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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정 Nov 25. 2017

일할 때 '현타'가 오는 순간

퇴사일기, 열여섯 번째 : 인맥과 정치는 필수조건인가요.

‘일을 열심히 잘하면 돈을 더 줘야지 왜 일을 더 줘’ - 하상욱 시인     


일할 때 '현타'(현실 자각 타임 또는 현자 타임, 욕구 충족 이후 무념무상의 시간)가 오는 날이 있다. 정작 열심히 일한 사람은 보상을 받지 않고 인맥과 정치만으로 잘 나가는 사람을 볼 때다.      


인맥과 정치 또한 능력의 일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정치만 하고 정작 주어진 업무를 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 사람들이 뒷주머니를 챙길 때 그 뒤처리를 하는 사람은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묵묵히 일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정치와 라인 타기를 하던 동료가 저 앞으로 앞서 나가는 걸 본다. 현타에 휩싸인다.     


농땡이, 이간질, 아부, 술친구, 과대포장 등등 회사마다 여러 유형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일할 때 틈만 나면 커피를 마시러 나가고, 일은 하지 않아 후배들이 곤혹스럽게 했던 사람이 있다. 또 상사 앞에서는 '네'라고 말하고 뒤에서 교묘하게 후배에게 일을 넘기는 사람도 봤다. 앞뒤 말이 다른 건 기본이다.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추다 단숨에 높은 자리를 꿰찬 사람도 있다. 거래처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는 핑계로 지각하는 건 애교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커피와 술을 마시며 친해진 사람들로 그럴듯한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그 나름대로 살아남은 방식이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바닥에, 이 사회에 너무 많다. 열심히 일을 하면 바보나 호구 소리를 듣고, 적당히 요령을 피우며 일하다가 자기 살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게 현명한 세상이다. 가끔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하지만, 그뿐이다. 정작 실속은 챙기지 못하니 억울함에 가슴만 칠뿐이다. 중들이 속세를 떠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면 어느덧 사표를 쥐고 있더라.     


내가 너무 바보 같이 사는 건가, 내가 너무 호구인가, 세상을 사는 것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처음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언젠가 잘못된 것은 밝혀지고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들이 인정받을 것이란 일말의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저렇게 살기 싫고, 저런 사람이 잘되는 업계에 있기 싫다.     


아마 내가 몸 담던 업계가 아니더라도 어떤 업계에 가더라도 같은 것을 보고 겪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남의 돈 벌기 힘들다'다. 그래서 다들 자기만의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가 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며 성공하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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