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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코로나의 기행

격리(20200327)


1. 

 단지 우리는 살고 싶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생명체로서 생존과 번식을 누가 게을리 하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우리의 조상들이 무슨짓을 했고 어떠한 평가를 받아 왔는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게 된다. 내가 살기만 하면 된다. 우리만 살면 된다.  






2. 

 번식이 꽤 빠른 편인 우리 종족 특성 덕에 난 식구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먹을것만 있다면 번식은 시간문제였고, 살아있는 사람만 잘 찾아 기생하면 식량은 끊임없이 공급되었다. 우리는 제법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한 우리 식구 수 때문에 지속적인 식량 부족 문제가 생겼고, 5만에 가까웠던 우리 식구들은 다른 식량 공급처를 찾아 생존할 수 있도록 제각기 어디로든 떠나야만 했다. 나 또한 5천 정도의 식구를 거느리고 먼 여정을 시작했다. 건강한 우리들에게 다음 식량 공급처를 찾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리더인 나에게 의지하는 식구들이 많았기에 나는 내가 계산한 명령을 내렸다. 여러 무리로 쪼개어 우리는 지하철 손잡이 위에서 노숙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손잡이를 잡는 즉시, 그의 손에 철썩 달라붙고 그가 손으로 얼굴을 만질 때까지 절대로 무슨일이 있어도 손에서 떨어지지 말 것. 우리 몸에는 조그마한 빨판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디 평평한 곳에 달라붙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우리 원정대 중 반은 첫 시도에 모두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손잡이를 잡아댔고, 그덕에 첫 시도에 실패한 반절도 여러번의 시도 끝에 모두 제각기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고작 2분 동안 모두. 내 무리 중에는 그러나, 손에서 얼굴로 옮겨 오지 못한 낙오 된 자들도 많았다. 아직도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은신처를 찾아 정착한 것인지 소식을 닿을 길이 없다. 생이별이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산다면, 적어도 우리 자손들끼리는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리라. 그날을 위해 나는 지금도 열심히 먹고 열심히 번식을 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생존하는게 제일이다. 내가 들어온 이 몸의 주인, 그러니까 우리의 숙주님은 꽤 바쁜 직장인인 모양이다. 며칠 사이에 비행기로 옆 아시아의 자그마한 반도 나라를 몇번이나 오갔던 것 같다. 뭐 숙주님으로부터 우리 누릴것만 먹튀하면 되는 우리에게는 그가 무슨일을 어디서하든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숙주님의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오늘 내일 안으로 돌아가실것만같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결코 좋은 사인이 아니다. 얼른 이곳에서 탈출해야한다. 다른 숙주님을 찾아 여행을 떠나자. 그런데 이 숙주님의 병, 우리 때문인가? 뭐 내가 알게뭐야. 일단 빨리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다치거나 몸이 불편한 우리의 식구들은 여기에 남아 기존 남아있는 식량을 가지고 최대한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고, 나와 몇몇 무리는 또다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떠날 것이다. 어, 그런데 인간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된 것같다. 우리를 볼 수도 없고 우리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를 꽤나 악한 것으로 묘사를 하는 것 같던데,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지금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 갈길을 가야지. 그리고 이미 주검이 되신 숙주님의 몸에서 간신히 나왔을때 나는 이곳이 우리의 본고장이 아닌 숙주님이 출장을 왔던 옆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옆나라로 온 것은 꽤나 다행이었다. 그 이후 며칠간 우리는 또 대호황을 누렸다. 생각보다 우리의 유전자는 새로운 환경에 제법 강하다는걸 깨달았다.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조상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사만 수십 수천번을 했으니, 내가 머물렀던 제각각의 거처에서 태어난 내 자손들 또한 이 나라 사람들 속안 이곳저곳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으리라. 삶의 질이 높아진 우리는 생존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사는 방법 등에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맹목적인 생존을 넘어서서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힘쓰고 있다. 더욱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남쪽지방으로 내려 간 한 무리 덕에 수십 억이 넘는 우리의 민족과, 수천 명의 숙주님들을 발굴하여, 그들은 그곳에 현지 터전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주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이대로만, 딱 이대로만, 나와 내 자손들이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3.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이 땅에 온 지 20일 째가 지나가던 무렵, 이주를 함께 나선 무리들의 실종,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은 이주를 위해 길을 나섰던 젊고 건강한 세대의 무리들로서, 그야말로 소리소문없이 공중분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람과 함께 날려 온 알 수 없는 액체가 몸에 닿은 즉시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는 증상을 보였으며, 이후 몇 초도 안 되어 몸의 색이 검게 변하고 가벼운 바람에도 날릴 수 있을만큼 쪼그라들어 공기중으로 사라졌다고 보고되었다. 그 액체는 우리 몸가죽을 녹여서 변형시킬 수 있는 유기액체.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들이 조치를 취한 것이다.  


