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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J Nov 19. 2024

매일이 좋은 날이지

2024.10.04 (금)

본가에 완전히 내려온지도 두달 째. 실제로 있던 기간까지 합치면 8개월 차였으므로, 평일의 우리 동네 일상도 더는 궁금하지 않아진 아침이었다.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는 설렘이 아니라 일이 되었고, 어릴 적 구몬 선생님이 방문하던 방에서 모니터 두 대에 맥북을 연결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도 더는 감회가 새롭지 않아졌고, 집 근처 헬스장 가는 길에 종종 앞길을 가로막는 비둘기는 귀찮아졌으며, 운동 후 집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나만의 음료를 들고 귀가하며 짓던 미소는 충동 소비를 했다는 굳은 입꼬리로 바뀌었고, 맑은 하늘과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아파트 10층 쯤 높이의 베란다에 내놓아진 빨간 제라늄을 번갈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던 순간은 이제 6.3인치의 아이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출근해서 할 일들을 팔로업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런 평소와 같이 헬스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막 씻고 나온 때였다. 이미 머리 속에는 지금부터 출근하기까지 걸릴 시간 계산과 업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라이기를 집어 머리를 말리는 것이 진짜 머리를 말리는 행위일지, 자동차 엔진을 예열하듯 곧 시작될 업무에 대한 예열을 하는 행위일지 호접몽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던 그 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실에서 나오는 머리가 살짝 벗겨진 할아버지와 이제 막 탈의실로 들어온 셔츠를 입은 다른 할아버지가 마주쳤다.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허허 웃는 것으로 보아, 두 분은 구면인 듯 했다.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솔직히, 속으로는 할아버지가 콧방귀를 뀌며

"좋은 일은. 온 데가 다 아픈데."

와 같은 대꾸를 하겠거니 했다. 우리 동네의 평균 연령과, 이 건물에 들어 선 병원들을 고려하면 새삼 놀랄 말은 아니었으니까. 상당히 현실적인 대답에 속했다.


하지만 잠시동안 대답 대신 콧노래로 대꾸하던, 머리가 살짝 벗겨진 할아버지는 노래를 멈추고 대꾸했다.


"매일이 좋은 날이지!"



두 분의 대화가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는지, 계속 이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에어팟 프로를 끼고 노이즈캔슬링을 킨 것 처럼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비둘기를 찾으며, 스타벅스에 들러 음료를 받는 순간에 설레며, 음료를 들고 나와 집에 가는 길에 계절을 두 눈으로 보며, 구름 한 점 없이 지평선 산능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파란 하늘과, 베란다의 빨간 제라늄을 번갈아 보던 매 순간을 가득 마음에 담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이 그들에게 닿을 듯 한 날이었다. 적어도 출근 전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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