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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그때의 좋은 죽음처럼만 할 수 있다면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20200410)

  

 내 결심을 발표 한 첫 사람은 고향 친구였다. 그 친구는 일자리가 없어 또래들이 전부 떠난 시골 마을에 홀로 한결같이 지키고 있었다. 복잡, 우울, 분노 따위 없이 자기확신이 가득찬 채로 세상에 마음을 열어서인지, 소설같은 신기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그가 부러운 적이 많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그 흔한 수험생의 불안함도 없었고,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때도 아깝네, 될수 있었는데, 하며 면접장의 재밌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의 삶의 태도를 닮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하게 된 상황에서도 세상 불안감을 다 가진 나에게 그는 이번에도 말했다. 그냥 너의 장점도, 단점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죽음을 결심 한 이후, 기존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만나는 모임들은 부담없고 즐거웠었다. 그것은 더이상 현실이 아니었기에.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곤 했던 한때 나의 괴로움 원인제공자에게도 작별 선물을 주었다. 내가 떠나니까 용서 할 수 있었다. 평생 가까이서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슬픈 자에게는 당신은 '붙잡고 싶은 강물’이라며 마음을 전했다. 마음 뿐이랴. 돈도 오지게 썼다. 어차피 가는 마당인데, 합리화하며 평소같았으면 쓰지 못할 스케일의 지출을 매일 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나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이 한정된 시간을 사용할 만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이 기회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을 수 있지만, 나에게 나는 그저 죽으러 가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며, 나는 오히려 마주한 사람들이 모두 부러웠다. 나는 이기지 못한 이 현실을 죽을만큼의 답답함까지는 느끼지 않고 잘 참고 잘 살아내는 사람들이.  


   기다리던 모든 모임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별일없이 끝났다. 아름다운 추억만 하나, 두개 더 만든채로 난 결국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패닉이 왔다. 지금 이곳은 더이상 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죽고나서의 그곳도 내 곳이 아니야. 나는 정말로 죽는걸까. 그곳도 이곳처럼 매일 탈수있는 시내버스가 있을까, 만약 내 컴퓨터가 고장이 나면 어떡하지, 라면이 먹고싶을땐 먹을수가 있을까, 갑자기 맹장이 터졌는데 수술을 받지 못해 고통속에서 서서히 잠드는건 아닐까, 갑작스런 고립으로 고독사하지는 않을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빨리 잊을까, 금세 제 자리를 찾아 잘 돌아가겠지. 이미 이런 것들은 각오를 했고 그래서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두려움에 아득해졌다. 진정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무서워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고 어차피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두려움에 며칠 밤을 지샜고, 점차 패닉은 공부로 치유된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리고 내가 죽기로 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거 나의 죽음으로, 일종의 보험금 같은 것들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자들을 마주하며, 아 내가 이래서 죽으려고 한거였지, 하고 다시 또 정이 털렸다.  


  그래도 결과론적으로 그것은 꽤 좋은 죽음이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정리 해 볼 수 있었고, 나의 선택은 최선은 아닐테지만 차악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직접 만났고, 웃으며 굿바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말이 지어진 한 이야기로 남았달까. 꽤 정돈된 작별인사로 마무리한 것이 만족스러웠다. 죽음을 원했지만 결국은 또다른 삶 속에서 처절해 지는 것은 또다른 장막이지만. 


   이러한 관계속에서의 사회적 죽음이야, 꽤 흔하다. 초등학교 때 죽고 못사는 단짝이었던 이씨를 내가 최근 15년동안 그리워 한 적이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중 한 명이 이사가는 것조차도 극복하기 힘들만큼 어렸고, 그 이사는 고작 옆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없이 잘 살아왔을테고 그녀도 내가 없이 잘 살아왔을 것이다. 문득문득 '그런 친구가 있었지’ 라고 떠올려야만 떠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로, 더이상 그녀는 내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잘 살아있겠지만, 죽은지 오래다. 지난 애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던 그들과의 추억은 이제 어렴풋이 기억도 잘 나지 않게 되었다. 마주칠 기회가 있어도 의도적으로 늘 피할테니, 나와 교류 할 일 없는, 앞으로 평생 볼 일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진짜 죽음도 이렇게 준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별을 예고하고 서로 준비하여 떠나는 이 떠남당하는 이도 천천히 모든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같이 가면 얼마나 좋겠소,. 할아버지와 손을 마주잡고 다리너머 재를 같이 넘어가면 얼마나 좋겠소. 이웃사람들도 다 손 흔들어줄 거고 나도 잘 있으라고 손 흔들어주고. 이렇게 갔으면 얼마나 좋겠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임종을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하는 할머니의 말처럼. 내가 직접 마음을 먹은 후 나의 계획 아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의 흔적들을 내손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슬프지 않은 꽤 좋은 죽음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후회없이 살라고.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라고. 오늘 나의 하루는 누군가가 그렇게 바란 내일이라고. 그러나 나는 이 말들이 참 못마땅하다. 죽음까지 갈 것 없이, 3년 전 포항 지진 속에 있었을 때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건물이, 벽이, 내가 강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결코 믿지 못할,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나를 짓누를 수도 있는 살인무기임을 받아들이고 나서 나와 룸메이트는 두려움에 잠들 수가 없었다. 자는 사이에 지진이 다시 오면, 5층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두어 시간이 넘는 하소연과 토의 끝에 우리는 지진이 오자마자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저 밑에 큰 나무에 몸을 던져 목숨이라도 건지기로 결론 내렸다. 당연히 그건 말도 안된다. 지진이 와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은 구했지만 팔다리가 부러졌다면? 그런데 그 지진은 규모 3도 안되는 즉, 치명적이지 않은 지진이었다면? 어떠한 순간 속에 있으면서 그 치명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건의 치명성은 결국 결과론적으로 밖에 접근할 수 없다.  



   난 그래서, 진짜 죽음은 준비하지 못한 채 평생 어리석은 상태로 남을 것 같다. 그저 영원히 살 것처럼 존재할 것이고, 조금 다른 의미지만 ‘전부 죽어야 끝난다’는 어제 본 [1917]의 멕켄지 중령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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