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 (20210924)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그저 하루하루 지루하기 그지없는 노동의 노예였던 나를 먹을 것과 볼거리가 풍성한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몸소 체험한 내가 ‘그 신’을 섬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답니다. ‘그 신’을 섬기지 않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간증이 존재했거든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신은 필요했어요. 우리는 여전히 여느 시대의 인간들처럼 원하는 것이 있고 마주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게 해 주고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고차원적인 존재를 바랄 뿐이었죠.
‘그 신’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뤄주실 수 있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가끔씩 ‘그 신’이 나를 시험에 빠뜨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신’이 우리에게 고난을 줄지언정 그것은 보다 큰 ‘그 신’의 뜻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에요. 버티고 또 버틴다면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신’의 영원한 구원을 받는 날이 온다면, 결국 우리는 ‘그 신’의 품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 평안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정말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때는 여러 신들이 존재했죠. 각양각색의 사람만큼 다채롭고 다양하던 신. 그 시절에 ‘그 신’은 오히려 조금 과소평가되었지요. 뭔가 조금 천한 존재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었거든요. 아마도 꽤나 최근,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무슨 연유인지 근래에 들어서 ‘그 신’을 섬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그 신’을 찬양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 분위기 속에 저도 마음 놓고 ‘그 신’을 섬기고 찬양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특히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들어서 '그 신'을 향한 믿음에 어떤 커다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신'으로부터 단 한번만 구원 받으면, 여생이 평안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껏 퍼져들었죠. 안그래도 힘든 세상이다보니 너도나도 믿고 따르게 되었던 것 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그 신’을 향한 분위기가 한껏 과열되다 보니 ‘그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구박을 받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그 어떤 신도 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죄가 없었죠. 신을 모시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니까요. 허나, ‘그 신’만큼은 그 어느 누구라도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그 신’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문이라도 난다면, 무식하고, 무능력한 인간이라면서 더 이상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을 테니까요. 유일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 신’. 심지어, 다른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신을 믿는 자들에게도 ‘그 신’은 위대한 신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본인들 말로는, ‘그 신’은 엄밀히 말하면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신의 레벨에 끼지 못하는 천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오히려 ‘그 신’을 유일신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친구들과 만나든, 가족과 함께 있든, 직장에 가서든, 하루 종일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 신’에 대한 이야기뿐이니까 말이죠.
‘그 신’에 대해서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은 ‘그 신’을 섬기는 교리에 대해서 수도 없이 많이 연구를 이미 해 놓았어요. 그리고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신자를 본다면, 구박을 하기 시작했죠. 제 친한 친구의 이야기랍니다. 그 친구는 최근 힘든 일이 많았어요. 특히나 가정에서 뭔가 안 풀리기 시작했나 봐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는 ‘그 신’을 섬기는 일이 우선시될 수가 없었죠. 아, 처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지쳐 쓰러져 ‘그 신’에 대해 의심 하기를 시작했다나 봐요. 당장이 힘든데 영원한 평안이 무슨 소용인가, 하면서 말이죠.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그 친구의 믿음을 북돋아줬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나태해지면 안 된다고, ‘그 신’을 모시는 일만큼 중요한 건 세상에 더 이상 없다고, ‘그 신’ 말고는 아무도 너를 구원해 줄 가능성은 없다고, 우리 함께 찬양하자고 말이에요. ‘그 신’을 위한, ‘그 신’에 의한, ‘그 신’의 삶을 충실하게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요. 그 친구가 의구심을 가질 때마다 ‘그 신’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나 알고 있는 조항대로 귀에 대고 직접 읊조려줬지요.
하지만 ‘그 신’을 모실 가치는 있는지 그 친구의 의심은 계속되었어요. 어느 날 그 친구는 자신이 ‘그 신’을 포기할 것 같다고 위태위태 하다고 고백했었죠. 그 이후에 그 친구와는 연락하지 않았는데, 소문에 따르면 그 친구는 ‘그 신’을 떠났다나 봐요. 그 친구가 탈종을 선언하자 그를 구원하려고 했던 주변 신자들은 곧바로 그 친구를 버렸어요. ‘그 신’을 의심하고 있는 저 자와 함께 있으면 부정이 타서 본인들도 ‘그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지요. 아무도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저를 포함해서요. 그 친구가 불쌍하지만 어쩌겠어요. 자업자득이 아니겠어요. 저도 당연히 가끔씩 ‘그 신’이 정말로 위대할까,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 친구를 보니, 저는 계속 ‘그 신’의 신자로 남아야 하겠어요. 외톨이가 되는 것은 싫거든요. 이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섬기다 보면, 저도 머지않아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있겠지요?
'그 신' =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