 나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식량난이 극도로 심각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주를 자제할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생존의 문제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기구한 예술적 삶을 살던 어떠한 무리들은 그 유기액체에 닿아도 몸이 녹지 않았다. 그들은 꾸준하게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중이었다. 그러나 그들로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모두들 번식은 활발하게 했기 때문에 먹거리가 줄어드는 동시에 점차 쇠약해지는 식구의 비율이 높아졌다. 이주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숙주님의 몸밖으로 나갔을때에 더이상 우리가 이주 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혐오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를 피하기 위해 지역간 이동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간파하여 우리 빨판으로 붙을 수 있는 모든 표면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기침도 입을 완전히 가리고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애초에 우리들은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기도 힘들었다. 다행이도 나는, 어떤 종족에서나 존재하는 자만하고 어리석은 건강한 젊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구사일생을 했다. 우리의 존재를 전혀 믿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던 20대 사람들이 비밀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위태로웠던 내 생명을 구했던 그 젊은 숙주님에게 나는 너무 감사한 나머지, 이 숙주님의 몸 안에서는 약탈과 번식은 하되, 정착은 하지 말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의 생존을 계속했다. 우리의 생존과 정착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이 위협 될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내 알 바인가. 우리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살아야 하는 그 어떤 이유도 없으니까. 




4.  

 그러나, 우리의 생존 욕구가 거세질수록 인간의 우리에 대한 멸종 욕구는 커져만 갔다. 지금 나는 무슨 조치든 취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는 모두 다 굶어죽고 찢겨죽고 멸종할지도 모른다. 




5.  

 다시 또 20일 후, 내 작전이 먹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특단의 조치로 나는 몸의 개성과 내성이 꽤 강한 예술 집단 수 천여개를 모았고, 그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럽행 비행기에 올라탈 것을 명령했었다. 그들이라면 장거리 비행에도, 새로운 환경에서도 문제 없이 적응 하리라. 그리고 먼 유럽땅에서 우리의 정착이 성공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내가 지금 죽으면 아무리 많은 우리의 유전자와 자손이 남겨진들 무슨 소용인가.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박멸하기 위해 ‘자가 격리’를 했고 아무런 이동과 접촉을 하지 않기 시작한 지금.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은 우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인간들의 조치로 인해 우리 종족의 수는 나날이 줄고 있다. 몸이 찢겨 죽고, 새로운 숙주님을 찾지 못해 못 먹어 죽고, 늙고 몸이 허약하여 죽고… 게다가 기존하던 속도대로 번식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먹을것 없이 9일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고작 24시간. 지금의 숙주님을 떠났을때 새로운 숙주님을 하루만에 찾지 못한다면 나도 죽을 것이다. 가만 계산을 해보자…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우리는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도 없이 멸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곳도 먹을것도 없어진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 또한 유럽땅으로 가볼까. 그러나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하늘길은 이미 너도나도 먼저 막아버린지는 오래였다. 게다가 그곳도 이제 점차 우리를 죽이기 위한, 멸종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갑자기 내가 죽을거라고 생각하니 패닉이 온다. 정신차려. 침착하고 계산을 해보자.. 멸종하지 않는 방법. 우리의 악명을 씻어야 한다. 우리가 인간에게 이롭다면…?  우리의 특징? 우리는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전파 될 일이 없다….우리는 번식능력이 매우 좋고 빠르다…. 보름안에 26만명이 넘게 감염시킬 수 있지…..우리는 마음 먹은 곳이면 어디든 잘붙어 있다…. 장기가 기능을 못할만큼 다 막아버린다…사람들은 우리가 몸속에 들어온 것을 빨리 귀신같이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 우리의 감염 여부는 빼박이다. 우리몸은 유전적으로 ACE2수용체도 가지고 있다. 어 맞다 우리가 ACE를 가지고 있었지. 증명해야한다…증명해야 한다…. 



6.

증명해야한다…증명해야한다..증명… ‘텔레그램 방에서 성 착취 음란물을 유통한 이른바 ‘박사’조모씨가 구속된 가운데, 가입자 26만명 전원의 신상공개 청원은 100만 명을 넘겼습니다. ’       

나의 숙주님이 보고 있는 뉴스를 엿듣고, 나는 있지도 않은 내 오장육부가 깨어나는 듯 했다. 


 나는 나갈 채비를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고작 손바닥만한 전자칩 안 전혀다른 딴 세상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과 협업한다면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이 힘든 사태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들 앞에 와있다. 이들과의 접촉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감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ACE2가 있다. 그들은 예상대로 열심히 번식중.. 반복되는 영과 일 사이를 오가며 문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I'm the creeper, catch me if you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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