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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욱 Nov 30. 2023

박수를 세게 치세요 : 방청객 아르바이트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방송 방청객 아르바이트였다. 한마디로 박수부대 알바였다. 90년대 초이다.

대학 2학년 때 과 동기가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고 같이 할 사람을 구했다. 그래서 10명 정도의 친구들이 지원을 하였고, 우리는 아르바이트 팀을 만들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고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가니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신나고 설레었다. 어느 건물에 도착하니 도착하니 방청 아르바이트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이름을 부르며 확인하였다. 우리는 좁은 복도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방송 스튜디오는 나의 시선을 끌었다. 무대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카메라가 여러 대가 있었다.


‘쑤욱, 서울 와서 방송도 보다니 출세했다!’

지방출신이었던 나는 서울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돈도 주다니! 이 아르바이트가 마음에 쏙 들었다. 친구들과 앞자리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며 세트장을 구경하고 있으니, 방청객들이 속속 들어왔고 이내 스튜디오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출처: 유튜브 캡처 <자니윤 쇼>


바람잡이 신인 개그맨 박수홍 씨를 보다


“자, 여러분 여기를 보세요. 방송할 때는 떠들면 안 되고, 박수를 세게 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크게 웃어 주세요.”

라며 한 남자가 무대에 나와서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들을 바람잡이라 불렀는데, 주로 신인 개그맨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바람잡이 중에 박수홍 씨도 있었다. 90년대 초라 박수홍 씨도 유명하지 않았던 신인시절이었다. 바람잡이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어떤 사람은 주의사항만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을 하기도 했다. 박수홍 씨는 후자였다. 어찌 보면 바람잡이 일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박수홍 씨는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 박수홍 씨가 유명한 개그맨이 되는 것을 보고 작은 일에도 열심히 하니 인정받고 성공하는구나 싶었다.


“자, 박수 힘차게 쳐볼까요?”

박수를 세게 치는 것과 웃는 것을 매우 강조했다. 박수와 웃는 연습을 여러 번 연습했다. 그리고 질문할 사람도 정해서 연습도 시켰다.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나자,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드디어 연예인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본 방송은 당시 인기 있었던 KBS ‘자니윤 쇼’였다. 자니윤도 나오고 초대한 출연자들이 나와 대화하는 방송이었다. 자니? 자니? 하면서 자니윤 이름을 놀렸던 기억이 난다.     


옆집 아저씨 같았던 조영남 씨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연예인이 조영남 씨이다. 조영남 씨는 방청객들이 촬영장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항상 나타났다. 그러면서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기다리는 게 힘들지 않아요?"


하며 이런저런 가벼운 질문과 농담을 우리에게 던졌다. 외모와 하는 행동이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였다. 유명한 연예인이 말을 걸어서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었다. 연예인과 말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당시는 조영남 씨는 매우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다. 그때가 조영남 씨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여기저기 나오던 연예인이 방청객들과 같이 농담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바를 하러 간 것일까떡볶이를 사 먹으러 간 것일까?


녹화 내내 우리는 시킨 대로 박수를 세게 치고, 일부러 크게 웃기도 했다. 자니윤 쇼는 2회분을 한꺼번에 촬영했다. 1회 먼저 찍고, 잠시 쉬었다. 자니윤 씨는 옷을 갈아입고 왔고, 다른 출연자들이 나왔다. 마치 처음인 듯 인사하고 방송을 촬영했다.


그렇게 크게 웃고,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치다 보니 녹화가 끝났다. 계속 앉아있는 것도 사실 고역이었고 박수를 세게 쳐야 하는 부담감에 열심히 세게 쳤더니 끝날 때는 손바닥이 아플 지경이었다. NG가 나서 기다리거나, 지루한 대화를 보고 있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인기 방송 방청객 아르바이트는 바로 마감된다고 했다. 아쉽게도 인기 방송 방청은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비가 얼마인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나지만, 반나절 일해서 받은 돈은 고작 몇 천 원 정도였다.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김없이 배가 고파졌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곧장 분식점에 가서 떡볶이와 순대 등을 사 먹었다. 그 덕에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다.

 

방청 아르바이트를 그 뒤에도 몇 번 더했는데, 알바가 끝나면 늘 사 먹고 헤어졌다. 아르바이트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매번 떡볶이값으로 다 써버려서 결국 번 돈은 없었다. 그래서 몇 번 가다가 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아르바이트팀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방청객 아르바이트할 때 내 얼굴이 방송에 여러 번 나왔다. 카메라가 방청객을 비출 때 내 얼굴이 크게 나오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방청객으로 간 방송을 챙겨 보았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내 얼굴이 신기하기만 했다. 방청객 아르바이트는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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