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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Nov 19. 2022

<블랙 팬서2> 마블이 채드윅 보스만과 이별하는 방법

그는 흑인으로서의 자긍심이 큰 배우였다. 영화 <42>(2013)에서 인종차별을 딛고 자신의 등번호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긴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 재키 로빈슨으로 분했고, <제임스 브라운>(2014)에서 소울 음악의 전설인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했으며, <마셜>(2017)에선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드굿 마셜을 불러세웠다. 그가 연기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특출한 행보를 보인 흑인 커뮤니티의 상징적 아이콘들. 그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점하는 흑인들을 유의미하게 살려내고자 애썼다. 그건 배우로서 그가 지닌 신념과도 같았다.      


그런 그가 <블랙 팬서>(2018)를 만난 건 운명과도 같았다. 자신이 속한 문화의 슈퍼히어로를 연기한다는 것.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첫 흑인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 그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는 블랙 팬서를 사랑했다. 존경했다. 동시에 블랙 팬서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블랙 팬서>가 문화적으로 미칠 영향력을 고민했고, 잘 해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뒀다. 블랙 필름에 대한 자존감을 보여줬고, 마블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기쁨 한가운데에서 그는 큰 고통을 겪어내고 있었다. 2016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블랙 팬서>와 <어벤져스>에서의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했다.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다. 블랙 팬서는 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를 사랑하는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이들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아픔을 눌러 온 사람. 그리고 2020년 8월 28일, 사랑받는 배우였고, 진정한 투사였으며, 흑인들의 왕이었던 남자, ‘채드윅 보스만’은 세상을 떠났다.      


채드윅 보스만포에버!     


와칸다 왕국의 블랙 팬서로 성장하는 티찰라(채드윅 보스만)는 인종차별이나 편견을 딛고 성공한 인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우월한 민족의 혈통이며 고귀한 정신을 가진 히어로다. 이것은 이 영화를 보는 전 세계 흑인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들에게 블랙 팬서는 힘과 자긍심의 상징이 됐고, 그런 블랙 팬서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만은 곧 블랙 팬서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블랙 팬서> 속편을 제작하며 마블 제작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 단순한 슈퍼히어로를 넘어, 현실 세상 속 흑인들의 아이콘이 된 채드윅 보스만의 빈자리를 누가 대체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리라. 그렇게 마블은 채드윅 보스만을 대신하는 배우를 섭외하는 대신, 그를 애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블의 이러한 선택은 <분노의 질주> 제작진이 폴 워커를 추모한 방식과 같고도 다르다. <분노의 질주> 제작진은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폴 워커(브라이언 역)가 자동차 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에서 그를 CG와 대역(폴 워커 친동생들)으로 살려낸 바 있다. 영화 엔딩에서 브라이언에게 그의 막역한 친구 도미닉(빈 디젤)이 말한다. “넌 늘 내 곁에 있을 거야. 영원한 내 형제로.” 그리고 흐르는 ‘See You Again’ OST. 아, 그 순간의 울컥함이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역시 <분노의 질주>처럼 배우를 대체하진 않는다. ‘티찰라=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으로 남겨 놓는다. 다만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브라이언이 어디선가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그를 대사로 지속적으로 소환하고 있다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영화 속 티찰라도 떠나보내는 방법으로 완벽한 이별을 한다. 이 차이는 크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추억’을 상기시킨다면, 배우의 실제 죽음을 영화 안으로 끌고 온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애가(哀歌)’를 선사한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시작과 끝을 온전히 채드윅 보스만에 바친다. 마블 영화 상징과도 같은 오프닝 로고엔 배경음악 없이 배우의 생전 모습이 나오고, 마지막엔 추모의 메시지가 뜬다. 눈여겨볼 것은 제작진이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상실’이라는 키워드 자체를 작품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누군가에겐 마음을 다해 애도한 작품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슬픔에 너무 잠식당한 히어로 영화로 남을 것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부제를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헌사’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극 전반을 감싸는 애가(哀歌)’      

개인적으로 마블의 이러한 선택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추모와 재미 사이에서의 균형추를 매끄럽게 잡지 못하면서 전진해야 할 곳에서 머뭇거리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영화를 이끌 구심점이 약한 것도 걸린다. 티찰라 동생인 슈리(레티티아 라이트)가 각성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그렇지만,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 흥미롭진 않다. 슈리의 존재감이 티찰라에 견주기엔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을 호평하는 분위기는 알지만, 이것은 이미 1편에서 보여줬던 성과이기에 2편만의 특출한 장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MCU에 첫 등장한 수중 왕국 ‘탈로칸’의 세계관은 흥미로다. 서방 세계가 호시탐탐 노리는 비브라늄을 보유한 나라가 와칸다 외에 또 하나 있다는 설정이다. 이 왕국의 통치자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고, 발에 날개가 달려 하늘도 날 수 있는 인물. 네이머는 인간이 비브라늄을 노리자, 힘을 모아 지상 세계를 치자고 와칸다를 압박하고, 이를 통해 반목한다.      

이때 네이머가 내세우는 논리는 일견 합당하다. 그의 입장에선 비브라늄을 채굴하려는 문명국은 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국민을 구하기 위해 인간과 맞서자는 주장은 일국의 왕이라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여러모로 1편의 안티 히어로였던 킬몽거(마이클 B. 조던)와도 맞닿는다. 미국 흑인 커뮤니티에서 차별받으며 자란 킬몽거는 전 세계 흑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킬몽거의 논리를 1편에서 티칠라가 맞섰다면, 2편은 슈리가 대신하는 구조로 영화는 1편의 정신과 유산을 계승한다.  

    

개국 공신들이 하나둘 은퇴하면서 마블의 숙제/위기로 거론되고 있는 세대교체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대 아이언맨(아이언하트)의 첫 데뷔 무대로 어떻게 기능할지 궁금했던 입장에서 뉴 히어로의 매력이 아직 잡히진 않는다. 이번 영화가 마블 페이즈4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도 살짝 걸리는 지점. 본의 아니게 영웅에 대한 애도에 집중한 영화로 페이즈4가 마무리되면서, 세대교체라는 임무를 가지고 출발한 페이즈4의 동력이 반감된 면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애도이고 추모일 것이다.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면 여전히 채드윅 보스만이 두 손으로 ‘엑스’ 자를 그으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채드윅 보스만 포에버!


(SRT매거진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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