로 아이유는 웬만한 배우들도 평생 한 번 밟기 힘들다는 꿈의 무대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같은 일들이 신인 영화배우 이지은에게 일어난 셈이다.

 

<브로커>에서 아이유는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버리려다, 아기를 빼돌려 돈을 받고 입양 보내려는 상현(송강호)-동수(강동원)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게 되는 미혼모 소영을 연기했다. “<나의 아저씨> 지안이 수차례 윤회한 캐릭터 같다라고 밝힌 아이유의 말마따나, 소영과 지안의 몸엔 비슷한 피가 흐르는  보인다. 사회 밑바닥에 위태롭게 내몰려 있지만, 바스러지거나 침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 뾰족하게 날이  있던 마음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며 치유되는 것도 유사하다. 차갑게 굳어 있던 소영과 지안은 그렇게 극이 진행될수록 따뜻한 피가 도는 인간으로 거듭난다.

 

다만, 소영의 캐릭터가 지안만큼 마음을 파고드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으로만 답하기는 어렵다. <브로커> 아기를 유기한 소영 역시 버려진 아이였고, 성매매로 착취된 삶을 살았으며, 아기에게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유기했다는 서사를 부여하지만 아쉽게도  서사는 그에 합당한 심리 표현의 기회를 부여받지는 못하면서 내내 부유한다. 그나마 동원된 것이라면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죽이는 죄가  가벼워?”라고 부르짖는 소영의 모습인데, ‘아이 유기 ‘임신 중절논리로 덮으려는 설정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을  아니라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 쉽게 공감을 내어주기 힘들다.

납작하게 눌린 서사는 소영뿐 아니라 밀린 빚을 갚기 위해 브로커 일을 하는 상현과 보육원 출신의 동수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들이 갈등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이 헐겁게 느껴진다. 고레에다가 소영의 입을 통해 가장 건네고 싶었을 말, “태어나줘서 고마워”의 감흥이 옅게 느껴진다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모로 <브로커>엔 기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봤던 깊이가 희미하게 탈색돼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유가 연기한 소영이라는 캐릭터가 끝내 흥미로워졌는데, 이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관람차 씬 때문이다. 동수가 손으로 눈을 가려주자, 동수의 손에 숨어 눈물을 흘리는 소영의 모습에서 뭐랄까. 아이유의 어떠한 순간을 압축한 듯한 동일시가 일었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소영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자신의 숨기던 여자가 화장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진짜 맨 얼굴을 보여주기까지의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소영은 용서하지 못할 것 같던 자신을 용서하고, 섞이기 힘들었던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아이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좋은 성과가 있어도 스스로가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자기혐오가 있었을 ”(<유키즈>에서 아이유가  ). 그것이 바뀐 기점은 “스물다섯.” 실제로 스물셋에 발표한 <스물셋>에서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라고 말하던 아이유는 스물다섯에 노래한 <팔레트>에서 “이제 조금   같아 이라고 말하며 불화했던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노래했다그래서였던  같다. 대관람차  에서의 아이유가 인상적이었던 . 그건 진심이 느껴지는 연기라거나, 울림 있는 장면이라는 표현과는 다른 의미의 ‘ 무엇이었다.  

아이유의 성장사는 ‘퍽’ 영화적이다. 한국에서 여성 연예인이, 특히나 귀엽고 무해하고 특정 규범에서 벗어나질 않길 은근히 강요받는 여성 아이돌이 자의식을 드러낸다는 건 여러 고역이 따르는 일. 그 세계 안에서 아이유는 스타 시스템이 자신의 개성을 가위질하는 걸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낸 노래로 대중을 역으로 납득시키며 스토리텔링을 지닌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그건 선배 이효리가 보여준 독보적인 행보와 노래하는 시인 이소라가 보유한 아티스트 기질의 절묘한 믹스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겪은 혼란스러움, 무력감, 상실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터득해 나가는 법을 30대 문턱에서 만난 소영에게 투영해냈다.

 

아이유 하면 떠오르는 음악적 개성은 확고하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를 때도 그렇지만 선배들의 주옥같은 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를 때도 자기 감성으로 노래를 섬세하게 두를  안다. 그에 반해 배우 이지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직 크게 없다. 물론 이것이 배우로서의 단점은 안된다. 자신만의 뚜렷한 음악적 인장이 중요한 뮤지션과 달리, 배우에게 특정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우에게도 자기만의 특화된 감수성은 필요한데, <브로커>에서 아이유가 증명한 것이라면 특정한 순간을 자기 안의 색깔과 조화롭게 빚어내는 흡수력 아닐까 싶다. 흡사 팔레트같은.


(퍼스트룩(1st Look) 매거진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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