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251204)
2년 전 이맘때, 그러니까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고 스쳐가는 연도 아닌 것들만 있을 때 참 많이 불안했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렇게 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한 가치 없는 ‘상품’으로 남아 자리만 차지하는 '악성 재고'가 된 기분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대소사를 성공/탈락, 합격/불합격의 시험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들이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결혼을 고민하기는커녕 고민 할 상대조차 없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낙오자로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고 매사에 자신감도 없어졌다. 꽤 오랜 시간동안 난 나를 '결혼상대로 선택받지 못한 낙오자' 프레임을 씌웠다. 크고작은 다른 성취들이 있음에도 이 강력한 프레임이 나의 모든 정체성보다 앞섰다.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 생각으로부터 어느 정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생각의 전환을 소개한다.
미디어에 영향 받았음을 인지한다 - ‘상품’으로서 ‘선택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대한민국 미디어가 만든 영향이라고 99% 이상 확신한다. 독일에서는 이런 ‘결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실제로 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조건’이 괜찮은 적절한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뤄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 그런 이상이 별로 없었다. 결혼과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그냥 삶과 함께 동반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그것이 목표가 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물론 적은인맥으로 표본이 적었을 확률이 높다). 블라인드 데이트는 없었고, 대부분 본인이 속한 그룹 내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서 가정을 이뤘다. 한국에서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여성에게 가장 잘 팔리는 공포 마케팅은 ‘나이’이다. 나이가 들면 상품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여 아무도 ‘선택’해주지 않을 거라는 그런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 속에서 사는 나 또한 이 공포마케팅의 타겟이 되었다. 난 이미 끝났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끝없이 낮아졌고, 세월을 원망하고, 여자에게만 이런 기준을 세우는 세상을 혐오하게 되었다. 미디어에 의하면, 여자에게 남자는 여자를 오로지 나이와 외모로만 ‘평가’하는 자비 없고 감정도 없는 종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평소 가지 않는 웹사이트를 전전하다가 세상의 잣대로 두려워하는 것은 남자도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산, 키, 머리카락(?)으로 본인의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두려움. 그 표면적 종류 다르지만 결국 여자나 남자나 근본이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온라인 세상에서 남자에게 여자란, 남자의 재산에만 관심 있고 종국엔 그 재산을 탈취하려고 염탐하는 위험한 존재로 자리매김되어있었다. 그렇게 보니 참 의아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여자친구들은 남자의 재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으니까. 대화가 잘 통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소망 하나뿐이니까.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 그때 들었다. 남녀는 서로 오해를 하고 있구나. 내가 속한 사회의 여자들은 남자의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만나려는 미지의 그 남자 또한 여자를 나이와 외모로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겠구나. 우리는 서로 오해를 하고 있구나.
만혼주의자가 된다 - 우리가 저런 미디어의 영향에 절여져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그런 오해에서 빠져나왔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의 인식이 미디어에 익숙해져 있다면 결국은 소수인 나만 오답인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뭔가를 팔려는 미디어가 흐려놓은 장삿속에서 빠져나와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조건을 갖춘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였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스쳐간 연들 중에는 결혼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 해본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결혼이라는 걸 하고 싶은 사람, 전업주부 아내의 내조가 필요한 사람, 부모님이 결혼을 원하시니 그 숙제를 하려는 사람 등등… 이들도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명확해질 거라고 확신했다. 부모님도 서서히 포기를 할 것이고, 따지는 것도 더 줄어들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 그래서 난 만혼주의자를 꿈꾸게 되었다. 40대 중반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나고 싶은 미지의 그 사람은 날 나이로 평가하지 않을 사람일 테니까 좀 늦으면 뭐 어때. 어설프게 빨리 만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늦게 만나는 것이 길고 긴 여생을 고려해봤을 때 더 나을 것이다.
어차피 미래에는 해결이 되어있을 거라면 지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나는 미지의 그 사람을 40 중반에는 만나있을 것이다. 나이가 다 들었으니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도 없을 것이고 누구를 만난 걸로도 감지덕지할 것이다. 부모, 원가족의 영향 없이 그냥 우리 서로 함께 헤쳐나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좀 걸려 미래에는 해결이 되어 있을 거니까 지금 그 문제로 슬퍼할 필요가 없다(참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어차피 해결되어 있을 거 지금은 그냥 즐겁게 즐기는 게 이득이다. 이 생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예상했던 만혼보다 비교적 이르게 미지의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지만, 이것은 내가 뭘 잘했다거나 노력을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물론 충돌이 있어야 반응이 있는 법이니 충돌을 위한 노력은 부단히 했다). 운이 좀 과하게 있었을 뿐. 여전히 결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미디어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아서 오해를 하는 게 많이 있고, 미디어로 인해 탁해진 가치관은 세월이 지나면서 좀 더 맑아지고 또렷해질 것이고, 뭐가 중요한지를 보다 주체적으로 잘 생각하게 될 그때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2년 전 불안해하는 나에게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어차피 만날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거 찾아서 잘 즐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