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직시하라!
어제 원고를 10시에 열기로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일찍 일어났는데 이것저것 하느라 아침밥이 늦었고 먹고 치우고 정리... 겨울방학 애 둘 엄마의 삶이란...) 11시에 겨우 책상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퇴고가 거의 마무리되었던 원고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어이없이 날아가고 나서 한 달이 넘게 노트북을 쳐다도 안 봤다. 아주 그냥 꼴도 보기가 싫었다. 너무 열받고 짜증 나고 기운이 빠지는데 어디 화낼 데도 없고 억울했다. 나는 거의 강박적일 만큼 원고를 작업하며 수시로 저장하는 인간인데 그 원고만 감쪽같이 사라져서 클릭을 해도 불러올 수 없다는 창만 나오더니 급기야는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나의 감상도 지금에서야 이렇게 담담히 꺼내놓는 거지 그 당시에는 너무 허탈하고 멘탈이 나가서 그냥 아예 회피상태였다. 원고작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활동을 하며 나의 주의를 돌리는 방법을 택했었으니까.
사람은 역시 직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현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제 집안을 정리하며 내 책상을 깔끔하게 치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니 다시 노트북을 열어 원고를 봐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책상을 정리하지 않고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노트북에 먼지가 앉도록 돌보지 않은 것은 원고를 잃어버리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회피였다.
흠... 어쨌든 오랜만에 다시 보는 원고는 나쁘지 않았다. 퇴고하기 전 원고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그래 다 써 놓은 거 다시 처음부터 퇴고하면 되는 거다. 다시 차근차근하면 된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 또 내가 이겨내기 어려운 일을 겪고 난 이후여서 쓰고 싶은 말도 많이 있었다.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둥~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에서 오는 상황들까지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항시하고 있어야 된다는 둥~ 우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노트북을 열고 원고를 찾아 그냥 쓱 읽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괜찮겠다 했는데 원고를 보니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고치고 싶어졌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키보드가 왜 이제 왔냐며 내 손가락을 환영해 주었다. 연주를 하듯 즐겁게 작업이 이어졌다. 1시간 타이머를 맞춰두었는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기분이 좋았다. 100쪽 정도 되는 분량인데 하루에 10쪽씩 손봐서 10일 정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무리하고 여유 있게 2~3일 정도 다시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편집자님께 보낸다는 게 나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