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민 Apr 04. 2020

<윤희에게>

주체성을 복권하기 위한 여정

윤희의 인생은 희생과 고독으로 얼룩져있다. 대학에 가고 싶었던 윤희는 그녀의 가정이 윤희의 학비보다 오빠의 학비를 중시한다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윤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자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버린다. 그녀는 사랑했던 쥰과 헤어져야 했고, (에로스적으로)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야 했다. 오랜 결혼 생활을 견디다 남편과 이혼한 윤희는 급식업체의 노동자로서 고된 삶을 산다. 윤희의 딸인 새봄은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어머니와 살기로 결심한 것은 어머니가 더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인만을 위한 삶을 사는 어머니에게 죄송함을 느끼던 새봄은 어느 날 윤희의 옛 연인인 쥰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쥰이 살고 있는 오타루를 향한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하나 새봄의 계획은 순탄치 않다. 윤희가 섣불리 과거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새봄은 윤희에게 과거에 대해 묻지만 윤희는 대답에 인색하다. 게다가 윤희는 지금의 생계를 버리고 갑작스럽게 가족 여행을 떠날 생각이 없다. 설득에 능하지 않은 새봄이 장벽에 막힌 것 같던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잣말로 윤희를 설득해낸다. 새봄은 한밤중에 윤희가 자는 줄 알고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다.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을 땐 엄마가 외로워 보여서 함께 있어주어야 할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 보니 나는 엄마에게 짐만 된 것 같네." 윤희는 본인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타주의가 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다.
 
그들은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에 도착한 윤희네 가족은 부리나케 쥰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 윤희와 새봄은 각자 얼어붙은 강에 발을 디디듯 조심스레 쥰의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그리던 윤희와 쥰의 만남을 앞둔 모녀는 겸사겸사 풀지 못한 서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눌 시간을 갖는다. 모녀의 흡연 여부, 대학에 가지 못하는 대신 할머니가 카메라를 사줬다는 윤희의 일화, 새봄의 남자친구. 그동안 굳이 속내를 말하지 않고 살던 윤희는 간만에 과거를 털어놓고, 자신이 용의주도하다고 생각했던 새봄은 어머니의 예리함과 신용성을 확인한다. 오타루를 배회하는 모녀는 만월이 떴다는 취객의 주정을 듣고 달을 올려다본다. 초승달이었던 달은 풍성한 만월이 되었지만 아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윤희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꿈에 그리던 쥰을 만난다. 서로를 애타게 생각하던 쥰과 윤희는 막상 만나서 긴 말을 하지 않는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후엔 그다지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피곤한 일상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윤희와 쥰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보여주는 숏이 나오진 않지만 하늘에는 만월이 떠있을 것이다.
 
완벽한 하루가 끝나고, 꿈같았던 시퀀스는 페이드아웃되며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순간이라면 마냥 아름답게 끝날 수 있었을 영화지만 아직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저분한 후일담이 남아있다. 윤희 일가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윤희는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리 주체적인 인생을 살 포부를 꾸려나간다. 물론 미래는 쉽게 그녀가 설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며, 곧 동네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하는 윤희에게 그녀의 오빠는 "정신 좀 차려"라며 윽박을 지른다. 윤희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원서를 쓸 때는 '고졸'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클로즈업 된다. 사회는 아직 그녀를 경원하고 있다. 윤희 일가가 마법 같은 여행을 다녀온다고 사회가 마법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윤희만이 그런 사회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갈 용기를 품었을 뿐이다.
 
희망과 난관이 공존하는 이 엔딩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영화의 수사학을 곁들어서 답하겠다. 초반부에 새봄은 운동장에서 버려진 장갑을 발견하고 장갑 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그녀의 남자친구는 찢어진 장갑을 리폼하여 새봄과 나눠서 쓰기로 다짐한다. 새봄은 사람을 찍지 않는다. 그녀가 찍는 것은 당당히 풍채를 빛내는 사람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골동품이나 자연물이다. 러닝타임 동안 그녀가 찍은 유일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윤희뿐이다. 어째서 사람을 찍지 않냐는 삼촌의 질문에 새봄은 "저는 아름다운 것만 찍어요."라고 대답한다. <윤희에게>는 사람들의 거친 대우에 너덜너덜해진,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인생을 신중한 손길로 리폼하는 영화다. 닳고 해지고 치여도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버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