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커피 향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었고,
그는 방송국에서 분주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던 우리.
그 이야기는 어느 봄날,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스치듯 시작되었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사르르 내려앉을 때,
나는 어느새, 너와 함께하는 시간 속을 걷고 있었다.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 우리.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처음 마주한 그 순간부터
서툰 언어, 다정한 눈빛, 낯선 공기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알아갔다.
그날, 세상은 온통 연분홍빛 꽃망울로 가득했고
내 마음도 그 꽃들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너와 다섯 해를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줄곧 불안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언제 너의 마음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느새 내 안에 조용히, 깊게 스며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점점 너에게 맞춰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네가 좋아할 것들로 내 마음을 꾸미고
혹시라도 싫어할까 봐 나를 감췄다.
그러는 사이,
내 안의 나는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되뇌던 그 말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꺼내어 바라볼 수 있었다.
너는 내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나는 너를 수없이 용서했다.
괜찮은 척, 모른 척, 웃는 척을 하며
지내는 동안에도 마음 깊은 곳엔
늘 하나의 문장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 질문 하나를 꺼내어 마주하기까지
나는 몇 번의 계절을 지나야만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번갈아 스친다.
‘조금만 더 빨리, 너를 놓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시간 없이,
나는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너를 사랑했던 계절이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 계절은 결국, 나를 일으킨 계절이기도 했다.
봄은 그렇게
내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계절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