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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죽은 삶? 작은 삶?!

소생(20200404)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의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 이렇게 나는 또다시 이별을 준비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공식적인 서류는 만들지 않았으니 첫 번째 이별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이별로 내성이 생긴 것인지 그렇게 슬프거나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도 심지어 이번의 사태로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혼율이 급증했다고 하지 않는가. 정확하게 나도 그런 확률을 빗겨갈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인간일 뿐인 것이다.  

 남편과는 거의 일 년이 넘게 함께 살았다. 말이 남편이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으니 엄밀하게 남편은 아니지. 그래도 사실혼 관계였으니 남편이라고하자. 이혼 한 이후로 그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연애관계는 결국 자주보는 사이에서 시작했고, 자주보는 사이에게 금전과 시간적 여유가 따른다면 동거는 일도 아니었다. 이전에 우리는 거의 매일 보는 사이였는데, 안그래도 일욕심이 많은 내가 퇴근후에 노곤한 몸을 이끌고 만나러 가는 것은, 그를 보고싶은 마음이 크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하루종일 집에 머무는 그는 퇴근후 몇시간밖에 못 만나는 것을 아쉬워했고, 가끔씩 하루종일 내 집에서 머물다가 퇴근 후 나를 맞이해주는 날이 많아졌었다. 특히나, 퇴근후 힘들때 남편이 차려놓은 저녁밥상이 편리해서 가끔 우리집에 머물러 저녁을 차려놓았기를 기대한 적도 사실 많았다. 어차피 퇴근하고 이렇게 매일 보고 데이트를 할거면 돈도 아낄겸 같이 살자는 말이 나왔고 우리 각자의 집 계약 종료 기간이 비슷하게 마무리 될 즈음 우리는 같이 살 집을 구했던 것이다. 물론 프리랜서인 그가 거의 모든것을 다 조사했고 나는 최종 컨펌만을 내렸다. 꽤 인정받는 워커홀릭인 나는 원없이 일하고 집에 늦게 돌아와도 바로 집데이트를 할 수 있는게 좋았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우리가 매일 만날 수 있는것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족할만한 삶을 살았다. 물론 누구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수건개는 법, 치약짜는법, 예고없이 우리집에 있는 남편의 홀어머니 등 전혀문제가 될 줄 몰랐던 것들이 내 기분에 따라 아주아주 거슬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점이 단점을 커버할 수 있었고, 일 때문에 예민해져서 생기는 스트레스겠거니 하며 잘 넘어갔었다.  


