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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선이 Aug 21. 2024

'헝거'와 '왜 우리는 살찌는가'를 동시에 읽으며

덜 정돈된 잡담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고 있다. 저자의 일대기나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육체, 트라우마, 여성, 사회, 관계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솔직한 상상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상당히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인데, 내가 상상은 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저자가 솔직하게 드러낼 때 얻을 수 있는 공감이 있다. 또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감히 알 수 없었을 저자의 내밀한 경험을 마주함으로서 얻는 감정, 배움, 공감, 성찰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저자는 자신의 체중과 몸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소재는 적어도 내가 읽고 있는 부분까지는 반복적으로 재등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이 몸매를 '선택'한 이유와 그 선택을 하게 된 맥락을 끊임 없이 재조명한다. 이 책을 대충 훑어만 봐도 비만을 죄로 치부하는 것, 비만을 비난하는 것, 비만인(이 표현이 적절한지 확신이 없지만)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될 것 같다. 손쉽게 타자화했던 비만이 실제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마주할 수 있는 건 저자의 솔직함 덕분일 거다.


    솔직함에도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겁이 없어서 솔직할 수가 있다. '내가 이 사실을 드러내도 별 리스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리스크의 경중을 따질 때에는 당연히 가치관이 개입된다. 경제적인 손해를 극도로 회피하는 사람도 있고 돈을 돌 보듯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겁이 많은데도 솔직한 사람도 있다. 이건 '용감한 솔직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겁이 나서 도망치고 싶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솔직해져버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나도 주변에서 '이렇게 솔직하다고?'라는 반응을 많이 들었다. 나는 겁이 없어서 솔직한 경우다. 그만큼 '겁이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지 못하다. 내 수치심, 취향, 욕망, 혐오를 드러내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다. 구릴 지언정 구리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했다고 인정하기 싫은 잘못들은 털어놓기가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망하고 비난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어떤 것들은 드러내기에 겁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두려웠을 수 있다. 나였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얽힌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두려웠을 것이다. 내 글을 읽고 상처를 입거나 배신감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가질까봐 무서웠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의 궁금증과는 무관하게 록산 게이는 자신의 작업을 충실히 해냈다. 그래도 나중에는 그가 직접 그것에 대해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그 얘기를 듣고 나면 이 책을 다시 읽을 거다.


    나는 동시에 한권의 책을 더 읽고 있다. 게리 타우브스의 [왜 우리는 살찌는가]라는 책인데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비만을 다룬다. 저자는 인슐린과 지방조절기제를 중심으로 비만의 원인을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의 비만 해결법을 제시한다. 비만에 대한 전형적인 책이다.


    두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헝거를 읽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 비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내 몸을 단순히 혐오하고 싶지 않다. 비만을 나쁜 것, 죄를 저지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라고 강요해도 고개를 치켜 세우고 반항하고 싶다. 자신의 얄팍한 사상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반박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살이 싫기도 하다. 배가 나오고, 가슴이 나오고, 살끼리 겹치고, 처지고, 주름이 생기고, 습기가 차는 게 결코 좋지가 않다. 무언가에 패배하고 실패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극복하려고 하지만 내가 한걸음 달아나면 두걸음 쫓아온다. 내면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피곤하다.


    [왜 우리는 살찌는가]는 그런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다. 이렇게만 하면 비만을 벗어날 수 있어. 너도 살이 빠지고 근육질로 돌아갈 수 있어. (나는 근육질이었다.) 더는 눈치보고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여기 그 방법이 있어!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물론 피트니스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지방 축적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방이 많은 몸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그걸 해결하는 데 유용한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요컨대 직업적으로 필요한 것을 배우려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는 것, 그래서 읽는 거란 걸 부정할 순 없다.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비만한 내 몸을 혐오하려는 나와 그런 나를 혐오하는 또 다른 내가 대립하고 있다. 내 몸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순간적으로 혐오가 치밀어 오른다. 뒤이어 그런 마음을 갖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자책이 반박자 쯤 늦게 따라온다. 


    1년 간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배달음식도 줄였다. 그래도 살이 바로 빠지진 않는다. 마음 속 갈등도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당분간은 두 책을 함께 보며 비만에 대해서도 비만을 해결하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체중계와 눈바디를 함께 사용하며 몸을 감시하면서도 헝거를 읽으며 비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살이 빠지면 내심 기분이 좋을 것이다. 살이 더 많이 빠지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그 뒤에 마음 놓고 배달음식을 늘려서 요요가 올지 운 좋게 살 빠진 몸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장기적인 미래와 상관 없이 당장 살이 빠지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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