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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선이 Aug 29. 2024

'하나 더', '열개 더', 내 16년

헬스장은 하나더의 꿈을 꾸는가

'캉'

쇠질이 난무하는 헬스장에서는 오늘도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 때 그 사이를 뚫고 누군가의 음성이 퍼져 나옵니다.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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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땀흘리는 수강생과 그를 격려하고 몰아 붙이는 트레이너. 그의 입에선 익숙한 듯 '하나 더'라는 소리가 '여러 번' 흘러나와 주변 사람을 미소짓게 합니다.

이를 소재로 한 원망 섞인 괴담도 있죠. 스쿼트를 열개만 하라고 해서 시작했더니 스무개, 서른개를 하고서야 끝이 났다는, 계단을 스스로 내려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수많은 아류작을 낳음과 동시에 피트니스 시장의 스테디 셀러가 된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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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동을 시작한 13살 때부터 마음가짐이 남달랐습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확신할 만큼 자의식이 벌크업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 더'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백개 더'를 외치며 도저히 할 수 없어 바닥에 정면충돌할 때까지 모든 운동을 몰아 붙였습니다. 그때는 가상의 위인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책 주인공'들에게 매료되어 있었는데, 더파이팅의 일보가 하루 5000개의 어퍼컷 훈련을 하고, 인간 정신력의 한계를 넘어서며 푸쉬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깊이 리스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12온스 글러브를 샀습니다. 자기 전에 어퍼컷을 좌우 500개씩 했습니다. 매일 일상 속 비는 시간마다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일어난 직후, 학교 쉬는 시간, 점심 시간, 귀가 직후, 취침 직전 등 다양한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했습니다. 14층에 있던 집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계단을 전력질주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영웅은 일보가 아닌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로 바뀌기도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가 '백개 더 정신'을 거의 흡사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훈련 철학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소년 만화 주인공들은 놀라울 만큼 서로 비슷합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한 열세살 때에 비하면 고등학생 즈음의 제 육체는 훨씬 튼튼했습니다. 팔굽혀펴기, 턱걸이, 제자리 멀리 뛰기 등은 전교에서 거의 1등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전국에서 가장 강한 고등학생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강제로 겸손을 주입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삼대 오백'이 넘는 '괴물'(당시 제 표현)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근성을 백배 정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실제로 더 독하게 훈련했습니다. 일일이 사례를 나열하면 기괴한 사람으로 비춰질 정도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개를 젓게 되지만, 적어도 타인이 '하나 더'를 외쳐주지 않아도 '열개 더'를 해내려는 독기 하나만큼은 한을 품고 죽은 총각귀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제 삶이 진정 '왕도물 소년 만화'였다면 저는 한국에서 제일 강한 정의의 용사가 되어서 히어로 쫄쫄이라도 입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은 지독히도 현실적이었습니다. 저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서도 똑같이 운동했지만 전역하고 복학한 후에도 신체 능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삼대 오백'도 못 드는 초라한(혼자만의 망상 속에서) 남성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인정해야 하는가? 이게.. 유.. 유전자의.. 벽인가..? 내 정신은.. 육체를.. 초월하지.. 못하고 마는가..?! (=꼴값) 실제로 이렇게 연극적으로 상상하진 않았지만 느낌은 비슷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더 나아지질 않으니 재능과 유전 같은 '선천적이라서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신승리라는 용어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운동을 놓진 않았습니다. 열세살부터 즐겨 온 취미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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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이었을까요? 2016년 11월, 만 28세의 나이에 한 줄기 빛을 만났습니다.

그*는 '너도 더 성장할 수 있어'라고 말해줬습니다. 근데 그러려면 딱 하나만 버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게으름, 포기하려는 나약한 마음을 떠올리며 뭐든 다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근성을 버려.'


- 제가 물었습니다. 남들이 100kg로 10개 하고 지쳐서 그만할 때 20개를 하면 두배로 성장하는 게 아닌가요?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 제가 또 물었습니다. 남들이 주4회 운동할 때 주7회 운동하면 4분의 7배 더 성장하지 않나요?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남들이 한번에 두시간 운동할 때 여섯시간 운동하면 세배 더 쎄지지 않나요?

아니야. 마지막 대답도 같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 희대의 빅뉴스였습니다. 성장은 노력/근성/정신력 삼신기에 비례하는 게 아니었다고???


제가 만난 '그'의 이름은 '스트렝스 트레이닝'이었습니다. 그는 수십년간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과 코치, 선수, 군인 등이 어우러져 이뤄낸 연구 성과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는 근력 트레이닝이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멘탈도 중요하지만 '하나 더'가 아닌 '절제와 평정'에 발휘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근성의 온도를 낮추라고 합니다.


그를 만나 저의 세상은 무너졌지만 폐허 속에서 다른 세상이 피어났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근성과 독기를 부르짖으며 '하나 더'나 '백개 더'를 외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근력 수준에 맞춰 무게와 횟수가 미리 정해지고, 1년, 3개월, 한달, 1주, 하루의 계획이 유기적으로 정해졌습니다. 저는 오늘 하기로 한 횟수를 정확히 해내면 됐습니다. 횟수를 더 하거나 덜 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하나 더'는 금지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삼대 오백을 넘겼습니다. 평생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선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 뒤에 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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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평범한 헬스장에서 '하나 더'를 연발로 외치는 무시무시한 트레이너님을 보면 과거의 제가 떠오릅니다. 근성과 독기가 실질적인 성과를 보장해주리라 믿었던, 자의식은 올타임 넘버원이었던 저 말입니다.


과거의 긴 시행착오가 속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현명하게 훈련해도 됩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며 도파민을 유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피로가 다 회복되지도 않은 몸에 새로운 피로를 쏟아 붓지 않아도 됩니다. 계산하고 예측하고 계획한 뒤 성실하게 실행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면 덜 다치고 덜 피곤한데 더 세집니다. 오래,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 더'를 멈추면 '하루 더'가 쉬워집니다.


지금도 예전의 저처럼 훈련하는 분들이 분명히 많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닿기를 희망하며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듭니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학문으로서의 헬스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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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그'는 He나 She가 아닙니다. 스트렝스 트레이닝에는 성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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