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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25. 201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몽골 여행기

  무엇을 보려고 거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여름밤의 은하수도 가을의 단풍도 겨울의 얼어붙은 황야도 사막도 보지 않고 돌아왔다. 사실 떠나기 전에 유품을 하나 가져갈까 생각했었다. 내 3년간 반려였던 고양이, 반이의 유품. 그러나 잃어버릴까 걱정 됐고 내가 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결국 홀몸으로 몽골로 떠났다.
  4월 초의 몽골은 황량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았으나 낮에는 가을 날씨였고 야크나 말, 개들이 곳곳에 있었다. 차를 타고 울란바타르에서 게르가 있는 곳까지 가는데 멀리 황량한 대지 위로 구름이 떴다.

  그때는 유품을 두고  것을 조금 후회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  그런 황량함이었기 때문이다.

  일정의  날은 게르에서, 나머지 날은 호텔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게르라고는 하지만 현대식 조명이 켜져있고 침대가 놓인 곳이었다. 다만 가운데  화로가 있어 온도를 높이려면 석탄과 나무를 태워야 했다.   굳이 게르 숙박이 들어간 것은 역시  때문이었다. 여름이면 몽골의 하늘에서는 은하수를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갔던 시기는 은하수를 보기에는 조금 일렀다. 그냥 무수한 별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달이 넘어가자 별무리가   보였다. 멀리서는 말이 울고 밤새  짖는 소리가 났다.   동물들의 짖음 소리를 듣고 악몽을 꾸었다. 몸부림치면서 반이를 생각했다. 사실 반이가 강아지였다면 이런 곳에 같이 오고 싶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별을 보여주고 한국의 소와는 완전히 다른 야크를 보여주고 게르의 활활 타는 난로 밑자리에서 잠을 재우고 싶었다. 게르에서의  밤은  하룻밤이었지만 생각이  많이 지나갔다. 평생을 이렇게 황량한 땅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분 전환차 갔던 여행이었건만 오히려 우울했던  같다. 그래도 그곳이 굉장히 매력적인 장소라는 생각은 했다. 바람이 불면 게르의 천막이 자동차 소리를 내면서 흔들렸다. 꼬박 새벽 2시를 넘어 잠들면서 나는 내일은 이보다  좋을  없겠지, 앞으로의 여정은 오늘  별보다 아름답지 않겠지, 그러니까 힘들더라도 오늘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4  몽골은 어디든 황량했고 어디든 하늘이 낮았고 어디에서든 반이가 생각났다. 반이는 나의  같은 아이인데 황량한 몽골에서  애가 생각난다는  신기했다. 하긴 어차피 몽골에도  여름이 오고 있었다.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거북 바위를 봤다. 거북이를 닮아 그렇게 이름 붙여진 바위였다. 바위보다 그곳에 있던 작은 기프트 샵이  눈에 띄었다. 역시나 게르였고 입구에 가죽이 걸려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와 기프트  주인이 가죽을 두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어서 물어봤더니 늑대 가죽이라고 했다. 생전 처음으로 동물로부터 완벽하게 벗겨낸 가죽을 봤다. 도시에서는 아니지만, 시골에서, 그리고 멀리 북쪽에서 사는 몽골인들은 여전히 사냥과 유목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들은 거의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수명이 짧다고 했다. 늑대 가죽도 아마 그런 사람들과 교환해온 것일 것이다. 그때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정말 이국적인 곳에  있다는 자각과 이곳이 집처럼 편안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느껴진 것이었다. 육지가 바다처럼 끝이 없었고 천장 같은 하늘이 있었고 아무도 나를 몰랐고 나도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여행은  그런 기쁨을 주지만 그것은   특별했다. 만약 누가 그곳에 남게 해줄테니  기프트 샵에서 돈을 벌고 살라고 했더라면 그러겠다고 했을 것이다. 지난 밤의 별무리보다 죽은 늑대 가죽에게서  영적인 체험을  셈이다.

  말을 타고 진짜 게르를 구경한 다음에 다시 울란바타르로 돌아갔다. 시내로 들어가자 사람은 드문드문 보였는데 찻길은 어마어마하게 혼잡했다. 누구나 툭하면 끼어드는 운전을 해댔다. 몽골은 21개의 도로 나뉘어 있고 각각 17개의 민족이 분포해 살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시내보다 저 멀리 황야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그들은 매일 말의 울음 소리와 개의 짖음 소리를 들으며 잠들 것이고 그들의 게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찻소리를 내면서 나부끼고 눈을 뜨면 황량한 구름이, 눈을 감을 무렵이면 은하수가 보일 것이다. 매일 생과 볼을 맞대고 있는 기분이리라 짐작한다. 난로를 때울 장작을 패고 사랑을 하고 말을 타고 황야의 가운데에서. 어떻게 삶이 생생하지 않겠는가.

  도시로 들어가기 전에 재밌는 설명을 들었다. 몽골의 개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몽골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개를 동물이나 가축이 아닌 가족으로 여겨왔다. 그들의 '가족' 개념에는 엄마, 아빠, 아이들, 그리고 개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몽골에서 만난 모든 개들은 자유롭고 행복했다. 모두 웃고 있었고 낮에는 게르를 벗어나 원하는 곳까지 마음껏 달리며 놀다가 밤이 되면 추위를 피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울란바타르에서도 아무 곳에나 누워있는 개들을 볼 수 있었다. 개들의 야생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서 그들이 그들 나름의 반려로 사랑 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만난 개들 모두가 내 손에 입을 맞춰주었다. 당연히 게르를 짓고 개를 열 네 마리쯤 키우면서 사는 나를 상상했다. 늑대 가죽을 보고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어떤 충족감이 느껴졌다.
  몽골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복잡하다. 피의 시대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붉음을 강함의 색, 그리고 피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핏방울의 색이 아니라 흐르는 피, 이어지는 생존의 상징이다. 그들의 선조가 피흘려 지켜낸 나라를 계속해서 지켜가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들의 국기에 그려진 붉음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상징한다고 한다.

  울란바타르에서의 시티 투어에서는 오히려 볼 것이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계속 게르와 허르헉과 늑대 가죽과 초원을 뒹굴던 개들과 낮은 별들에 쏠려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호텔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시청 광장이라고 했다. 마지막 날 밤, 한 번 광장에 나가보았다. 그래도 여행객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치는 현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광장은 황량했다. 초원처럼. 나는 거기 쪼그려 앉아 분홍색으로 칠한 시청을 구경했다. 무엇을 가져왔는지 생각해봤다. 아무 것도 들고오지 않았다. 무엇을 가져갈지 생각해봤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그 황야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니까. 생과 삶의 몇 cm도 되지 않는 얇은 밀착은 내가 가진 것들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저 돌아오는 길에 동생을 줄 인형을 조금 샀다. 아무도 아무 것도 아무 사람도 없는 여행이었다. 반이와 같이 갔어도 그랬을 것이다.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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