  그러나 범세계적 사태로 집에서 일을 하는 일수가 보름을 넘어서면서 그간 내가 회사에 갔을때 남편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낱낱이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중 베스트 그의 어머니였다. 나는 연애 할때 그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과 이 이국땅에 왔기 때문에 친족이라고는 아들 뿐이었고, 서로 오랫동안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친하지는 않지만 가끔 우리집에 방문했을때 밥도 먹고 잡담도 하는 적절한 심리적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냈는데, 이제는 이 어머니가 우리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랴. 요즘 어머니께서 좋은 감정으로 시작했다는 왠 아저씨와 할아버지 중간과정 남자까지 데려오는 것이다. 내가 전혀 좋은 관계를 이루지 않아도 될, 아니 어쩌면 아는사이가 되지 않아도 되는 남남인 그 아저씨와 대면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외출을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는 무서워하면서 일주일에 두번이상 한시간 남짓 거리를 여행하여 우리집에 오는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 어머니와 내가 밥도 잘 먹고 잡담도 하니까 친한 사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사상이다. 남편이야 본인의 어머니고 본인어머니의 남자친구니까 잘지내고 싶은 마음이야 그렇다하지만 내가 잘 지내야 할 의무가 있는가? 그 자리에는 끼고 싶지 않지만, 서로 가족을 이뤄버린 그들에게 내가 끼지 않는 자리가 꽤 섭섭한 모양이다. 끼면 불편하지만 안끼어서 뒷말이나오고 왕따가되는 상황도 불편했기에 나는 반은 끼는척 반은 빼는척 참여했다. 완전히 불편함을 말하지는 못하는게, 이국땅에 와서 오랜시간 부를 축적하신 그 어머니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은 당연히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됐기 때문에 일주일에 사나흘 우리집에 머물며 김치를 담그고, 빵을 굽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재택근무지만 해야할 일의 양은 줄지 않았던 나는 방에서 혼자 일을 하며 그 소음을 가감없이 다 흡수해야만 했고, 그들의 행동은 점차 나의 역치를 넘었다. 버리는 걸 꽤 좋아하는 미니멀리스트로 사람까지 너무 잘 버리는 나는 이번에도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은 다음날 나는 조용히 남편을 불러 살 집을 따로 구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진심은 아닌 이 말까지 덧붙였다. 내가 따로 산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 달안에 나가기로 했다. 물론 다시 번복한다면 좀더 오래있다가 나갈 수 있겠지만 털려버린 정을 붙들고 한달이상 살 수는 없었다. 역시나 아직도 안가고 여기있는 그 세 식구는 내 눈치를 보는 듯 했지만, 나는 평소와 별다를것없이 행동하려 노력했다. 일단 살 곳을 먼저 구해야 한다.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 일을 미뤄두고 방을 구하러 다녔다. 지인 찬스로 구한 집 후보는 두 개. 1번 후보는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탈락했다. 방문하자마자 그 지역의 치안이 드러났다. 가만히 역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위험하기로 유명한 동네로, 한 친구가 이 근처에 살아서 와본적이 있다. 그때 명불허전이라며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집은 그야말로 되는대로 사는 느낌. 질서없고 지저분한 속에서 온갖 소음이 당연한 삶. 되는대로 잡동사니를 덮어두고 망가진 많은 집의 일부분으로 인해 높아진 엔트로피 상태를 그대로 수용하고 공존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함께살아야 하는 사람에 대해 뒷말하는 집주인의 표정으로 그 사람의 성향과 포지션이 어떤지 느낌이 왔다. 대학생이었다면 살았겠지만, 내가 그새 나이가 들고 까다로워졌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대학 시절 이후 집을 이렇게 발로 뛰며 구하기는 처음이었다. 한 집을 보았을 뿐인데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있었다. 그리고 기대하며 찾아간 두번째 집. 함께사는 분은, 중년의 직장인으로 일에 미쳐 이혼을 한번 하신데다가 사생활을 지극히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한다. 동질감이 들었고, 조용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집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찜찜한 점이 있었다. 계약서는 2개월짜리이며 매번 두달씩 연장. 월세는 현금으로 지불. 집주인이 일주일에 두어번 방문, 내가 사용할 방에 짐이 있고 그것을 가지러 출입가능성있음. 게다가 이런 모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라는 것. 이 세입자는 2개월 계약을 했다가 몇 주만에 집을 나가고 싶었고 다음 세입자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40여년 남편만 따라다녀서 거래와 계약의 개념이 아예 없는 순진무구의 이 아주머니와는 대화가 힘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정확히 들어와서 본인의 손해가 아예 없도록 하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대체 뭘어쩌자는건지 본인 처한 상황, 손해보기 싫은 것만 하소연하고 있다. 멍청한 나는 늘 그렇듯이 일단 듣고 본다. 그리고 나는 새 계약을 집주인과 이야기를 할거다, 너도 니꺼 계약 파기에 대해서는 집주인과 이야기를 해라 라는 말을 끝으로, 집주인의 연락처를 받고 끝냈다.


