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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민 Apr 04. 2020

<레이디 버드>

주어진 삶을 한껏 사랑하는 법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한 형편을 싫어하고, 자신이 화보에 나오는 멋진 여자들처럼 될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자아이를 선망한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인 '크리스틴'이 아니라,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길 바란다.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붙인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성에 저항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니 크리스틴은 매번 그녀의 콤플렉스를 일깨워주는 그녀의 어머니가 거슬릴 수밖에 없다. 크리스틴은 시종 그녀에게 현실을 환기해주는 어머니보다 집안 사정을 덮어놓고 자신을 응원해주는 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고 하는데도 계속해서 그녀를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뿐이다.)
  
성인의 문턱에 선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로서 걸음을 내딛는다. 그녀는 세크라맨토가 아닌 뉴욕의 대학에 지원하고, 멋진 집에 산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잘 나가는 아이들과 친해진다. '레이디 버드'는 예쁜 친구와 함께 선생님을 농락하고, 잘생긴 남자친구와 첫경험까지 가진다. 그러나 그 모든 화려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레이디 버드'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그녀가 열심히 노력하여 친해진 예쁜 친구는 못생긴 친구를 괴롭히기 일수였고, 잘생긴 남자친구는 그녀와의 섹스에만 관심이 있었다. 크리스틴이 꿈꿔왔던 '레이디 버드'로서의 인생에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불행이 있었다. (영화에서 시종 언급되는 이라크 전쟁의 부정적인 텍스트는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로서 겪은 일들과 대응된다. 그것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환상으로 진상이 가려진 전쟁이다. 또한, 고향이 아닌 '외부'의 문제다. 종반부에 병원에서 크리스틴이 흑인 소년을 바라보며 타자의 고통과 현존성을 인식하는 장면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은 마침내 크리스틴의 시야에 타자의 진상이 들어오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둥지를 떠났던 크리스틴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자신이 경외하던 타자의 무던한 진상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불현듯 자신의 절친과 가족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깨닫는다. 자신의 인생이 결점투성이일지라도 값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크리스틴은 비로소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는 노골적인 응원이 아니라, 혹자의 실존을 향한 총체적 감정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결점까지 전부 떠안을 각오가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틴에게 겉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크리스틴의 콤플렉스를 일일이 짚어내기 일수지만, 크리스틴의 어머니는 딸의 모든 부분을 아끼고 사랑한다.
 
이제 크리스틴은 그녀가 벗어나고자 했던 그 모든 세크라맨토의 거리와 상점들이 지금의 그녀를 키워냈다는 사실을 안다. 그녀의 삶을 일궈낸 것은 가난한 환경과 평범한 친구다. 더없이 아린 성장통 끝에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는 반드시 거창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녀는 소녀를 사랑한다. 잘 나가진 않아도 사랑스러운 친구와, 얼핏 보기엔 초라한 성장과정까지, 그녀는 그녀의 모난 인생을 전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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