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강아지와 아저씨

2024.11.26 (화)

by JSJ

밤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집 근처 스타벅스도 문을 닫았다.

재택 근무를 하느라 깨어 있는 시간 중 8할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다보니, 답답하기도 해서 산책할 겸 헬스장에 가 가볍게 런닝머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 가는 길은 구축 아파트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인데, 집에 가는 길의 왼쪽 길은 한 때는 은행나무를 앞세워 잔디들과 작은 나무들이 심어진 넓은 공터였으나 주차난으로 인해 전체가 주차장으로 밀려버렸고, 오른쪽 길은 왼쪽 길의 처지보단 형편이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마찬가지로 공터의 반을 밀어버리고 마련한 주차장이 있으며, 그 뒤로는 깔린 잔디와 사이사이에 몇 그루의 키작은 나무들이 심어진 자그마한 남은 공터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자그마한 샛길이 나 있어서 이쪽의 공터는 까치부터 길고양이, 동네 강아지들까지 동물들의 방앗간이 되곤 한다.


귀가길에 들어서는데 문자 그대로 웬 하얀 솜뭉치가 왼쪽 주차장에서 오른쪽 길로 굴러갔다.

마침 오늘 날씨가 뒤숭숭하여 바람이 참 많이 부는 날씨였기 때문에 의아하긴 해도 신기하게 느껴지려는 찰나, 베이지 트렌치 코트를 입은 아저씨가 솜뭉치의 뒤를 따랐다. 한 손에는 차 키를 들고, 다른 손에는 탑처럼 쌓아 올린 대여섯 개의 플라스틱 일회용 컵들을 마치 우산을 쓰듯 세워 들고 있었다. 출근해서부터 퇴근길에 이르기까지 하루종일 혼자 차에서 전부 마신 것인지 꽤나 궁금해졌지만, 누가 봐도 이제 곧 집에 들어갈 행색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왜 아파트 입구가 아닌 공터로 향할까?


그런 아저씨를 보다 이제서야, 방금 그 하얀 것이 바람에 날린 솜뭉치가 아니라 굴러가듯 공터로 뛰어가는 강아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들어가고 싶은 아저씨의 타들어가는 속을 전혀 모르는 듯, 강아지는 길고양이처럼 차 밑으로 숨더니 아저씨가 다가오자 이내 공터로 달려가 아저씨를 부르고 있었다.

밝은 옷을 입은데다 양손 가득 짐도 들고 집의 문턱까지 온 상태에서 주차된 차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싫었던 아저씨는 처음에는 주저하듯 서서 공터 쪽을 바라보았으나, 조금씩 조금씩 차 틈 사이로 들어갔는지 어느 새 머리만 동동 보이다, 이내 토끼를 쫓아 나무옹이 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쏙 빨려들어가 나중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피곤에 찌든 아저씨는 빨리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 같다. 집에 들어가서 할 일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내일 출근을 준비하며 자는 것. 변수도 없고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강아지가 냅다 공터로 뛰어가지 않았다면.


지친 사람에게 그저 순수하게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는 것. 문득 행복은 정말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일을 비롯해 근래 심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겪고 있는 나로써는, 그 솜뭉치가 참 부러웠다. 공터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따라오는 아저씨를 보며 꽤나 설레하지 않을까? 자신을 번쩍 들어안고 집으로 함께 가는 것도, 가로등 아래에서 같이 산책을 해주는 것도 어느 쪽이든 매 순간이 모두 행복할 것 같다.


몇 번을 뒤돌아보며 금방내 아저씨가 차 키를 든 손으로 강아지를 안고 모습을 보일 줄 알았지만, 시야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끝내 아저씨는 강아지와 함께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밤 중 내리는 눈에서 어둑어둑한 하얀 빛이 새어나오듯, 가로등이 첫눈처럼 내리는 빛으로 밝혀주는 공터에서 그저 오래오래 서로 행복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이 남겨두고 간 행복 한 덩이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일이 좋은 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