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열다섯 번째 : 연예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연예부 기자’란 타이틀은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어색함을 금방 풀 수 있는 좋은 직업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소개팅을 하면서) 여실히 느낀다. 여행 동안 숙소에서, 또 여행사 투어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꼭 직업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원이라고 말하고, 직종을 물어봐서 결국 연예부 기자라고 말하는 순간 바뀌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은 이제 익숙하다. 그리고 익숙한 질문들을 받는다.
4년의 경험, 여기에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낸 경험상 통계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실문은 누가 제일 잘생겼나요? / 예쁘나요?
2. 실제로 만나면 성격이 별로인 연예인도 있나요?
3. 찌라시 내용은 다 사실인가요?
4. 정말 정부나 정치 관련 일 덮으려고 일부러 기사 쓸 때도 있어요?
5. 루머 가르쳐주세요!!
나에게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1. TV랑 똑같아요. // 저는 정우성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 정우성 아닐까요? 여자는 김태희요. (진심이다)
2. 기자한테는 대부분 잘해줘요.
3. 반반이요. 사실 잘 몰라요. 헤헤.
4. 저는 말단 직원이라 잘 몰라요....
5. 네티즌들이 더 잘 알아요. 좀 가르쳐주세요!!
(아마도 기자마다 대답들은 다를 것이다.)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기자라면서 왜 모르냐”이다. 사실 난 잘 모른다. 처음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갖게 된 희열 중 하나는 남들이 모르는 비하인드를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연예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신곡을 미리 듣고, 비화를 듣는 재미. 처음엔 나도 친구들을 만나 누가 그랬다고 하더라며 웃었지만, 이젠 ‘연예인 걱정은 쓸 데 없는 걱정’으로 산다. 그 쓸 데 없는 걱정을 직업으로 하는 것 중 하나가 연예부 기자이지만.
난 ‘그런 기자’, 소위 말하는 기레기가 되기 싫었다. 댓글에서 흔히 보는 “나도 기자 하겠다”, “받아쓰기를 했더니 기자가 됐대요”, “이러려고 기자 하냐” 등등 그런 종류의 기자 말이다. ‘난 기레기 아니야!’라는 혼자만의 우월 의식에 빠진 적도 있다. 솔직히 누가 기레기가 되고 싶어 하겠는가. 그런데 회사의 트래픽 순위를 보면 놀랍게도 공들여 쓰고 잘 쓴 기사의 트래픽은 매우 낮고, 저질스런 제목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 받아쓰기 기사의 트래픽이 제일 높다. 구조 자체가 기레기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질문 속에서도 그런 구조를 느낄 수 있다. 노래나 작품에 대한 감상보다는 가십을 원하는 속성 말이다.
처음 수습기자를 시작했을 때, 개나 소나 기자를 한다는 열악해진 환경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처음 3년은 운이 좋게 잘 흘러갔지만, 마지막 1년은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기레기가 돼 트래픽과 포털사이트의 노예가 됐다. “몇 시까지 트래픽 몇 만 돌파”라고 대놓고 시키는 인터넷 언론사가 만연해졌다. 기자가 아닌 트래픽 기계로서 언론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퇴사를 한 이후 “왜 그만뒀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나하나 설명할 수가 없는 나는 그냥 “기레기가 되어 가는 게 싫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다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예전에 JTBC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시민이 “청춘은 포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바닥을 떠나기까지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과 끊임없이 타협하던 과정이었다. 그 타협은 퇴사로 인해 끝이 났지만, 치열한 고민의 과정은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알게 해 준 계기가 됐다.
비록 퇴사를 했지만, 기자 생활은 뿌듯한 추억을 안겨주기도 했다. 앞으로 그 뿌듯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정리하며 퇴사를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