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흉은 나만 볼 수 있다구욧
부모님께서 평생 해오신 일을 도와 작년부터 합류해 페인트 일을 시작한 우리 부부.
오늘은 베란다에 수성 페인트칠 작업을 하러 왔다.
일을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시는 시간.
엄마가 또 남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아직 일을 배운 지 1년도 되지 않아 실수가 잦다.
"이전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했지! 몇 번을 알려줘도 또 몰라!! 하여간에~~~"
(엄마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일 시작하자마자 남편에게 '전무'라는 직함을 달아주셨다. 그렇게 초고속으로 승진한 전무이건만 커피 타고 짐 옮기고 운전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자주 혼난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니 예전에 내가 겪은 일들이 떠올랐다.
신혼 초에 시댁 고모님께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남편과 함께 일을 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시댁에서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뼈에 사무치게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고~ 벌써 임신을 하면 어떡하니? 그럼 일은 누가 해??"
나의 임신이 시댁에서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에 너무 놀랐고 충격이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나는 임신 8개월을 넘어설 때까지 배가 다 젖도록 싱크대 앞에 서서 다리가 퉁퉁 부어가며 계속 일을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도 100일 만에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나와 일을 해야 했다. 모유수유를 하던 때라 일을 하다 보면 나는 젖이 불어 줄줄 새서 곤란했고 아기는 분유젖병을 거부하며 몇 날 며칠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고 돌봄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참 많이 속상하고 가슴 아픈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시댁 고모님께서 내어주신 집에 살았다. 서럽고 괴로운 날들이 많았는데 그 집에서 쫓겨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괜히 애꿎은 남편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퍼부었다. 우리는 자주 싸웠고 서로 미워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도 나도 너무 어렸다.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우며 일까지 하는 게 힘에 부친다고 일은 당분간 쉬고 육아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도 설마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조카며느리를 내쫓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모든 게 무섭고 어려웠는지...
현재 우리 가족은 친정아빠 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살면서 친정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남편과 같이 하고 있다.
신혼 때의 나와 남편의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남편이 어떤 마음일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처가식구들이 일터에서 잘 대해주고 챙겨준다 해도 어떤 날에는 속상하고 어떤 때에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씩 남편이 일하면서 서운했던 얘기를 털어놓을 때면 나는 남편 편을 들며
“어허이~~~ 그러네~~ 말씀이 너무 차가우셨네!! 나라도 그랬겠다~~ 서운할만하다 진짜! “
“아놔~~ 우리 여보를 서운하게 해??? 아 못 참아!! 내가 전화해서 한마디 해??? 나 말리지 마!!!”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오버하면서 맞장구를 성심성의껏 쳐준다. 그러면 남편은 신이 나서 나에게 다 얘기하고 마음을 풀고는 기분이 좋아진다.
쉬는 시간 엄마의 잔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남편을 온몸으로 가리며 양팔을 쫙 펴고
"엄마, 이전무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마요. 이제 그만 말씀하세요!" 하고
남편을 돌아다보며 "걱정하지 마 여보! 내가 다 막아줄게."라고 말했다.
남편이 장모님 눈치를 보며 웃음을 참는다.
나는 다시 엄마를 쳐다보며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내 남편 흉은 나만 볼 수 있어요! 이전무 서운하게 하지 마세욧!"
엄마는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셨고 별꼴을 다 보겠다며 어이없어하셨다.
어린 날의 내가 시댁에서 남편에게 받고 싶었던 배려를 지금의 남편에게 해준다.
남편이 처가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면서 소외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하기 때문이다.
친정식구들 모두 이서방을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빨리 많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서 그러신다는 걸 전무님도 다 알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