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스테인은 죄가 없다.
빠른 속도로 넓게 흐르며 새하얀 콘크리트 바닥을 월넛색으로 물들이는 오일스테인의 진취적인 모습은 마치 요동반도를 장악하며 영토를 넓히셨던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닮았...
순간 눈앞에 빈 깡통이 던져졌고 다급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야!! 지혜야!! 저 앞에 가서 흙 퍼 담아와!! 빨리빨리!!!!!"
차를 타고 현장인 여주를 향해 6시 50분쯤 출발해 8시경 도착했다.
엄마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해오신 두꺼비 사장님께서 먼저 와 계셨다. 두꺼비 사장님은 여주토박이시고 엄마께서 여주에 일 있다고 하시면 거진 이 두꺼비 사장님께서 일을 주시는 거라고 보면 된다.
일 할 인원은 나와 남편, 그리고 '아름다운 페인트' 대표이신 우리 엄마.
오늘 해야 할 일은 나무로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일이었다.
엄마께서는 다년간의 노하우를 우리 부부에게 전수 하시느라 말씀이 많아지셨다.
이 오일스테인은 말이지~~ 나무에 바르는 거야.
물처럼 주르륵 흘러. 그래서 아래에다 보양지를 잘 깔고 작업해야 된다.
롤러에 너무 많이 묻히면 줄줄 흘러서 눈물방울처럼 맺히니까 조심해라.
금방 마르니까 한번 바른 곳에 또 바르면 색이 진해져. 나중에 보면 얼룩처럼 눈에 확 티가 나.
이게 엄청 예민한거야. 절대 쉬운일이 아니여~ 차분하게 찬찬히 잘 해봐봐.
일단 남편이 큰 롤러로 밀고 나가면 엄마는 울타리 안 쪽을, 나는 바깥쪽을 작은 롤러와 붓으로 빠진 곳을 채우며 같이 해 나가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서 엄마께서 또 알려주신 꿀팁은 일단 울타리 뒤쪽으로 가서 잘 안 보이는 곳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안 보이는 곳부터 살살 칠해보면서 적응하고 일에 속도를 붙이면 앞쪽 잘 보이는 곳을 더 깔끔하게 잘 칠할 수 있다고 하셨다. 오호! 역시 대표님!
일을 하면서 엄마와 두꺼비 사장님께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들었다. 작년 겨울에 일했던 강원도 양양의 카페현장 인테리어 업자(이하 양양업자라고 부르겠음)얘기였다.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려면 다양한 공정들이 있다. 바닥 공사하고 골조 세우고 건물 올리고 설비 집어넣고 전기작업, 목공작업, 타일작업, 조명, 보일러, 에어컨, 샷시, 페인트, 시트지, 도배 등등...
인테리어 업자는 건축주와 상담하여 견적을 맞추고 시공비를 받아서 이 공정들이 겹치지 않고 잘 돌아가게끔 알맞게 공사기간을 조율하고 각 공정이 끝날 때마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역할인데! 이 양양업자가 이 돈을 들고 날라버린 것이다!!!
두꺼비 사장님은 못 받은 돈이 몇 천만 원 단위라고 하셨다. 같이 일한 전기사장님도 못 받으셨고 못 받은 공정들이 꽤 있다고 하시면서 양양업자같은 작자는 사회악이고 진짜 나쁜 놈이라면서 욕을 하셨다. 다행히 그 때 우리 페인트 팀은 양양에서 일한 돈을 받았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며 그 사람 진짜 나쁘다며 어떻게 그러냐면서 같이 욕을 해 드렸다.
그렇게 한참 열을 올리며 양양업자 뒷담화에 심취하신 엄마는 옆으로 자리를 옮기다가 그만 오일스테인이 들어있던 페인트통을 툭 쳐서 엎지르고 말았다.
빠른 속도로 넓게 흐르며 새하얀 콘크리트 바닥을 월넛색으로 물들이는 오일스테인의 진취적인 모습은 마치 요동반도를 장악하며 영토를 넓히셨던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닮았...
순간 눈앞에 빈 깡통이 던져졌고 다급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야!! 지혜야!! 저 앞에 가서 흙 퍼 담아와!! 빨리빨리!!!!!"
흙을 가득 채운 깡통을 재빨리 건네드리며 뒤돌아 끅끅 대며 조용히 웃었다. 남편은 차마 장모님을 볼 수가 없는지 먼 산을 바라보며 외면했다. 남편의 어깨가 조금 들썩이는 것 같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엄마와 두꺼비 사장님은 아까는 그렇게 쉬지 않고 말씀을 하시더니 두 분 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쏟아진 오일스테인 위에 흙을 덮는다. 그렇게 방치해 놓고 일이 다 끝난 오후에 흙을 쓸어 치우고 철 수세미로 바닥을 박박 문질러 닦아내면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진한 얼룩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