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리 May 11. 2023

빽도사장님과 대표님

조금 싸우지만 친해요

 오늘은 성남의 현장을 예쁘게 변신시키러 가는 날.

 10평 남짓의 작은 만두집을 오픈하는 현장이었는데 천장과 벽을 느낌 있게 미장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공정이었다.   

 경기도와 서울 쪽 일을 자주 맡기시는 인테리어 업자이신 빽도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와 오랜 인연이신 빽도사장님을 나는 오늘 처음 뵈었지만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색에 엄청 민감하신 분이셔서 원하시는 색감이 안 나오면 다시! 다시! 를 외치시는 엄격한 스타일이시라고. 그리고 꼭 퇴근시간 임박해서 마무리하고 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원하시는 걸 말씀하신단다. 한 번은 정리하고 퇴근해서 이미 차를 출발했는데 손 볼 곳이 있다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차를 돌려 다시 현장으로 가신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께서 사장님의 별명을 지으셨다고 한다.

 '빽도'  

 별명도 참 기가 막히게 잘 지으시는 우리 엄마(아름다운 페인트 대표님).

 처음에는 엄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만 그렇게 부르다가 어느 순간 사장님께 걸리셨단다. 그래서 빽도사장님도 본인별명이 빽도사장님인걸 아신다.

 

 빽도사장님네 현장에서 색을 정할 때는 신중 또 신중을 기한다! 페인트 넘버 없이 사장님께서 원하는 색을 말씀하시면 엄마가 이런저런 요런 색을 적절하게 섞어서 만들어 낸다. 이름하여 '현장조색!'

 삼원색의 원리를 알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시는데 나는 아직 색을 보고 무슨 무슨 색이 들어갔겠구나 정도만 아는 수준이다. 경력 30년이 넘는 대표님의 노하우를 어찌 하루아침에 알 수 있으리...

 우리 대표님과 사장님의 여러 번의 연구와 시도 끝에 마음에 쏙 드는 색을 탄생시켰다. 천장은 진한 초코색으로 벽은 밝은 아이보리로 색을 결정하고 나서 기분 좋게 일을 시작했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 벽과 천장을 퍼티(흰색의 꾸덕한 찰흙 같은 느낌의 재료) 작업으로 미장을 했다. 퍼티가 마르기 전에 미장 전용 찍기 도구로 퍼티가 평평하게 발라진 면에 강약을 조절하면서 느낌 있게 찍어 주었다.  빽도사장님께 완성된 면을 보여주며 오늘 벽과 천장을 이런 식으로 진행할 거라고 말씀드리자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질감도 괜찮게 잘 나오고 빽도사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시니 우리는 신이 나서 작업속도를 올렸다.

 점심을 먹고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일은 절반 이상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

 빽도사장님이 슬그머니 들어오셔서 보시더니


 "대표님!! 잠깐만 잠깐만~~"

 아 왠지 느낌이 싸하다.  

"천장은 조명도 달리고 하니 너무 화려하게 하지 말고 그냥 밋밋하게 갑시다."

 아니~~ 아까 오전에 다 협의된 사항인데 갑자기 말을 바꾸시다니...

 과연! '빽도'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의 위엄이 느껴졌다.


 우리 대표님은 일을 하실 때 맡기신 분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의뢰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시지만 본인도 작업물이 예쁘게 나와야 만족을 하시는 분이시다. 벽이랑 천장이 같은 느낌으로 가는 게 완성도가 있고 예쁘다고 생각되는데 벽에는 무늬를 넣고 천정은 그냥 밋밋하게 가자고 하니 안 예쁠 것 같다며 조금 마음이 상하셨다. 그리고 이미 천장은 다 완성했단 말입니다!

 엄마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라고 쓰고 거의 따지듯이)


 “아유 정말~~ 또 그러시네!! 아니 이게 예쁜데 왜 바꿔요! 아까 우리 다 정한 거잖아!! 정말 왜 또 그래~~ 그냥 이렇게 가요! 이게 예쁜데 왜 그래요~~!!”


하시며 다시 한번 의사를 전달드렸지만 빽도사장님께서는 완전히 마음을 굳히신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완성된 천장 퍼티미장을 새로운 평평한 퍼티미장으로 다시 덮어야 했다.


 갑자기 추가로 다시 해야 할 일이 생기니 시간은 평소보다 더 빨리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우리 팀은 분주해졌다. 정신줄을 잘 붙잡고 차분하게 다시 미장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현장 시공기간은 내일까지로 정해져 있으니 내일 페인트 칠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오늘 마쳐야 할 미장 분량은 끝냈다.


 현장에서는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많이 생긴다. 엄마는 천장 퍼티미장을 완성해 놓고 평평한 것도 나름 깔끔하니 예쁜 것 같다며 마음이 풀리신 것 같았다.

 빽도사장님은 갑자기 계획을 바꾸시거나 색을 변경하시기도 하고 꼭 집에 가려고 할 때 일을 더 부탁하기도 하시는 조금은 까다롭지만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현금으로 결제하거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을 해주시는 분으로 여태껏 결제대금으로 애를 먹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빽도사장님이 참 좋다고 하셨다.

 하하하 대표님이 그러시니 나도 오늘 일을 가지고 빽도사장님께 앙금을 가질 수가 없겠군...


 시공을 의뢰한 업체는 깔끔한 결제가 명함이고 시공팀은 깔끔한 현장이 명함이다. 이것이 두 분께서 오랜 신뢰를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별꼴을 다 보겠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