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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J Nov 24. 2024

2024.11.21 (목)

아침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묘하게 집안 분위기가 어두운 것이, 방금 전까지 화창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듯 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듯 하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아픈 건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어머니는 지금은 괜찮다며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아주 작은 틈만 남겨두고 닫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길 바랬지만, 직감적으로 어떤 상황 하나가 떠올랐다. 유방암이구나.


이상 없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이번 주 월요일, 저녁에 가슴이 좀 아프다고 하신 어머니는 화요일에 조직 검사를 하러 다시 병원에 다녀오셨다. 검사 결과가 3일 후 나온다 했으니, 귀가하는 동안에 병원에서의 전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일수록 오히려 눈치 없는 척을 한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눈치가 심각하게 빠른 사람에 속했다.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이 있는지 누구와 전화하는지 등 일체의 관심도 없는 것처럼 아주 지극히 평소와 같이 옷을 갈아입고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고 아버지께 드릴 맛보기 커피를 덜어 드리고 방으로 가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발 없는 귀가 이미 안방 문 앞까지 늘어진 상태였다. 방문이 닫힌 안방에서 새어나오는 얘기 중 '보험'이란 단어가 들렸고, 이후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있다 나오신 뒤 거실 소파에 앉아 심호흡과 분간되지 않을 나지막히 작은 한숨을 연거푸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재택 근무에 방해될까봐 볼륨 한 칸만 올려 듣는 유튜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한답시고 귀로 들려오는 이 낯선 광경을 모른 척 했지만 실은 그저 몸만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으니, 머리 속은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를 당한 꿈, 암 말기라며 전화오던 꿈, 이미 돌아가시고 완벽히 혼자 세상에 남겨진 꿈 등 아주 가끔 꾸었던 꿈들이 뒤로감기처럼 재생되며 어느 덧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달려갈수록 새삼 어머니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절절히 깨달아갔다.


바닥까지 생각이 닿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소 부산스러워진 것이 아무래도 상황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듯 하여, 화장실에서 막 나오고 계시던 어머니께 무슨 일이 있냐고 직접 여쭤보았다. 오후에 병원 가보면 안다며 말을 돌리려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집요하게 물어보자, 결과가 악성으로 나왔다고 했다. 암이란 뜻이다.


나에게 무언가 결여된 것일까. 무슨 위로를 해드려야할 지 떠오르지 않았다.

슬픔이란 말을 나누면 ㅅㅍㄹㅁ가 되고, 슬픔이란 감정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 같이 슬퍼한다면 감정에 쉽게 매몰되는 어머니 성격 상 엄청난 상실감을 받으실게 분명했으므로, 슬픈 두 사람이 쉴새없이 ㅅㅍㄹㅁ를 내뱉는 걸 듣고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단지 괜찮다는말을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완치가 잘 된다더라는 말도 무책임하다. 어떤 심정일지를 감히 나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지도 모르고, 치료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며, 혹여 절제술이라도 한다면 매 순간 일상에서 상실감을 느끼실텐데, 그러면 완치가 되어도 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고민 끝에 꺼낸 위로는 참 싱겁기 그지 없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단계가 아닐 수도 있다며, 지극히 현실적이고 참으로 담백한 위로를 해드렸다. 내가 좀 더 다정하고 감정을 잘 다루고 표현을 잘하는 성격이면 좋았을텐데. 다행히 어머니도 막상 결과를 듣고나니 기분이 담담하다고 했다.


병원에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담당 선생님의 소견을 왜곡 없이 듣고 싶어 꼭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 성격 상, 혹여나 어머니와 같이 진료실에 들어간다면 왜 초기 검진에서 발견하지 못했냐며 병원을 뒤집어 놓으실텐데, 이를 예방하려는 차원이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접수하시는 동안, 아버지와 같이 병원을 구경했다. 여성들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라 그런지 카페식 인테리어였는데,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문이 양쪽에 있고 탈의실과 검사실도 마련된 것이 한 층 전체를 다 쓰는 듯 했다. 16층이라 그런지 테라스가 딸려 있고, 그 너머로 공원이 보이는 전망이 좋아 대기하는 동안 실내에서 가을을 볼 수 있었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찾아본 후기들은 대체로 가슴에 통증이 있을 경우 암이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일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다행히도 검사 결과는 심각하지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 입을 뗀 선생님은 최악으로 가정해도 1기 초, 개인 소견으로는 그마저도 안되보이며 전이되었을 가능성도 현재로썬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이후에는 문자 그대로 꽤나 심심한 사과와, 치료를 위한 앞으로의 과정들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최악의 상황에 비해 결과가 좋아 굉장히 기뻤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근심이 더 많아지신 듯 심란한 표정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어쨌든 가슴을 절제했다는 후기부터 임파선으로 전이되었다는 후기까지 심각한 얘기들을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다른 암이긴 했지만 친척 중 암으로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하셨으니 '암'이라는 병명이 주는 무게감과, 다시 받아야 할 각종 정밀검사들, 수술, 방사선 치료 등 일련의 과정들이 현실로 다가와 부담이 크신 듯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곁에 서 있는 내가 너무 대조되어 보였다.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 암이라는 의미를 피부과에 냉동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 마냥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현상에 계속 체류하는 것 보다는 빠르게 수용하고 넥스트 스텝을 고민하는 것, 즉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덜어드리기로 했다.

유방암은 완치율이 높지만, 그와는 별개로 상실감과 우울증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암이라고 한다. 곁에서 많은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일단 긍정적인 얘기를 하든 농담을 하든 현실적인 말을 하든 이와 관련된 얘기를 이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근심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나름의 머리를 쥐어짜내어 유니클로와 다이소를 맨날 헷갈린다는 둥, 그러고보니 유니클로 세일이 내일부터라는 둥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다른 주제로의 환기를 계속 시도했다. 그 중 회사엔 얘기해두었다고 둘러대며 우리 동네로 가서 좋아하시는 캐모마일 릴렉서를 사드리겠다는 말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본 날씨는 꽤나 생경했다. 해가 떠오르는 걸 방해하려는 듯 먹구름이 붉은 가장자리부터 야금야금 먹어가며 가로막고 있었다. 둘의 뒤엉킴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이따금씩 앞유리로 떨어졌다. 일출 후 아침햇살인지 일몰 전 노을인지 모를 날씨에 도로에는 차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으니, 이제 막 일어난 사람이라면 대체 몇 시인지 생각하다 졸음이 달아났을 법 하다. 


스타벅스에서 얼음을 적게 넣은 캐모마일 릴렉서와 휘핑 크림 빼고 초콜릿 드리즐만 추가한 따뜻한 숏 사이즈 모카를 마시면서 대화의 8할은 이따 먹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과 같은 시시콜콜한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다뤘다. 이따금씩 정적이 흐르고 표정이 여전히 썩 밝아 보이진 않으셨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우울해질 틈이 없게, 즐겨 보시는 넷플릭스는 절대 해지하지 말아야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시며, 앞으로 받을 치료 과정들이 이변 없이 잘 끝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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