 직접 만난 집주인 부부는 만나자마자 나에게 호의를 보이며 본인들의 조건을 쉼없이 뱉어냈다. 1. 예상했듯이 2개월마다 한번씩 계약서를 쓸것. 온갖 기분좋은 미래의 상황들까지 말을 덧붙인다. 우리가 더 친해지면 계약서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끔 와서 서로 음식도 공유해먹고 자기 친구들 소개도시켜줄테니 함께 밥도 먹자고. 이전 세입자들 일년이상 잘 지낸 사람들이 많았고, 이전에 어떤 애는 아침에 갑자기 아프다고 연락이와서 우리가 가서 응급차 불러서 새벽 5시에 병원 같이 가고 했다, 라며 안물안궁의 그때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 순간엔 믿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찔리는 자의 자기어필 밖에 안되는거지. 2. 월세는 현금으로. 나는 굴하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큰돈을 뽑으러가는게 위험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고. 이유에 대해 본인들은 옆나라 사람들이고 이 나라는 원리원칙을 너무따지고, 융통성없고, 남의일에 간섭이 심하다고. 그래서 공식적인 기록이 남으면 세금에 문제가 생기는 것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냥 탈세하고 싶다는 개소리를 참 정성스럽게 하시네, 싶어서 조금 더 파고 들어서 질문을 했다. 그러자 '너가 어려서 그래. 크면 알게 될 것이야'는게 답변이다. 게다가, 인출이 어려우면 본인들이 도와주겠다고. 집근처 인출기로 매달 본인들이 같이 가주겠다고. 암튼 개소리는 끝까지 들어보는게 주특기인 나는 끝까지 잘 들었다. 3. 본인들이 말하는 보험을 무조건 들어야 입주가능. 친절하게 바로 링크도 보내주신다. 도대체 그게 왜 본인들이 상관할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걸 요구하는 데가 종종 있기는 하니까. 어쨌든 본인들은 내가 마음에 들고 내가 원하는 입주일에 들어오는것으로 하자고 한다. 일단 나도 당장 들어갈 것처럼 대화는 했지만 완전 확신은 안한 상태.  

  내가 원하는 입주라는 말은 이전세입자인 손해 안보려는 아줌마가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어떻게 들었는지 나에게 대뜸 전화가 와서는 본인이 손해보는 것을 어떻게 할거냐며,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볼 것이라 한다. 나는 계약파기는 님이 한거고, 여기는 내가 손해보면서까지 들어오고싶은 좋은 조건도 아닌데, 님 손해보기 싫은것만 내세우며 협상과 조정이 없이 도대체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냐. 협상 공부 좀 하고와라 아줌마야. 라고 말하려다가 상도덕이 이겼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생각해도 찜찜한게 한둘이 아니다. 우연히 일 때문에 연락이 온 동료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계약이란 것은 확실히 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구린게 있으면 무조건 피를 본다고 했다. 우리는 직업 특성상 신분을 증명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집 계약이 엉망이거나 확실한 거래기록까지 없으면 무조건 피보는 일은 생길것이라고 하는 말에 단방에 설득이 되었다. 애매하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성사한 거래에서는 무조건 얼마 못가서 피보는 것은 몇번 있지도 않은 나의 인생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르기로 쉽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동료는 덧붙였다. 계속 도시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왜 나는 도시에 살고 싶을까. 도시가 주는 문화생활과 밤문화를 최근 일 년간 즐긴 적은 없다. 퇴근후에는 지친 하루를 달래기 위한 맥주 두 캔을 사간 후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주말에는 재충전을 해야한다며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나는 도시를 고집하는가? 그저 최고 저명한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의 위안 때문이었다. 동료는 동료 본인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로 오는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니 한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찾아주며 이야기한다. 집세가 매우 저렴하고 회사에 가깝다고. 그리고 인구 밀도가 적어서 야외 활동이 매우 편리하고, 물가가 아주 낮아서 삶의 질도 향상된다고. 본인이 거주하는 빌딩은 한 기업체가 관리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식적인 절차만을 거쳐야 하고 시스템이 제도화 되어있기 때문에 계약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전혀 없다고. 그 장점 모르고 도시에 살았던 건 아니었다. '도시에 산다는 위안'을 위해 저러한 사실들을 모두 외면했던 것 뿐. 오래전 조용한 시골마을에서의 삶을 실패했던 인생 데이터베이스가 있음에도, 그 동료의 말에 아주 강하게 설득되었다. 특히 아이러니하게 나를 매료시킨 가장 큰 그 시골마을의 장점은, 마지막 항목. '시스템이 제도화 되어있기 때문에 계약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전혀 없다’.


도시가 맞지 않아서 시골로 가지만, 그 시골 마을의 맘에드는 포인트는 도시가 주는 제도화와 포멀함. 그러니까‘도시'의 습성.  

(소설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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