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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이불가게 이야기

이불(20200306)


드디어 상인회날이 왔다. 한데 모인 상인들은 오자마자 못마땅한 눈치로 수근거렸다.  

'도영이네가 여길 어디라고왔대?' 

'파랑이네가 오라고했대.' 

'참내, 사람이염치가 있으면.. 파랑네도 경우가없네. 도영이네를 부르긴 왜불러!!' 

태란이네가 도영이네앞으로 씩씩대며 다가갔다. 

'도영이네! 니는 여기가 어디라고 와있는거여. 여태우리 망하라고 한짓은 어따두고 인제는 여기와서 조용히 묻어갈라고 하는거여?!' 

파랑네가 말렸다. 

'아이고 태란네. 제가 이제 다시한번 다같이 잘해보자고 불렀으니까. 너무 닦달하지마셔요. 도영이네도 반성하고있고. 여기오늘부터 다시 다같이잘해보자고 기분좋게모였으니까.,,, ' 

'여러분들 정말 머리숙여서 사죄말씀드립니다. 지난일들로 속이많이상하셨을거고 피해를 얼마나 보셨을지 상상도가지않아요,,, 그렇지만 그건 저희엄마가 가게를 하셨을때일이었고,제가 맡은 이후로는 제이름을 걸고 전혀다른 모습의 정직하고투명한 가게가 될거라고 장담드릴수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안건에 모두 뜻이맞아서 함께 저희 북부시장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였다. 북부시장의 이불가게는 총 여섯개. 파랑이네, 도윤이네, 태란이네, 병규네, 리사네 그리고 남동이네. 여섯 이불집은 서로 가까이 위치해있어서 달별로 공용배달도시락을 시켜먹기도하고 부재중시 서로의 가게를 봐주며 선의의경쟁으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워낙 오랜 전통이 있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고객층이 있었으며 각자 나름대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영이네는 가게에 놓고온 핸드폰충전기를 가지러왔다가 태란이네가 무려 새벽다섯시부터 영업을 하고 있는것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파랑이네는 보통 장사를접는 아홉시를 훌쩍넘겨 열한시까지 장사를 하고있었다. 게다가 방학이라 잠시와있는 대학생 조카들의 말빨이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낳고 있어보였다. 해봤자 한달 십만원차이였지만, 나름 매출 서열 1위였던 도영이네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악플이었다. 그나마 기술에 습득이 빨라서 혼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있던 도영이네는 알고있는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총동원하여 파랑이네와 태란이네에서 이가 나왔다는 거짓정보를 퍼뜨리고 있었다.  

웹서핑을 하다보면 알게되는 사이트만 수십여개. 모든 곳에 같은 문장으로 댓글을 달았다. 파랑네와 태란이네는 이 글을 볼 일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신설 동부시장에 이불가게를 하는 사랑이네의 제보로 북부시장 이불집들은 모두 그사실을 알게되었고, 떼로 찾아와 도영이네 주인 머리채를 잡고 물건이 날아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이후로 도영이네의 실운영자는 딸에게로 넘어갔지만, 흉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아무도 도영이네를 찾지 않았다. 재고가 계속 쌓이면서 도영이네는 존폐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하던가. 사랑이네가 있는 북부시장에는 민경이네라는 이불가게도 있었는데, 친척들이 미국과독일에서 사업을 하는 덕에 미제와 독일제 이불을 심지어 저렴하게 팔았기 때문에, 북부시장을 선점하는 프리미엄 이불가게였다. 위기를 느낀 사랑이네는 '우리것이 좋은것이여'마케팅과 박리다매를 시전하여 손해는 조금 봤지만 고객을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똑부러지는 사랑이네가 그걸보고만 있을터랴. 사랑이네는 남아돌아 폐업위기인 도영이네 국산이불을 모조리 사들였고 국산 이불또한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영이네는 사랑이네의 대량구매덕에 조금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불집의 중간에 위치한 도영이네는 다른집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있었다. 이불에서 이가 나온다는 댓글의 여파가 컸던지라 손님들은 불안했고, 고객은 북부시장이 아니라 신설인 동부시장으로 발을 돌린 것이다. 게다가 북부시장의 민경이네와 사랑이네는 경쟁을하느라 품질좋은 제품의 가격을 낮춘 터라 사람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고객을 모조리 빼앗긴 북부시장 이불집들은 다같이망하게 생긴 이 마당에 머리를 맞대서 뭐라도 해보자고 오늘 상인회를 열게 된 것이다. 시장내에서 입김이 제법 센 대세인 파랑이네가 도영이네를 부른 이유는 경계심 때문이었다. 도영이네가 동부시장 사랑이네에서 자꾸 도움을 받으며 사랑이네와 너무 친해져버리면 그들 둘이 재고 거래는 한순간이고 품질좋기로 소문난 사랑이네 외국제 이불이 여기 북부시장에 들어온다면 자기들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랑이네와 도영이네는 별다른 친분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안그래도 눈칫밥을 먹던 도영이네입장에서는 상인회에 끼어준다는 파랑이네가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저지른 일을 속죄한답시고 이참에 싹싹하게 잘보여서 다시 예전처럼 우애좋은 앞옆집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들은 상인회에 모이게 된것이다. 


-그러니께 파랑이네 말은 우리 여섯개 이불집을 하나로 합치자는 말이여?!  

- 음, 아예 합치자는거는 아니고 각자의 가게를 유지하면서 공용 재고 창고를 유지하는건데요, 최근 방문하시는 고객들한테 구두 설문조 사를 했는데요, 가장 불편한점이 원하는 이불을 찾으러 왔을때 어떤 가게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번거로운 점이라고들 하시더라구요.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각자 여섯집이 너무 작아서 가지고 있는 품목 수도 너무 적고.. 특정 소재 이불 찾으로 오시는 손님들 한테 그건 태란이네 가시라고 그건 병규네 가시라고 매번 그러고 있는건 사실이잖아요. 솔직히 각자 가게가 너무 작아서 북부시장에 큰 이불상점들한테 밀리는것 같기도 해요.,,그러니까 공용 재고 창고를 운영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가져다가 파는거죠.  판대로 수익은 각자 가져갈 수 있구요. 어떠세요 다들? 

 야심차게 기획안을 내놓은 파랑이네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보면 이건 파랑이네가 가장 손해를 보는 일일 수 있고, 다른 더 작은 상점들에게는 오히려 이득이 되는 기회였다. 그리고 기존 영업하던대로 각자 독립성을 유지 시켜주는것이기 때문에 굳이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럼 다음주부터 저기 물류창고에 저희 공용칸 만들어 놓겠습니다! 다들 많이 파시고 저희 북부시장에 밀린 상권 다시한번뺏어옵시다!! 


도윤이네는 사랑이네의 도움으로 파산은 면했지만, 보다 획기적인 마케팅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만 할 뿐 감히 실천하지 못했던 그 방법을 실행하려고 한다. …아직까지도 그걸 사람들이 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망한 이불집 소식을 들은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빛 더미에 올라 앉을수도 있는 위험한 수에 도윤이네는 도박을 해보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힌트:유럽 연합 전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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