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코로나로 인해 3년간 문을 닫았다고 했다. 게다가 작년에는 물난리가 나서 무릎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대표님께 이번 현장은 지하 100평 규모이고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다는 브리핑을 들었다. 긴팔 작업복과 호흡기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철저히 준비하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머리까지 덮이는 안면마스크를 일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준비해 주셨다.
드디어 작업 당일!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로 향했다. 나는 발을 채 안으로 넣기 전에 눈으로 먼저 처참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입구에서부터 빼곡하게 차 있는 검은색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엄청난 곰팡이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고 구토감이 몰려왔다. 곰팡이들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건강한 사람도 아파질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해 도망쳤다. 지상으로 올라와 헛구역질을 했다. 도저히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일이고 나는 일을 하러 왔다. 도망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SNS에 지하 입구에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영상을 찍어 "노약자와 임산부, 심신미약자는 시청을 자제하시오"라고 올렸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굉장히 핫했다.
이번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총 아홉 분. 모두들 프로의 정신으로 의연하게 들어가 작업을 준비를 하셨다.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나도 바스러지는 멘털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안면마스크와 먼지차단마스크를 이중으로 단단히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으 살려주세요.
일단 먼저 벽과 천장에 도배지를 뜯어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도배지를 뜯으면서 붙어있던 곰팡이들이 허공에 마구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내 온몸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일하는 내내 너무 소름끼치고 끔찍했다. 괜히 호흡이 가빠오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일이고 나는 일을 하러 왔다. 도망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라고 했지만 없는 병이라도 만들어서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배지를 뜯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깔끔하게 떼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여러 번 도배로 시공했는지 뜯어내도 뜯어내도 남아있는 도배지와 사투를 벌였다. 하루종일 뜯어낸 도배지를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는데 75리터짜리 쓰레기봉투 20개가 나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진이 다 빠졌다.
나는 작년 여름에 부모님께서 하시는 페인트 시공사업에 뛰어들어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괴롭고 까다로웠던 현장도 있었고 너무 춥거나 너무 더워서 고생했던 현장도 있었지만 이렇게 험하고 힘든 현장은 처음이었다. 나의 40년 인생 중에 가장 최고로 더러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장이 하루에 안 끝난다는 데 있다.
정해진 공사기한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내일 또 이 현장에 일을 하러 와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