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정 Oct 06. 2017

퇴사자의 추석 단상

퇴사일기, 다섯 번째 : 진짜 필요한 인간이 되는 과정

캐나다 밴쿠버에서 10월 4일 추석날에 찍은 달

해마다 명절만 되면 넘치던 사람들의 안부 메시지가 이번엔 뚝 끊겼다. 아마도 퇴사 때문이리라. 가족, 친구를 제외하곤 안부 메시지의 대부분은 거래처 사람들, 즉 관계자들이었으니까. 퇴사를 하고 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인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됐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다. 그들에게 나는 필요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실 '퇴사'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건 퇴사로 인해 내가 필요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기자'로서 필요 있는 인물이 되어간다. 특히 나는 '칭찬하는' 기자였다. 아이돌이 작은 성과를 냈더라도 그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며 노력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인기가 있든 없든 그 사람의 노력을 알아보려고 애썼고, 많은 기사를 썼다. "~하면 박기자지", "박기자님 덕분에", "박기자님 기사가 예술이에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저희 아이들 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의 이야기를 듣거나 댓글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오늘도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했구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을 얻어서 참으로 뿌듯하다는 생각에 취했다. 


기사를 많이 쓸수록 나는 더욱 필요성이 큰 사람이 되어 갔다. 능력도 인정받고, 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또한 얻은 평판을 놓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이렇게 보람만 가득했다면, 몇십 년이든 더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겼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았다. 


4년 동안 3번의 퇴사를 하는 과정에서 2번의 이직을 결정했을 때, 나는 '필요성 있는 인간'이 주는 중독성에 취해있었다. 더 큰 보람, 더 큰 만족을 찾기 위해 직장을 옮겼고 현실과 이상은 더욱 더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열악해진 연예 언론 환경에 결국 나는 존재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됐다.


퇴사를 하는 순간, 나는 필요 없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건 나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게 아니라 '그 일에 있어서' 나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4년, 나는 일에 너무나 큰 의미를 두고 나와 일을 동일시했다. 내 속이 아닌 내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일을 통해 인정을 갈구했다. 퇴사로 일과 내가 분리되면서, 이제 나의 존재 이유를 온전히 나에게서 찾아야 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됐다. 


나는 그나마 내가 '쓸모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과감히 버리고,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아직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를 둘러싼 거품을 들어내는 일은 이직이 아닌 퇴사가 준 가르침 중 하나다. 지금은 비록 필요 없는 인간일지라도, 내가 나의 휴식과 재충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진짜 필요한 인간이 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난 내가 특별하다고 믿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