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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예습에 관하여

시침질(20200228)

 학창시절, 온갖 시험 점수에만 혈안이 되어있었을 때. 가장 중요한건 시험이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주변 친구들의 선행학습이었다. 과외다, 학원이다, 제각각 학교 진도보다 한학기도 훨씬 앞서는 내용들을 배워와가지고는 자기들끼리 문제를 풀며 토론을 하는데,,,그때 시절 지금은 기억이 거의 나지도 않지만, 그 위화감과 불안감만은 생생하다. 나도 예습을 할수야 있었지만 너무 싫었다. 나는 이해력이 좋지 못해서 어차피 혼자 선행을 해도 이해하는데 시간만 오래걸릴 뿐 효과도 없는걸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예습엔 재능도 없으면서 위기감만 느꼈다. 물론 2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의 선행학습들의 효과는 전혀 없었음을 결과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차피 하지도 않을 예습이면서 선행학습에 대한 불안감으로 내 시간과 감정소비를 계속했다. 


  

대학교 첫 여름방학, 아직 적당히 친한 친구에게 방학에 뭘 할거냐고 물어봤다. 아직 고등학생때의 모범생관성이 남아있던 친구는 다음 학기 과목 예습을 할 것이라고 했다. 공부는 고등학교때 할만큼 했고 대학교때는 노는게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그렇게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를 막상 보니 대단하면서도 위기의식을 느꼈다. 예습이라니,,,,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던 나는 나도 예습을 해야하는건가 싶었다. 교과서는 샀다. 그러나 목차 이상을 넘어가지는 못했다. 그러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와 같은전공인 그 예습녀는 당연히 같은 과목을 들었고 첫 수업에 내 옆에 앉았다. 교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용어들이 그저 음성의 이미지가 되어 귀로 스쳐갔다. 반면, 여유있는 예습녀의 표정. 교수님이 한 문장 한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본인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혼자 끄덕이고 있었다.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멍청이가 된 위화감은 있었지만 뭐..내가 놀때 방학때 시간내서 공부한거니까. 예습녀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하며 그녀의 여유를 감히 나는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업시간. 예습녀는 다시 내 옆에 앉았다. 여유있는 그녀의 표정을 한번 다시 구경하려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웹툰 삼매경…. 아니이게뭐지싶어 예습녀에게 물었다. '야, 너 예습해서 이제벌써마스터했어?' 예습녀는 말했다. ‘아니. 내가 방학내내 예습한거 첫수업때 다끝났어….진도 왜케빨라진짜? 답이없다’ 


…하긴, 이 두께의 심지어 원서인 텍스트북을 열여섯시간만에 다 끝내주는 속사포 교수들을 따라가기란 불가능하겠지. 불쌍한 예습녀. 실제로도 속으로도 예습녀를 위로했지만 나는, 내적 유레카를 외쳤다. 예습은 아주 인생에 필요가 없어! 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나는 예습에는 소질이 없다. 어쩌면 나는 예습에는 소질이 없어서 예습이 의미가 없다는 정당성을 외부에서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련의 사건들로 심증만 있었는데 물증으로 예습의 무의미함을 증명했고 난 예습포비아가되었다. 


  그런데, 예습에 소질 없음을 알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예습에 집착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본론과 복습도 없이 예습만으로 결정을 짓는다. 보고들은 무언가로 전체를 판단하고 결론을 지어버린다는거다. 여행지를 예습한다. 사전답사처럼 선행학습을 위해서 구글지도로 그곳은 어떻게생겼는지 주변엔 뭐가있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보고나서 그곳을 이미 다 알게되었고 흥미는 떨어진다. 갈 이유가없다. 음식을 예습한다. 카더라 정보의 조각으로만 나는 그 음식에 모든것을 이미 알고있다. 결국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영화를 예습한다. 트레일러를 보고 그 영화에대해 모든걸 안다고 결론짓는다. 진로 방향을 예습한다. 알고있는 지식과정보를 조각조각모아 짧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다음, 이 길은 아니겠구나. 단정짓는다. 


  이건마치 오분만에 한학기내용의 교과서 한번 속독해놓고 그 과목 마스터 했다고 중간고사만을 기다리는 꼴이다. 주변에서 대략적 프리뷰만 볼 뿐, 상황에 직접 들어가서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학습은 평생에 걸쳐서 하는거라는데, 그저그런 예습만으로 마음의 안도감만을 느끼는 나를 새삼 깨닫는다.

  고작 두 시간 짜리영화도 매번 볼때마다 새로운게 보인다. [신세계]를 다섯번이나 봤지만 볼때마다 이전에는 안보였던 미쟝센이나 복선같은게 새롭게 보이기도한다. 머릿속 물음표만 던져놨던 [인터스텔라]도 두번 세번 볼때마다 제작자가 전달하려는 바를 조금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촬영을 하는 감독은 영화의 모든 내용과결말을 알고 촬영을 시작한다. 어쩔수없이, 그리고 반드시 감독은 그러한 장치들을 숨겨 놓는다.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만약 신이 있다면, 아니 혹은 우리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4차원 이상의 존재들이 있다면, 영화 감독마냥 그들은 이미 나에게 일어날 결말들을 알고 있거나 만들어 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캐치할 수 있는 작고 큰 장치들을 곳곳에 심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힌트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일이분내로 보여주는 예습같은 예고편은 절대 아니다. 몇 번이고 이야기속으로 몸을 던져 들어가야만, 다시보고 또다시 곱씹어 보며 복습할 때야만, 뭔가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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